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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Aug 12. 2020

고양이가 물어온 아기새

"우리 며느리는 젓가락으로 파리도 잡아요!"

2017년 7월 1일


시댁에는 시부모님의 아들이나 마찬가지인 두 고양이가 있다. 이름은 이스탄불(초코색 브리티시 숏헤어, 당시 4살)과 모웬(셀커크 렉스 당시 2살)이다. 이 두 녀석은 성격도 정반대라 절대 친해지지 않을 것 같더니 꽤 잘 붙어 다녔다.

온 가족이 테라스에 모여 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원에서 놀고 있던 고양이들이 테라스로 급하게 뛰어들어왔다. 이스탄불이 입에 뭔가를 물고 있었는데 파닥거리는 커다란 날개를 보고 나는 그게 호랑나비인 줄로 알았다. 밥 먹다 말고 놀래서 나는 비명을 질러버렸고 자서방이 벌떡 일어나 이스탄불에게로 다가갔다. 


이럴 수가... 아기새였다...!

둥지에서 떨어졌다가 고양이들 눈에 띄었나 보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지만 많이 놀라고 겁을 먹은 듯 떨고 있었다. 

쿨하게 우리 앞에 아기새를 물어다 놓고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난 이스탄불. 

이스탄불아.. 아기새 어디서 데려왔니... 

고양이들은 별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놀고 있었다.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고양이들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려고 아기새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고이 물고 온 것 같다고 하셨다. 


아이고.. 안 고마워라..... 


자 서방은 아기새를 돌려놓기 위해 재빨리 뜰로 나가서 둥지를 찾아보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주변에 새둥지가 있을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최대한 짐작 가는 위치를 신중히 골라서 어미 새눈에 띄기를 바라며 아기새를 고이 올려놓았다. 물론 고양이들이 닿지 않는 높은 위치로 말이다.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우리는 몇 번이나 다시 가서 새를 다시 옮기거나 주변에 위험할 만한 것들이 없는지를 확인하고는 했다. 


"너무 자주 가면 어미 새도 근처에 못 오니까 일단 저녁때까지는 그냥 기다려보자." 


저녁이 다돼도 여전히 어미새는 보이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우리는 우선 집으로 데려와서 물을 먹여보았다. 나뭇잎에 물을 담아서 부리에 갖다 댔더니 눈도 안 뜬 이 녀석이 쭉쭉 잘도 빨아먹었다. 


물을 먹였으니 이제는 파리라도 먹이겠다며 파리채를 들고 온 집을 뒤지고 다녔더니 그걸 본 자서방이 나를 말렸다. 아직 어려서 소화 못한다며 구글을 검색해보더니 곧 고양이 사료를 물에 으깨서 가져왔다. 아기새는 몇 번 부리로 찍어보더니 먹지는 않았다. 

억지로 먹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이 정도만 하고 다시 있던 자리에다 새를 갖다 놓았다. 저녁에는 비가 쏟아지길래 또 걱정돼서 온실로 새를 옮겨놨다가 그다음 날 아침에 다시 밖에 옮겨놨다. 


그다음 날 오후에 가서 한번 더 확인했는데 아직도 어미가 오지를 않았다. ㅠ.ㅠ 


그대로 두면 금방 죽어버릴 것 같아서 결국 내가 다음날 오후에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여전히 먹이는 안 먹고 물만 먹고 있었다. 우리 시어머니께서 나를 보시더니 지하실에서 웬 주사기를 찾아서 가져오셨다. 억지로라도 먹여야겠다며 주사기 안에 물에 으깬 고양이 사료를 넣고는 새 입을 살짝 벌려서 입속으로 꾸욱 밀어 넣으셨는데 세상에나 주는 대로 잘도 받아 삼키는 것이었다! 시어머니의 스킬은 대단하셨다. 

시어머니께서는 바구니에 아기새의 보금자리도 마련해 주셨다. 



아침에 늦잠 자고 내려가거나 저녁에 자서방 친구들과 저녁 먹고 늦게 들어오면 시어머니께서 항상 말씀하신다. 


"네 애기 내가 먹였으니 안 먹여도 된다~" 


새가 한 번씩 추워서 떨 때가 있어서 시어머니께서 아래에 부드러운 행주를 깔아주셨는데 그때부터는 떨지도 않는다. 

우리 시어머니는 나더러 새 엄마라고 부르시며 본인은 새 할머니라고 하신다.


건강해진 것 같아서 조금씩 모기를 잡아서 젓가락으로 먹여 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파리보다는 모기가 아기한테 소화하기 좋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 잘 받아먹었다. 아기새가 건강해 보이는 걸 봐선 고양이 사료가 먹을만한 듯했다. 파리도 작은 걸로 조금씩 먹여볼까 싶다. 


부디 건강히 하늘로 날려 보내고 싶다. 박 씨는 안 물어다 줘도 된다...


장미꽃잎에 물방울을 올려놓고 주면 쪽쪽 빨아먹었다. 자서방은 고양이 사료를 물에 으깨서 주었고 나는 그걸 주사기에 담아서 먹였다. 사실 혼자는 잘 못해서 시어머니와 같이 하거나 혹은 시어머니께서 혼자서 먹이셨다.      

일주일쯤 지나니 회색 솜털이 점점 검은 깃털로 바뀌고 있었다. 검색해보니 칼새라고 한다. 여름이면 항상 하늘에 칼새들이 많이 날아다니는데 어쩌다 엄마를 놓친 거니...

한 번씩 달달 떨고 있을 때가 있어서 시어머니께서 깨끗한 행주를 하나 더 깔아주셨다. 저걸 매일 빨아서 갈아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다. 나중에는 핫팩을 전자레인지에 잠깐 돌려서 너무 뜨겁지 않은 상태로 식혀서 바위나 아래에 깔아주셨는데 효과가 매우 좋았다. 효과가 좋다 함은, 더 이상 떨지도 않았고 기운이 점점 넘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응가도 쑥쑥 잘하고 마치 고양이들과도 맞짱 떠도 될 만큼 기백이 넘쳤다.      

이제는 기운이 넘쳐서 날갯짓도 혼자 파닥파닥 하는가 하면 배고프면 밥 달라고 지저귀 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알았다고~" 하면서 파리채를 들고 온 집을 헤집고 다녔다. 


시어머니께서 파리채로 유리창 좀 때리지 말라며 두 번이나 나에게 경고하셨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유리에 붙은 파리는 전기 파리채로 살짝 구워서(?) 먹였다.


한 번은 시어머니께서 미안해하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미안하다. 전자 모기향이 꽂혀있었네. 모기 파리가 더 많이 들어올 수 있게 당장 꺼주마! 문도 활짝 열어두고 말이다." 


   

우리 며느리는 젓가락으로 파리도 잡아요!

아기새를 만난 지 2주가 넘어가면서 부쩍 새가 기운이 넘쳐가고 있었다. 초반에는 내가 혹시라도 연약한 새를 다치게 할까 봐서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곤 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평소에는 절대 손도 대기 싫었던 파리나 거미가 보이면 나는 그걸 잡아서 여러 번 잘게 부서질 때까지 두드려서 젓가락으로 먹이는 수준까지 되었다. 배고플 때는 젓가락으로 주면 잘 받아먹는데 남기면 나는 그 곤충들의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비닐에 잘 싸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먹였다. 육즙이 빠지면 맛이 없으니까-


매일 젓가락을 들고 온 집안을 설치고 있으려니 시어머니께서 뭐 하는 거냐 물으셔서 내가 대답해드렸다.


"원래 한국인들은 젓가락으로 파리를 잘 잡거든요" 


허공에다 젓가락을 휘두르며 뻔뻔하게 말씀드리니 식구들이 모두 큰소리로 웃으며 내 농담을 받아주셨다.


"그래 그렇겠지."

 

집에 손님이 오거나 다른 집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면 시어머니께서는 아기새 혹은 사진을 보여주시며 우리 며느리는 젓가락으로 파리를 잡는다며 손님들에게 며느리를 자랑(?)하셨다.


새가 건강하게 자라면서 나는 걱정이 좀 늘었다. 자꾸 움직임도 늘고 지저귐도 늘다 보니 호기심쟁이 고양이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어머니께서 이런 나를 보시고, 걱정 말라며 내가 보는 앞에서 아기새를 고양이 코앞에 내밀 보이셨는데 고양이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긴 하지만...


그래도 아기새가 혹시라도 아무도 없을 때 바구니를 탈출해서 푸드덕거리면 위험할 텐데...

날이 좋아 공기 좀 쐬라고 내가 나무 그늘에 바구니를 올려두었더니 이스탄불이 급관심을 보이고 있다. 날마다 나는 아기 칼새가 얼마나 자라야 날 수 있는지를 검색했다.  


칼새는 평생 하늘에서 날면서 사는 종이고 새끼를 돌볼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하늘에서 사냥하고 먹고 자며 죽을 때까지 절대 땅에 내려오지 않는 종이라고 한다. 새끼일 때 난생처음 날게 된다면 그 길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아직 적어도 2주 이상은 더 필요할 듯한데 나는 곧 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서방은 "걱정 마, 우리 엄마 믿어도 돼. 우리 엄마가 분명 잘 돌봐주실 거야"라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프랑스를 떠나던 날 시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죄송해요. 제가 일거리를 하나 더 드리고 가네요." 


"아이고 괜찮다. 니 애기니까 나는 걔 할머니지 호호~ 내가 매일 사진 보내주마". 


자 서방은 옆에서 "봤지?" 하며 웃었다.      



태국에 돌아온 후 처음 며칠간 시어머니께서 아기새 사진을 보내주셨다. 그러다 1주일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메시지를 보내주셨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새가 죽어있더라는 것이다... 엉엉... 이유는 모르신다고...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사실은 내가 더 죄송했다.


"아니에요. 고생 많으셨어요. 덕분에 다 같이 즐거웠고 아기새도 사실은 덕분에 더 오래 살 수 있었는데요 뭐." 


아기새야. 다음 생에는 둥지에서 떨어지지 말고 오래오래 하늘을 날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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