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매일 먹으면 좋겠구나!"
2020년 4월 26일
우리가 태국에 살고 있을 때, 시부모님께는 태국에 오실 때마다 꼭 한두 번씩 비빔밥 식당에 들르실 만큼 비빔밥을 좋아하셨다. 내가 한국에서 프랑스에 들어올 때 시어머니께서는 비빔밥 소스를 부탁하기도 하셨다. 그래서 꼭 한번 내 손으로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항상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결론은 대성공이었지만 한 그릇의 (사실 네 그릇) 맛있는 비빔밥을 낯선 프랑스 주방에서 만들어내기까지는 좌충우돌이 많았다.
비빔밥 그릇
내가 비빔밥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처음 말씀드렸을 때 시어머니께서는 집에 있는 비빔밥 그릇이 이것들 뿐이라고 하시며 베트남에서 구입하신 뚝배기들을 몇 개 꺼내오셨다.
"그럼 그걸로 써야겠네요."라고 대답했는데 바로 다음날 요리 중에 시어머니께서 큰 대접을 사용하시는 걸 보았다.
“큰 그릇이 있으셨네요!”
“이걸로 비빔밥을 할 수 있다고? 나 이런 거 열개 넘게 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거실로 나를 데려가시더니 내가 모르고 있던, 수십 개의 대접들이 들어있는 찬장을 활짝 열어 보이시며 큰소리로 외치셨다.
“오! 나 비빔밥 그릇을 많이 가지고 있었구나!”
“비빔밥에는 넣고 싶은 거 아무거나 넣을 수 있어요.”
자서방은 나더러 이 말을 하지 말 것을 그랬다고 했다.
비빔밥 거리 장보기를 다녀오신 시어머니의 장바구니에는 아스파라거스와 양상추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두 가지 모두 시도해 볼 수는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자서방은 극구 안된다며 맞섰다. 방콕에서 즐겨먹던 비빔밥 식당의 홈페이지까지 들어가서 사진을 보여드리며, 여기에 그런 재료가 어디 있냐며 나름 최선을 다해 시어머니를 설득해보았지만 시어머니께서는 꿈쩍을 안 하셨다.
어차피 내가 셰프였기 때문에 요리하면서 슬쩍 두 가지 재료를 잊어버린 척했지만 나중에 시어머니께서 아스파라거스를 친절히 꺼내 주셨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식감도 좋았고 모두들 만족했다.
산으로 갈 뻔했지만 큰 도움을 준 사공들
프랑스에서는 얇게 썰어서 파는 소고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다진 고기로 하자고 했지만 자서방은 자신 있게 본인이 얇게 슬라이스 할 수 있다며 고집을 부렸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자서방이 열심히 슬라이스해 온 고기들은 엄청 두꺼웠다. 내가 대충 썰어도 그것보단 나았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사 온 갈비양념 소스에 재워서 볶았는데 역시 비빔밥의 핵심이 되었다!
시어머니께서는 비빔밥을 위해 초밥용 쌀도 일부러 사 오셨고 참깨가 있냐고 물어보는 내 질문에 깨를 일부러 프라이팬에 볶아주기도 하셨다!
나중에는 시어머니께서 이것저것 점점 더 간섭하기 시작하셔서 자서방이 결국 시어머니를 모시고 나갔고, 요용 혼자서 만들게 하자고 시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자서방아 잘했다.
비빔밥 담는데 연예인 된 줄
재료 준비가 모두 끝나고 그릇에 밥을 펐다. 재료들을 하나씩 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들어온 자서방과 시어머니께서 나를 향해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재료를 하나씩 담을 때마다 찰칵찰칵 소리에 웃음이 빵빵 터졌다.
“저 셀럽인가요”라고 했더니 시어머니와 자서방은 내가 셀럽이 맞다고 동시에 대답했다.
계란 프라이는 계란 프라이일 뿐인데-
재료를 모두 담은 후 내가 계란 프라이를 만들려고 했더니 자서방은 “너무 늦었으니 계란은 포기하자”고 했다.
계란 프라이가 대체 얼마나 오래 걸린다고?
완벽한 계란 프라이를 위해서는 완벽한 온도가 필요한데 이제 와서 만들기에는 너무 오래 걸린다나...?
저게 어느 나라 말 이래... 하며 나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프라이팬을 꺼내서 계란을 부치기 시작했다. 두 개를 대충 부치고 났을 때 자서방은 내가 만든 프라이들을 보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결국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대체 왜?
난 또 계란 장인이 나신 줄 알았다.
그래... 보기에 더 좋긴 하네.
내가 부친 못난이 계란은 나랑 자서방이 먹기로 했다.
식탁 위에 매일 포크와 나이프만 보다가 숟가락과 젓가락이 놓인걸 보니 새삼 반가웠다.
대성공!!
모두 너무 맛있게 먹었다.
자서방은 처음부터 주방에 다시 가서 밥을 가득 추가해와서 비벼먹었고 시어머니께서도 몇 술 뜨시더니 주방에서 밥솥을 통째로 가져오셔서 밥과 고추장을 더 넣고 비벼 드셨다. 항상 조금만 드시는 시어머니께서 나보다 많이 드시는걸 이날 처음 보았다. 시아버지께서도 물론 맛있게 잘 드셨다.
“이거 매일 먹으면 좋겠구나.”
“제가 매일 해 드릴게요.”
내가 진짜 매일 할 것 같은 표정이었던지 2주에 한 번씩만 해 달라고 하셨다.
와인과 비빔밥의 조합이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면서 자서방이 말했다.
“솔직히 좀 걱정했는데 오늘 비빔밥 너무 맛있었어. 전문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어.”
“성공적이었지?”
“성공? 무슨 소리야. 저게 성공이라고? 완전 최고였지!”
자서방은 친구들에게도 곧 집으로 초대를 해서 비빔밥을 대접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비빔밥을 모르는 친구들과 그들의 와이프들에게 자서방은 비빔밥에 대해서 열성적으로 설명하며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이니 기대하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기대하고 있겠다고 대답했지만 정작 가장 기대를 하는 사람은 자서방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