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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Oct 27. 2020

봉쇄기간 중 확찐 자 남편

2020년 4월 13일


밤에 시댁에 도착한 후 나는 너무 피곤해서 짐도 풀지 못한 채 대충 샤워를 한 후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니 9시였다. 덜 말린 채로 잤던 머리가 사자처럼 산발이 돼 있었다. 대충 질끈 묶고서 옆에서 아직 자고 있는 자서방을 두고 조용히 아랫층으로 내려왔더니 항상 부지런하신 시아버지께서는 테라스를 소독하고 계셨고 시어머니께서는 부엌에 계셨다. 


큰소리로 "봉쥬!!" 하고 두 분께 인사를 드렸고 두분도 역시 환하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아직은 쌀쌀한 테라스로 나갔더니 새소리가 엄청나게 들려왔다. 


내가 낭시에 오긴 왔구나...


시어머니께서 뜨거운 라테 한잔과 함께 브리오슈도 한 조각 구워주셨다.


“저는 이걸로 충분하지 않아요.”


이 말에 시어머니는 크게 웃으시며 두 조각을 더 얹어주셨다. 


이 정도는 돼야죠... 

곧 한국에 있는 언니한테서 화상 전화가 왔고 조카들과도 인사를 했다. 그 후 나는 부모님과도 화상통화를 했다.

늦잠을 자고 내려온 자서방도 우리 가족들에게 힘차게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바이러스로 봉쇄된 프랑스에 내 발로 들어왔으니 친정식구들이 정말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자서방은 나에게 말했다. 봉쇄기간 중 오전의 주된 일과는 점심식사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이다. 

점심에는 훈제연어와 당근과 셀러리를 섞은 샐러드를 먹었다. 자서방을 위해서는 시어머니께서 양배추, 돼지고기 그리고 감자를 함께 쪄낸 요리를 준비하셨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빵과 와인을 곁들여 먹었다. 오늘따라 내가 유난히 많이 먹는다며 시어머니께서 어제 비행기에서 제대로 못 먹었냐고 물으셨다.


“아니요. 저 비행기에서 나오는 거 안 남기고 모조리 다 먹었어요.”


자서방은 웃으며 말했다.


“너도 여기 있으면 곧 나처럼 될 거야.” 


어우야... 곰이 말을 하네...


자서방은 이 격리 생활에 완전 적응이 된 것 같았다. 외출을 못해서 답답해하는 모습도 전혀 없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격리생활이 잘 맞는다며 헤맑게 웃곤 했다. 그리고 시어머니께서는 그런 자서방의 모습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곤 하셨다. 


점심식사 후에 시어머니께서는 나에게 디저트를 권하셨는데 내가 배불러서 못 먹겠다고 했더니 먹을 준비를 하고 있던 자서방까지 디저트를 못 먹게 하셨다. 자서방은 잠시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시어머니께서는 저녁에 다같이 먹는게 어떻겠냐며 삐친곰을 능숙하게 달래셨다. 


저렇게 조련하는 거구나... 





저녁 5시쯤 온 식구가 거실에 둘러앉아 티브이를 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소파에 반쯤 누워 편안한 자세로 두병째 맥주를 마시고 있는 남편 곰의 배를 쓰다듬으며 나는 시어머니께 물었다.


“자서방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도 이랬어요?”

자서방은 나더러 짓궂다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시어머니께서는 손짓까지 더하시며 진지하게 대답하셨다. 

“아니,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커지더구나. 마치 브리오슈가 오븐에서 부풀듯이 배가 자꾸 이렇게...”

“베이킹파우더를 너무 많이 넣으셨네요!


곰은 남 얘기처럼 듣고 있다가 우리가 웃으니 속 편하게 따라 웃기 시작했다. 

“건강하기만 하면 돼. 보기에는 나는 좋아. 건강이 걱정되는 거지...”

자서방은 봉쇄가 해제되고 출근을 하게 되면 금방 빠질 거라고 했지만 저녁에 마크롱 대통령은 한 달 더 봉쇄를 연장해 버렸다.





저녁 식사 중에 내가 실수로 머리끈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직접 주우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서방더러 주워 달라고 해 보았다. 자서방은 내 의도를 다 알고 있다는 듯 씩 웃더니 당당하게 몸을 쭈그려서 그 끈을 주워냈다. 

“다행이다. 아직 이 정도는 되는구나!”


시뻘게진 얼굴로 자서방은 뭔가 큰일이라도 해낸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설픈 프랑스어로 시아버지께 대화를 시도했다. 자서방이 살이 많이 쪘다고 말했는데 평소에 말씀이 없고 무뚝뚝하신 시아버지께서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시더니 손짓까지 더해서 배 둘레가 이만하다며 열정적으로 대답을 하셨다. 시아버지께서 이렇게 흥분하시는 걸 본 적이 있었던가...? 



자서방이 점심때 못 먹어서 아쉬워했던 바로 그 디저트를 저녁에 먹었다. 너무 맛있었지만 다 먹고 나니 배가 너무 불렀다. 


“으아... 배가 너무 불러...”

“한 달 후면 너도 이렇게 된다?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해!”

자기 배를 쓰다듬으면서 악담을 참 다정하게도 하는 자서방이다. 

원래도 섹시하던 엉덩이가 지금은 열 배 더 섹시해졌다고 말했더니(이건 사실이다!) 자서방은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에 앞장서서 일부러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요란하게 올라갔다. 

견고해 보이던 계단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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