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8일
시부모님께서 자서방 삼촌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1박 2일 일정으로 떠나셨다.
시어머니께서는 우리가 굶고 있을까 봐 걱정이 되셨던지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셨다. 그렇게 많은 음식과 식재료들을 채워놓고 가셨으면서도 말이다.
오랜만에 단 둘이 단출하게 저녁식사를 하게 된 우리는 각자 원하는 음식들을 대접에 따로 담아 전자레인지에 데운 후, 소파에 앉아 미국 시트콤을 보면서 식사를 했다. 맥주병도 하나씩 들고 말이다.
"이런 거 절대로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마. 걱정도 많으실 텐데 우리가 테이블에서 우아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
"우리 엄마는 와이프가 집 태울까 봐 걱정되시나 봐. 자꾸 와이프 안부를 묻네. 와이프한테는 내 안부 물으셔?"
"아니, 고양이들 안부만 물으셔."
다음날 오후에 나는 시부모님이 돌아오셨을 때 같이 저녁식사를 할 수 있도록 카레와 밥을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밥솥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당황을 했다.
내가 고장 낸 걸까...?
씻은 쌀이 담긴 밥솥을 이리저리 들고 다니면서 전기코드를 찾아 꽂아 보았지만 여전히 작동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냄비에다가 밥을 했다. 자서방은 절대 안 될 거라고 했던 냄비밥.
참나, 안되긴 왜 안되니. 학교 다닐 때 야영 가면 다 이렇게 했다고.... 우리 조 애들은 항상 나에게 물량을 확인받곤 했다. 왜 그랬을까... 나도 잘 몰랐는데...
자서방은 밥이 익어가는 냄비를 보면서도 여전히 못 미더워했다.
시부모님께서 돌아오시고 나는 저녁을 차리면서 시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카레가 맛있었으면 좋겠어요."
"맛이 있어야만 할 것이야!"
농담으로 말씀하신 거지만 시어머니의 단호한 목소리에 나는 슬쩍 긴장을 했다.
혹시 정말 내가 밥솥을 고장 낸 건 아니겠지... 그건 아직 말씀드리면 안 되겠다...
내 카레를 맛보신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소리치셨다.
"쎄봉! 쎄 트헤트헤트헤 봉!!"
이건 최고의 찬사다. 정말 맛있을 때만 외치시는 그 문장!!
"밥도 맛있고 카레도 맛있다. 대체 밥은 냄비로 어떻게 한 거니??"
"그게요... 밥솥에 전원이 안 들어오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냄비로 했어요."
"아 그거? 맞아, 그거 고장 났었지. 깜빡하고 말을 안 했네. 미셸! 내일 그거 좀 고쳐봐요!"
자서방은 식사 도중에도 연신 내 어깨를 감싸며 잘했다고 칭찬했다.
"정말 냄비로 밥이 되는지 몰랐어. 심지어 더 맛있는 거 같아. 와이프가 정말 자랑스러워. 카레도 정말 맛있다!"
시어머니께서는 거듭 물으셨다. 냄비로 밥을 어떻게 했는지를 말이다.
"그냥 똑같이 했어요. 대신 물을 조금 더 붓고요. 뚜껑 덮고 중불 유지하다가 끓으면 아주 약하게 낮추면 돼요."
"뚜껑은 계속 덮어놔야 되니?"
우리 시어머니는 밥솥에다 밥을 할 때도 자주 열어 보신다. 매번 말리지만 궁금해서 못 참겠다고 하신다.
"절대 열어보시면 안 돼요. 증기가 유지되는 게 중요해요."
"미셸이 밥솥을 못 고치면 냄비로 밥하는 것 좀 배워놔야겠구나."
식사 후에도 자서방은 오늘 너무 자랑스럽다며 오랫동안 꼬옥 안아주었다.
"이래서 우리 부모님이 널 사랑하는 거야..."
냄비밥을 했을 뿐인데 마법사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