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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4. 2023

시어머니의 홈메이드 플람키쉬

2022년 8월 23일


어제 시어머니와 장 보러 갔을 때 어머님께서 플람키쉬용 크림치즈를 구매하시길래 내가 여쭈었다.


"플람키쉬 만드실 거예요? 언제 만드실 거예요?"


"너 먹으러 올래? 그럼 내일 만들지 뭐."


그렇게 나는 오늘 플람키쉬를 얻어먹으러 정오에 시댁으로 갔다.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자마자 나는 무화과나무로 먼저 기어올라갔다. 수확을 기다리는 무화과들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던 것이다.


어머님께서 2층 창문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장대로 무화과를 따실 때는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 자꾸 나더러 나무를 부러뜨렸다고 하셔서 억울했지만 (나무 안 부러졌다고요...) 그래도 둘 다 오랜만에 꽤 많이 웃은 것 같다.

아버님은 무화과 담으라고 양동이를 갖다 주시더니 그 길로 바로 외출을 하셨다.

이웃집 우편함에 모웬 실종 전단지를 돌리러 가시는 거라고 한다. 며칠 전 비가 와서 일전에 골목 곳곳에 붙여놨던 전단지들이 훼손되어서 그것도 수거하실 거라고 하셨다. (오후에 우리는 전단지를 새로 붙이러 다 같이 나갔다.)


아버님을 배웅하신 어머님께서는 집 앞을 지나가던 대학생쯤 보이는 훈남 청년에게 무화과 좀 먹고 가라고 불러 세우셨다. 마침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꽤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나는 손을 뻗어서 무화과 몇 개를 청년에게 하사해(?) 주었다. 청년이 무화과를 먹는 동안 어머님은 모웬의 전단지를 한 장 주면서 잘 봐달라고 신신당부하셨고, 훈남 청년은 따뜻한 위로의 말과 함께, 자신은 근처 도미토리에 살고 있으니 건물 정문에 붙여놓겠다며 전단지를 들고 갔다. 무화과 더 줄걸...



무화과 수확을 마친 우리는 아버님을 기다리며 테라스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어머님께서 추천하신 이 맥주는 향이 정말 좋았다!


술안주로 에어프라이에 구워주신 스페인식 빠드론고추.


"오, 너무 맛있다! 바르셀로나에 와있는 기분이야."


잠시 후 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알자스로 다 함께 점프했다. 바로 알자스식 플람키쉬를 먹었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정말 빠른 손놀림으로 도우를 얇게 미셨고 그 위에 플람키쉬용 크림치즈를 듬뿍 바르셨다. 그러고 나서 얇게썬 양파와 베이컨을 넣고, 맨 나중에는 모차렐라치즈를 뿌리신 후 가장 놓은 온도로 오븐에 딱 8분간 구우셨다. 이렇게 총 2판을 구워서 셋이서 나눠먹었다.


끄트머리가 좀 탔지만 원래 이런 거라고 하셨다. 플람키쉬는 또 다른 말로 타르트 플랑베 (tarte flambée)라고도 하는데 플랑베가 불이라는 뜻이니 원래 이렇게 좀 태우는 게 정상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시부모님과 테라스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저 정도 사이즈로 각자 3조각씩 먹었는데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맛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보쥬에서 먹었던 바로 그 맛이다!   


후식으로 방금 전에 딴 무화과를 먹고 있었더니 아버님께서 정원에서 포도를 한송이 따오셔서 나눠주셨다. 정원에서 바로바로 따먹는 과일이라니... 이런 호사가...


배부르게 먹었으니 이제 밥값을 하러 갈 시간이다. 어머님과 나가서 전단지를 새로 붙이기로 한 것이다.

맛있는 걸 드시면서 어머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너무 맛있다! 거의(presque) 행복해. 모웬만 있으면 완벽한데..."


맛있고 즐거운 순간에도 모웬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시는 것이다. 모웬도 어디선가 애타게 우리를 부르고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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