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메모를 할 게 있어서 연습장을 하나 꺼내서 펼쳤다.
그러다가 재작년에 별생각 없이 대충 갈겨쓴 메모를 그 속에서 발견했다.
나의 새 반려자는 이런 사람이다.
다정하고 정이 많고 공감을 할 줄 안다.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알고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현명하고 실용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지만 남을 존중한다.
아름다운 것들에 감사하고 작은 일에도 웃음과 행복을 나와 공유한다.
사교적이고 밝고 긍정적이다.
친구들과 커플 동반 모임을 즐기며
나와 취미 여가를 다양하게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신체와 정신이 건강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좋아해 주려고 노력한다.
나의 베스트프렌드이다.
예의가 바르다.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서로에게 휴식과 평화를 준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따뜻하다.
서로를 웃게 한다.
재작년 1월쯤이었을 것이다.
나와 이혼하겠다고 우기던 전남편에게 나는 애걸복걸하며 원 없이 매달렸다.
내가 자신을 영영 용서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의 이혼은 불가피하다고 그 사람은 말했다.
내가 이혼을 안 하겠다고 계속 고집부린다면 경찰을 동원하겠다는 선언을 들었을 때서야 나는 모든 것을 단념했다.
10년 동안 내 가장 측근이자 동반자였던 사람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절망이었다.
내 인생 가장 빛나는 시기에 잘못 만난 남편 때문에 나는 십 년을 허비했다. 내 인생의 가장 황금기를 덧없이 날렸다.
커리어도 잃었고 모아둔 돈도 없었다. 그렇게 원했던 아기도 갖지 못한 채 나이만 먹고 흰머리만 잔뜩 얻었다. 호기롭게 출판한 책은 홍보도 못해보고 모든 계획을 접어야 했다.
밤낮으로 울다가 어느 날 울음을 그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지만 그래도 살아야 했다.
그때 내가 이런 걸 썼던가보다.
오기였을까. 아니면 작은 희망이라도 느끼고 싶었던 걸까.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썼다.
어떻게든 다시 잘 살아낼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버거씨를 만나기 전에 쓴 건데도 한 줄 한 줄 모든 내용이 다 버거씨를 가리키고 있었다.
혼자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이런 걸 끌어당김이라고 하는 건가.
이 싸구려 연습장은 마법 노트였던가.
이 세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기적으로 가득 찬 곳이 맞는 것 같다.
내가 겪어야 했던 시련은 결국 나를 위한 과정이었고 나는 그 과정을 잘 이겨내고 있는 덕분에 세상이 나에게 조금씩 보상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버거씨는 세상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