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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4. 2023

시댁 깻잎 절단 사건

2022년 7월 16일

어머님께서 장 보러 가셨다가 나를 위해 무를 사 오셨다고 해서 시댁에 갔다.
안 그래도 무피클이 다 떨어져서 만들 때가 되긴 했는데 정말 잘됐다! 무피클을 담아놓으면 라면 먹을 때도 같이 먹고, 김밥도 싸 먹고, 닭튀김 먹을 때 치킨무처럼 먹어도 너무 맛있다. 

테라스에 시부모님과 둘러앉아서 차를 마셨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살구를 몇 개 집어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어머님께서는 살구 클라푸티를 만드셨다며 내가 갈 때 가져가도록 싸주신다고 하셨다. 어머님께서 부엌으로 들어가시자 아버님께서는 심각한 목소리로 나에게 보여줄 것이 있으시다며 따라오라고 하셨다.

뭘까...?

아버님은 정원 구석에 있는 작은 텃밭으로 나를 데리고 가시더니 비장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어제 내가 시험 삼아서 두 뿌리만 땅에 옮겨 심어 봤거든. 근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렇게 돼 있더라고..."

앗? 깻잎이 두 줄기 모두 허리가 잘라져 있네...?

"민달팽이는 아니야. 줄기채 위에서 부터 먹진 않으니까."

사실 이게 대단히 큰 일은 아닌데도 아버님의 표정과 목소리가 너무 심각하셔서 나도 괜히 덩달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옆에 따라온 고양이들에게 잠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아버님께서는 고양이들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래 너희들은 깻잎은 맛이 없지?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하신 어머님께서 큰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며 다가오셨다.


"깻잎이 원래 맛이 그렇게 강하니? 어제 샐러드에 넣으려고 맛을 봤는데 너무 강해서 못 먹겠더라."

나와 아버님은 순간 서로의 눈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서로 비슷한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머님, 깻잎 언제 드셨어요?"

"어제저녁에."

아버님도 취조하시듯 질문을 하셨다.

"줄기채 먹었소?"

결국 분위기를 파악하신 어머님께서 버럭 하셨다. 그냥 이파리만 딱 하나 뜯어서 맛본 게 전부라고 하시며 재연까지 해 보이셨다. 

다행히 아버님께서 두 줄기만 옮겨심으셨기 때문에 피해는 크지 않았다.

내가 화분에서 깻잎을 뜯고 있는 순간에도 아버님과 어머님의 소소한(?) 말다툼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건 누군가에 의해 잘린 거야!(Coupé)"

"아이고, 이걸 누가 잘라요! 그냥 부러진 거지! (Cassé)"

"꾸뻬!"

"까쎄!"

나는 옆에서 프랑스어 꾸뻬(coupé)와 까쎄(cassé)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가 있었다. 

어머님 저두 속으로 의심했는데 죄송합니다.

참고로 두 분의 말다툼은 뒤끝이 없다. 이번에도 바로 점심메뉴로 화제가 넘어가면서 언제 다투셨냐는 듯 사이가 좋아지셨다. 





집에 돌아온 나는 점심 식사로 삼겹살을 양념에 재운 후 굽고 상추와 깻잎에 싸 먹었다. 깻잎들아 빨리 자라렴.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아참, 부러진 깻잎들은 아버님께서 열심히 물을 주신 덕분에 며칠 만에 잎사귀들을 키워냈다.

시부모님께서는 항상 저 깻잎들이 내 거라고 하신다. 그래서 내가 50%는 시부모님의 소유라고 정정해 드렸다. 아버님께서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주시며 키워주시니 너무너무 감사드릴 뿐이다.

결국 범인은 영영 미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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