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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Oct 27. 2020

시어머니의 다이어트

2020년 6월 21일


자서방의 삼촌과 시어머니의 사촌언니께서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셨고 그 두 번의 장례식을 다녀오신 후부터 시어머니께서는 건강에 대해 부쩍 신경이 쓰이셨는지 다이어트를 시작하셨다. 저녁마다 주키니, 당근, 각종 샐러드, 삶은 계란 (마침 내가 세 판이나 사다 놓았으니...) 그리고 캔 참치를 드신다. 그리고 그 위에는 특별한 드레싱 없이 발사믹만 살짝 뿌려서 드신다. 


이렇게 대접에 야채를 잔뜩 담은 그릇을 시어머니께서는 부다 볼이라고 부르신다.  

"부처님 그릇이요?" 


내 물음에 자 서방이 대답했다. 


"스님들이 채식을 하니까 그렇게 불리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시어머니의 부다 볼은 참 먹음직스럽다. 그리고 이날 우리는 시어머니 옆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었다. 

감자튀김과 주키니 갸또 인비저블도 한 조각. 거기에 마요네즈까지 곁들여서 푸짐하게 먹었다. 

사실 맞은편에 앉아서 부다 볼에만 집중하시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양심에 살짝 찔리긴 했다. 


"아참, 낮에 저 혼자 있을 때 옆집 남자가 다녀갔어요. 어머니 드리라고 전단지를 주고 갔어요."


"아 그 전단지! 근데 너 그 사람이랑 대화를 했어?"


"네, 사실 자서방이 퇴근해 온 줄 알고 웃으면서 달려갔다가 살짝 당황했었는데요, 저보다 더 당황하시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몇 마디 했더니 프랑스어 잘한다고 칭찬해주셨어요!" 


자서방은 입안 가득 스테이크를 씹다 말고 자랑스럽다며 기름이 뭍은 입으로 내 볼에 뽀뽀를 했다. 옆집 남자는 시어머니께서 '마이 달링'이라고 부르시며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는 착하고 잘생긴 남자였다.


"아, 근데 다시 보니까 생각보다 그렇게 잘 생기진 않았더라고요. 너무 말랐어요. 남자라면 그래도 배가 이 정도는 돼야죠."


옆자리에서 신나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던 자서방의 배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자서방은 만족스럽게 끄덕끄덕하는데 시어머니께서는 그런 자서방을 빤히 응시하시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마치 할 말은 많지만 하지는 않겠다는 듯한 표정이셨다. 그 눈빛을 고대로 받아치며 자서방이 시어머니께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엄마한테 받은 유전자로 이 정도면 성공적이죠." 


"아, 그건 인정한다."


쿨하신 우리 시어머니 때문에 온 식구들이 깔깔 웃었다. 





식사가 마쳐갈 무렵 시아버지께서 냉장고에서 작은 종이 상자를 갖고 오셔서 간단한 프랑스어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자, 하나는 네꺼, 하나는 내 거. 우리 둘만 먹을 거야.”


우왕~~


햄버거만 한 슈였다!!


정말 웃겼던 건 이걸 보자마자 시어머니와 자서방은 동시에 시아버지께 화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왜 여기로 가져오냐, 도움이 안 된다, 저런 건 왜 사 와가지고, 저쪽으로 가서 둘이서 먹어라 등등 원성이 끝이 없었다. 그래도 시아버지께서는 개의치 않으시며 접시에 슈를 담아서 나에게 건네주셨다. 


나는 자서방에게 한입 권했지만 귀신이라도 쫓듯 워이 워이 손을 휘젓고는 나가 버렸다. 하긴 오늘 마요네즈를 이 크림만큼 먹었을 테니까 양심은 남아있구나.

 

어느새 식탁에는 시아버지와 나만 남아있었고 나는 시아버지께 감사 인사를 드린 후 먹기 시작했다. 조용히 천천히 행복하게 음미했다.


뒤늦게 시어머니께서 탐스러운 체리를 씻어서 디저트 테이블에 합류하셨다.


"그거보다야 이게 더 건강한 디저트지."



저 체리도 내가 반 이상 먹은 것 같다. 

제 뱃살은 다 어머님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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