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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Aug 14. 2020

프랑스 시어머니의 시집살이

나를 웃게도 울게도 하시는 우리 시어머니

2020년 5월 17일


시댁에서 지내며 우리가 살집을 알아보는 동안 나는 무뚝뚝한 자서방보다 시어머니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요리를 도와드리고 장도 같이 보러 가고 산책도 같이 하면서 말이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데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어제 너희 침실에 새로 깔아준 침대보 어떠니? 정말 포근하지 않던?”

자서방이 지나가다가 대신 대답했다.

“얘는 차이점 잘 못 느꼈을 거예요. 원래 그런 거에 별로 신경 안 써요.”

뭔가 좋은걸 신경 써서 해 주셨던 모양이다.

그렇다.

난 둔해서 그런가 솔직히 차이를 못 느꼈다...

“네 뭐.. 좋아요. 전에 쓰던 것도 좋았고 이번 것도 좋고.. 전 다 좋던데요.”

자서방은 시어머니를 바라보며 "내 말이 맞죠?"라고 했고 시어머니는 실망하신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그렇단말이지... 앞으론 네 침대는 그냥 감자자루를 깔아줘야겠구나.”

“으하하하하하하하 아니에요. 저 이번 침대보 정말 편해요. 이전에 쓰던 것보다 훨씬 좋아요!”


시어머니의 말씀이 너무 재미있어서 진짜 나 혼자 미친 듯이 웃었다.

아무래도 시어머니와 베프가 된 것 같다.



6월인데도 낭시는 쌀쌀하기만 했다. 점심준비를 도와드리는 중 시어머니께서 좀 추운 것 같다고 하시더니 곧 처음 보는 후드 점퍼를 걸치고 돌아오셨다.

“이거 나한테 좀 작은 거 같지?”


“아니요, 괜찮은데요”


“그래? 작아서 너 줄까 생각했거든.”


“다시 보니 어머니께는 작은 거 같아요.”

이미 나는 머릿속으로 '음, 내 흰 바지랑 받쳐 입으면 예쁘겠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리 시어머니께서 웃으셨다. 시어머니가 너무 편해져서 한편으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다.       


“너희 일요일 집 보러 간다고 했지? 이번에는 저번 집보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네. 가격이나 크기는 비슷한데 가스비가 포함이라 결론적으로는 더 저렴해요. 근데 그쪽으로 가면 마트가 멀어져서 조금 걱정이에요.”

“장 보러 가기 전에 먼저 나한테 물어보거라.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거면 그냥 가져가면 되니까.”

“저 그래서 매일 오려고요. 고양이들이랑 놀고 정원에서 꽃도 꺾어갈 거예요. 올 때마다 큰 장가 방 가져올 거예요.”

“그래 그래라. 뭐든지."

나는 농담 삼아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지만 시어머니께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전에 마리 필립이 나한테 말했어. 상대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걸 어려워하지 말라고 말이야. 나이 먹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부탁받으면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오히려 기분이 좋고 더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고 하더구나. 예전에는 내가 그녀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내가 그녀한테 도움을 주고 있으니 나도 그런 기분이 들더구나. 너한테는 이곳 생활이 쉽지 않을 거야. 혼자 있는 집에 누가 찾아와도 무서울 거고 말이야. 우울할 때는 집에 혼자 웅크리고 있지 말고 아무 때나 여기로 오너라. 부모는 자식이 찾아주면 항상 기분이 좋은 법이니까. 우리 둘이 지금처럼 산책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외식도 하고 그러자꾸나.”


맨날 농담만 하시던 시어머니께서 너무 진지하게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왈칵 날뻔했다.


마리 필립 아주머니는 시어머니의 친구분이신데 심장전문의로 근무하시다가 작년 심장수술을 받은 후부터는 몸이 약해지셔서 외출을 못하고 계시다. 그래서 시어머니께서는 그녀를 위해 매주 장도 봐주고 크고 작은 심부름을 대신해 주고 계신다.

“대신에 나와 미셸은 너에게 부담 주고 싶지는 않다. 네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혼자서 해 보도록 해. 우리는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기만 할 거야. 대신에 네가 우리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환영이란다. 그리고 이 집이 너에게 항상 열려있다는 것도 잊지 말거라.”

속으로 엄청 찡했는데 감정을 억누르고 웃으면서 나는 어머니도 똑같이 하시라고 말씀드렸더니 껄껄 웃으시며 고맙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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