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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4. 2023

시어머니의 리소토와 눈치 없는 남편

2020년 5월 18일


시어머니께서 오늘은 꼭 리소토를 먹어야 한다고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셨다.


어머님께서는 치즈를 안 먹는 자서방을 위해 치즈가 들어간 리소토와 안 들어간 리소토 두 가지를 함께 만들자고 하셨다. 모든 재료를 따로 정량씩 준비하셨고 심지어 육수조차 똑같이 생긴 냄비 두 개에 따로 끓이셨다.

나는 시어머니께서 하시는걸 옆에서 보면서 따라 했고 어머님은 내가 실수하는 건 없는지 확인해 주셨다. 마치 나 한 사람을 위한 요리 교실이 열린듯한 기분이었다.


자서방 리소토에는 치즈대신 버터와 크림이 들어갔다.


"이 집에 치즈를 못 먹는 멍청이가 하나 있어서 맨날 나만 고생이구나."

 

"저는 그 멍청이랑 결혼했는데요?"

 

"그래... 내가 너한테 팔고 나서 기분이 좋았지...."


거실 쪽에서 자서방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 다 들리거든?"



표고버섯 꽈 잣이 들어갔는데 내 입맛에 딱이었다. 난 리소토 특유의 단단한 쌀알갱이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쌀이 많이 퍼져서 더 좋았다. 내가 먹어본 리소토 중에서 최고로 맛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어머님 덕분에 매일 프랑스 레스토랑에 온 기분을 느끼며 살고 있다. 이렇게나 맛있는데 시아버지와 자서방은 별 코멘트가 없네?


"쌀이 너무 익었어. 다음에는 조리시간을 좀 더 줄이는 게 좋겠다."


시어머니의 겸손한 코멘트에 눈치 없는 자서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긴 한데 여전히 덜 익은 쌀도 간간히 씹히네...?"


시어머니께서는 마음이 상하셨는지 급하게 식사를 마치신 후 빈 그릇을 부엌으로 치우셨다.


시아버지와 자서방은 식사 중에 뭔가 심각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파스타 삶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떨 때는 덜 익고 어떨 때는 너무 익고 시간을 잘 맞춰야 하는데 파스타 포장에 써진 조리시간은 믿을 수가 없다는... 그런 얘기를 저렇게까지 진지하게 하고 있다니... 요리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전문가는 여기들 계셨군.


내가 먹은 식기들을 들고 부엌으로 갔더니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정성 들여서 만들었는데 남자들은 아무 말이 없네. 내 남편이나 네 남편이나 똑같아. 별로 맛이 없나 봐"


"전 진짜 너무 맛있었어요. 쌀도 제 기준으로는 완벽하게 익었고요."


다들 자리를 뜨고 난 후에도 자서방은 여전히 앉아서 먹고 있었다. 양이 적었는지 빵이랑 샐러드까지 긁어먹고 있었다. 심심할까 봐 말동무가 돼 주려고 옆에 가서 앉았더니 자서방이 말했다.


"와이프, 이제 리소토도 만들 줄 알게 된 거야?"


"글쎄... 왜? 해달라고?"


"와, 할 줄 아는 요리가 늘었네! 우리 와이프가 할 줄 아는 요리 리스트를 만들어 볼까? 나 매일 메뉴판 보면서 하나씩 주문하려고"


자서방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나서 혼자 먹게 놔두고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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