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길어지고 낭만도 늘었던 여름 저녁이었다.
2020년 6월 9일
자서방이 첫 출근을 했다.
10년 만에 전 직장으로 다시 출근하게 된 자서방은 꽤 긴장을 하고 있었고 나도 덩달아 걱정을 많이 했다.
시어머니께서는 "다들 하는 첫 출근이 대수냐, 다시 교육을 시켜준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를 먼저 생각해라!" 하며 냉정하게 말씀하셨지만 속으로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마침내 자서방이 첫 퇴근을 해서 돌아왔을 때 나는 시어머니와 테라스에서 빨래를 게고 있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자서방의 피곤한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왜 갑자기 혼자 설레서 얼굴이 빨개진 걸까. 맨날 한 이불속에서 방귀 테러하는 남편인데 딱 한나절 못 보다가 다시 보니 이렇게 설레기도 하는구나. 이래서 부부는 가끔 떨어져 봐야 한다는 건가.
시어머니께서는 이날 자서방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셨다. 특별한 요리는 아니고 자서방은 바게트, 와인, 그리고 감자&마요네즈만 있으면 메인 요리가 뭐가 됐든 웬만하면 다 좋아한다.
7월이라 해가 길어져서 저녁 8시가 넘었건만 여전히 대낮이었다. 대신에 장미꽃향기는 점점 더 짙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각자 테이블로 하나씩 음식과 식기들을 날라오다 보니 저녁식사 테이블이 금세 뚝딱 차려졌다.
소시지!
비슷하게 생겼지만 세 가지 소시지가 섞여있다.
치포라타- 허브가 섞인 것과 허브가 없는 것 두 가지가 있었는데 둘 다 맛있다.
마르게즈- 빨간색 매운맛 소시지이다. 북아프리카 무슬림들이 먹는 거라 주로 양으로 만든다고 한다. 토끼로 만든 것도 먹어봤는데 기름기가 없어서 살짝 퍽퍽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시부모님께서 테라스에 걸어두신 모이를 먹기 위해 참새들이 계속해서 날아들고 있었는데 이스탄불은 정신없이 새를 지켜보고 있었다. 잡지도 못할 거면서 움찔움찔 폼만 잡는다.
나는 허브마르게즈 소시지 하나와 치포라타 소시지 하나를 접시에 담았다.
감자는 시어머니께서 스팀오븐에서 먼저 익히신 후에 잘라서 오리기름과 약간의 소금과 함께 프라이팬에 겉이 바삭바삭해지도록 익히셨다. 저기에 마요네즈를 찍으면 게임 끝이다. 바게트와 와인은 거들뿐-
식사 후에는 후식으로 딸기와 파인애플을 먹었다. 시어머니가 사 오신 저 파인애플을 낮에 내가 손질해 두었다.
우리가 후식을 먹는 동안에도 자서방은 언제나처럼 남은 소시지와 감자를 클리어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시어머니께서 살찐 자서방이 걱정되어 음식을 일찍 치우셨겠지만 이날만큼은 자서방이 원하는 대로 맘껏 먹게 해 주셨다. 첫 출근을 다녀왔으니까.
저녁해가 길어지니 낭만도 늘어나던 여름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