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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4. 2023

저만 짓궂은 게 아닌데요?

2022년 5월 12일


프랑스어 델프 말하기 시험을 끝내고 지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트램에서 내릴 무렵 시어머니로부터 시험을 잘 봤냐는 메시지를 받았다. 어쩜 이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니. 


[저 잠깐 들러도 되나요?]


[네가 오는 건 언제든지 환영이란다. 와서 샐러드도 하나 가져가거라.]



어머님께서는 우아한 잔에 시원한 콜라를 따라주셨다. 


새소리, 파란 하늘, 상쾌한 공기를 맡으니 시험장에서 느꼈던 긴장감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테이블 위에 놓인 집게를 발견했다. 아마 시아버지께서 거동이 불편해지셔서 바닥에 떨어진 뭔가를 편히 집는 데 사용하시려고 장만하신 것 같았다. 고양이들한테 장난치기 딱 좋게 생겼네. 

마침내 희생양들이 오는구나... 어서 오너라... 


내가 집게를 집으며 고양이들을 향해 사악한 웃음을 날리자 어머님께서 내 의도를 짐작하셨는지 하지 말라고 하셨다. 


안 한다고 해놓고는 어느새 나는 이스탄불에게 집게를 들이댔다.  

어머님께서는 나를 말리시다가 의외로 이스탄불이 거부하지 않고 있으니 흐뭇한 표정으로 같이 구경하셨다.

이스탄불 포획 완료! 


어머님께서는 내가 이스탄불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시다가 갑자기 옆집 고양이 틱스를 떠올리셨다. 


"오늘 오전에 내가 이스탄불을 빗기고 있는데 틱스가 담장 위에 앉아서 우리를 보고 있더라? 내가 틱스 몸 위에다 이스탄불의 털을 한 움큼 얹어줬더니 글쎄 틱스가 하악질을 하다가 가버리는 거 있지! 호호" 


잠깐만요, 저만 짓궂은 게 아닌데요...?


떠나올 때 어머님께서는 샐러드와 함께 빌베리잼을 새로 담으셨다며 두병을 싸주셨다. 그리고 오이로 만든 차지키도 주셨는데, 소금으로 절인 후에 크림치즈의 일종인 쁘띠스위스랑 마늘, 후추등을 넣고 버무린 거라고 하셨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빌베리잼, 바나나, 수제 요구르트를 넣고 스무디를 한잔 든든하게 갈아 마셨다. 정말 맛있다!

그러고 나서 냉장고에 있던 양배추와 연어를 처리하기 위해 김밥을 말아먹었다. 시어머니께서 주신 생소한 차지키를 넣고서.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역시나였다. 단무지가 안 들어갔지만 간도 딱 맞고 너무 맛있었다. 

남으면 저녁에 먹으려고 넉넉히 3줄 싼 건데, 결국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네.

 

내일 있을 필기시험도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신도 위장도 가득으로 충천을 완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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