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쿨한 새 집주인은 벌써 우리에게 열쇠를 두 개 다 넘겨주었다. 이사 날짜는 아직 보름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전기를 미리 연결하셔도 되고 물건을 들여다 놓으셔도 됩니다. 편하실 대로 하세요."
심지어 보증금을 달라는 말도 없다! 이거 너무 쿨한 거 아닌지... (아무래도 보증금이 없는 것 같다. 계약서에서도 보증금에 대한 명시가 없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2달치 월세를 보증금으로 낸 상태인데 연락이 두절이라 제때 줄 지도 모르겠다. 참 상반된 모습이다.
의욕이 넘치는 버거씨는 새 집에다 페인트를 새로 칠하겠다고 선언했다. 원래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오래된 느낌이라며 같은 색으로 다시 칠할 거란다. 나는 절대 그럴 필요 없다고 열심히 말렸지만 말을 듣지를 않았다.
"두고 봐. 페인트 하나로도 분위기가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를 내가 보여줄게. 최선을 다해 아늑하게 꾸미자.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줄 거야."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은 말릴 수가 없었다.
공휴일이었던 지난주 금요일 버거씨는 10리터짜리 흰색 페인트 한 통과 어마어마하게 많은 짐들을 챙겨서 낭시에 도착했다. 새 아파트를 단장하는데 필요한 물건들이라고 했다. 대걸레, 램프, 드릴 등등이 들어있었다.
다음날인 토요일 내가 근무를 하는 동안 버거씨는 아침부터 새 집에서 혼자 페인트를 칠했다. 그리고 오전 내내 열심히 일한 버거씨는 점심을 먹으러 우리 가게로 찾아왔다.
"안녕~" 하면서 불쑥 찾아온 버거씨에게 처음으로 동생 진이를 소개해주었다. 버거씨는 여전히 우리 가게에서 풍기는 밝은 에너지가 너무너무 좋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SK는 내가 여기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버거씨는 그것도 그렇지만 우리 세 사람이 즐거운 표정으로 일하는 모습에서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강조했다. 올 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란다.
나는 애정을 듬뿍 담아 직접 튀긴 닭강정을 듬뿍 얹어 주었다. 김치랑 유자차도 같이 줬다. (직원 할인이 되기 때문에 내가 계산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버거씨는 기어코 본인이 계산하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벌써 계산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언제나처럼 닭강정이 환상적이라며 칭찬을 있는 대로 다 하면서 알뜰하게 먹은 버거씨는 다시 페인트를 칠하러 간다며 일어났다.
"피곤하지 않아?"
"전혀 안 피곤해. 벌써 벽 두면을 마쳤고 마지막 한 면이랑 부엌만 칠하면 돼."
"우와! 벌써 많이 했구나. 진짜 고마워."
"근데 문제는... "
갑자기 버거씨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생각보다 페인트 칠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던가 봐... 막상 칠하고 보니까 변화가 별로 안 느껴져..."
아이고야...
거봐... 내가 뭐랬니... 안 해도 된다고 했니 안 했니...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면 속상할 테니까...
"걱정 마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와~!! 진짜 환해졌다~~!! 이렇게 말해줄 거야. 분명 훨씬 더 좋아졌을 거야."
"응 조금 더 밝아지긴 했어. 그리고 부엌은 확실히 차이가 느껴질 거야."
하지만...
퇴근 후 새 집에 찾아갔을 때 나는 진심 변화된 점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들어서자마자 와~~!! 하고 환호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 갔는데... 정말 아무 말이 안 나왔다. 아침부터 버거씨가 헛고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자 심지어 헛웃음이 나올뻔했는데 간신히 참았다.
하지만 난장판이 된 집과 페인트 먼지를 뒤집어쓴 버거씨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침부터 혼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생생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비록 집이 변화된 느낌은 전혀 없었지만 버거씨의 사랑이 감동적이었다.
나는 말없이 버거씨를 안아주었다.
"고마워... 진짜 감동적이야."
"그래도 좀 집이 밝아진 것 같지 않아? 마음에 들어?"
"응 마음에 들어. 많이 힘들었지? 생각보다 큰 일이었네."
"간단한 일이었다고는 말 못 하겠어. 하지만 사랑의 힘으로 했지! 하하"
사랑의 힘. 그거면 된 거지. 페인트칠 자체는 헛수고(?) 였을 수도 있지만 버거씨의 마음은 새 아파트 모든 벽에 따뜻하게 덧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