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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Aug 20. 2020

우리 외할머니

"비행기에서 맛있는 거 사 먹어. 콜레라 조심하고..."

프랑스로 떠나오기 일주일 전쯤 저녁잠이 많으신 외할머니께서 저녁 8시가 다돼서 불쑥 찾아오신 적이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곧 떠난 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너무 보고 싶어졌다고 하셨다. 오시는 길에 집 앞 슈퍼에 들러서 이 손녀가 좋아하는 귤도 한 박스 주문을 하고 오셨다. 가기전에 많이 먹으라고 말이다. 




우리 외할머니는 큰삼촌 작은 삼촌네서 차례로 사촌동생들을 모두 키워내신 후 혼자 살고 싶으시다고 선언하신 후부터 줄곧 큰딸인 우리 엄마와 한동네에 살고 계시다. 할머니께서 오래전에 사시던 동네라 친구분들도 많아서 매일 노인정에 다니는 낙으로 사셨는데 하필 코로나 때문에 노인정도 닫고 외출도 못해서 매우 답답해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김밥을 잔뜩 싸서 할머니를 찾아갔더니 너무나 반가워하셨다. 잠깐 앉아서 수다 좀 떨고 나서 그 집을 나서는데 할머니께서 내 주머니에 무언가를 찔러 넣으시고는 내 주머니 지퍼를 잽싸게 닫으셨다. 분명 돈이라는 건 알겠는데 내가 거절할까 봐 주머니에 손도 못 대게 하시며 내 등을 현관으로 떠미셨다. 나 돈 많다고 아무리 말리고 말려도 할머니는 소용이 없으셨다. 


"니가 맨날 나한테 해주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거절하지 말고 받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받아 왔는데 집에 와서 꺼내보니 무려 20만 원이었다. 바로 전화를 드려서 무슨 돈을 이렇게나 많이 주셨냐고 안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오히려 역정을 내시며 말씀하셨다. 


"비행기에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주는 돈이야!" 


"할머니, 비행기는 음식 다 공짜야! 무슨 김밥 한통에 20만 원이나 주는 게 어딨어. 내가 김밥 팔러 갔나?


"그럼 자서방한테 맛있는 거 사줘!"


자서방 역시 그 돈은 돌려드려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자 할머니께 자기 대신 포옹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꼭 내후년에는 함께 한국에 가서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겠다는 약속도 전해 달라고 했다.



떠나기 바로 며칠 전 할머니께서는 집으로 또 찾아오셨다. 할머니께서는 현관에서 서계신 채로 손에 든 마스크 세장을 내미셨다. 


"니가 가기 전에 이거 주려고.."


할머니 쓰시라고 한사코 거절하다가 결국에는 받았는데 너무 감사하고 울컥했다.


현관에서 그거만 주고 바로 돌아서시길래 잠깐 들어오시라고 나랑 놀다 가시라고 할머니를 방으로 끌었다.


"할머니 나 방금 은행 가서 환전했거든. 프랑스 돈 보여줄게 잠깐만 있어봐."


"오야. 나도 외국돈 구경 좀 해보자" 


"할머니가 김밥 값으로 주신 돈으로 환전한 거야. 이걸로 자서방 맛있는 거 사주려고."


유로화를 보시며 하나하나 이건 우리 돈으로 얼마나 되냐고 물으며 신기해하셨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발급받은 여권이랑 비자 그리고 프랑스에서 자서방과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사진들도 보여드렸다. 할머니께 나는 이렇게 사진을 종종 보여드리는데 항상 흥미로워하신다.


"내가 이십 년만 젊었어도 우리 손녀 따라다니면서 세상 구경할 것인데 내가 너무 바보같이 살았네... "


"어휴 지금이라도 같이 가면 되지. 코로나 끝나면 엄마랑 다 같이 놀러 가자."


"말만 들어도 나는 좋다.


할머니께서 집으로 돌아가실 때 마침 내가 아침에 만들어 둔 샌드위치가 두 개 있어서 싸 드렸더니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니가 가면 이런 건 이제 누가 해 주누...


작년에 막내 이모가 돌아가신 후 자꾸 우셔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엄마를 비롯한 온 가족들이 침울한 시기였는데 마침 내가 한국에 있을 때라 2년 연속으로 할머니의 생신상도 직접 차려 드릴수가 있어서 너무 감사할 뿐이다.




내가 떠나온 다음날 내가 잘 도착했는지 궁금하셨던 할머니께서 언니에게 전화로 물으셨단다.

“거기 어디라 했지. 아, 아프리카 잘 도착했대??” 

슬플 뻔했는데 이거 듣고 언니랑 어찌나 웃었던지! 아프리카는 생각 못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건 부부끼리 나눠야지 싶어서 자서방에게도 들려주었다. 


자서방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뭐... 괜찮아. 처음에는 나더러 미국인이라고 하셨다면서... 그것도 이해해.”


“응 프랑스에 콜레라가 아직 위험하다고 우리를 많이 걱정하셔...” 


아마 지금도 할머니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서방이 미국인이라고 하실 것 같다. 설마 아프리카인이라고 하시려나... 


항상 건강하게만 계셔요. 내후년에는 제가 미역국 또 끓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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