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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4. 2023

시댁 테라스는 동네 사랑방이다.

2022년 7월 19일

파티마네 커플이 직접 수확한 체리를 많이 갖다 줬다고 하셔서 시댁으로 갔다.


내가 테라스에 있을 때 시댁으로 손님이 한 분 더 오셨다.
어머님의 절친이신 앙투아네트 여사님이셨다.

시아버지까지 모두 함께 테라스에서 목을 축이며 대화를 나누었다.
앙투아네트여사님은 알고 보니 어릴 적 이탈리아에서 이주해 오신 거였고 여전히 가족들은 이탈리아에 있다고 하셨다.

"원래는 매년 가족들을 보러 이탈리아에 갔는데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겁나서 못 가다가 3년 만에 다녀왔지 뭐니."

"저는 한국 못 간 지 2년 됐네요..."

잠시 센치멘탈해 지려던 찰나에 시댁 대문의 벨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우리 어머님의 달링, 잘생긴 옆집 남자였다. 요리를 좋아하는 그는 점심때 시부모님 드시라고 아침부터 직접 요리한 음식들을 들고 왔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맨날 빈손으로 와서 두 손 가득 챙겨가는 며느리는 오늘따라 더 부끄럽다.

그냥 음식만 주고 돌아서던 그를 어머님께서는 차 한잔하고 가라고 테라스에 합석시키셨다.

각자 휴가에 대해, 고양이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데 분위기가 참 훈훈했다. 우리 시댁은 진정 이 구역 사랑방이 아닌가 싶다. 옆집 남자는 짓궂은 어머님의 농담에 배꼽을 잡고 웃다가 "오, 마리엘 마리엘..." 하며 스위트하게 어머님의 이름을 연달아 불렀다. 이래서 어머님이 마이달링이라고 하시는구나...


잠시 후 옆집 남자가 떠나자 앙투아네트여사님이 어머님께 속삭이며 물으셨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이야?"

"응, 내가 몇 번 말했지? 잘생겼지?"

"그러네 그러네."

"요리도 잘해. 그리고 항상 단추를 여기까지 풀더라."

역시 여자들의 대화는 만국 공통이었다. 우리 셋이서 까르르 웃고 있을 때도 아버님은 혼자만 웃지 않으셨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왔더니 집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있어. 언제 장보고 요리하나... 아휴 귀찮아."

시어머니께서는 앙뜨와네트 여사님이 가실 때 주키니 갸또 낭비지블과 싱싱한 토마토 몇 개 그리고 테네리페에서 사 온 염소치즈 한 덩이를 봉지에 담아서 건네셨다.      



옆집 남자가 갖다 준 체리클라푸티, 팍시다.

어머님께서 나에게도 음식을 나눠주려고 하셨지만 내가 거절했다. 대신 궁금해서 한 조각씩 맛만 봤다.


"인정하기 싫었는데... 클라푸티는 옆집 남자가 나보다 훨씬 잘 만들어. 여러 번 갖다 줬는데 매번 완벽한 거 있지..."

어머님, 맛있는 요리를 갖다 주는데 왜 시무룩하신가요.

"저는 어머님이 만드신 살구 클라푸티가 더 맛있어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내 아부에도 어머님은 여전히 시무룩하셨다. 클라푸티는 본인이 최고라고 자부하고 계셨는데 자존심이 상하시나 보다.


벨페버 속에 다진 고기와 치즈가 들어간 이 팍시도 너무 맛있었다.

"우와.. 옆집에 셰프가 살고 있었네요!"

아차차... 너무 맛있어서 칭찬이 저절로 튀어나와 버렸다. 어머님 요리가 훨씬 더 훌륭합니다...

"응... 친절하고 잘생기고 요리까지 좋아하니 나는 저 사람이 정말 좋아. 그런데 요리를 갖다 줄 때마다 나는 경쟁심이 자꾸 들어. 나한테는 경쟁이야! 더 맛있는 거 만들어서 갖다 주고 말 테다!"

우리 시어머니 오늘도 나를 너무 웃게 하셨다.


시댁에서 실컷 웃고 나서 체리를 잔뜩 얻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프랑스살이 참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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