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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Oct 28. 2020

슬기로운 봉쇄 생활

소테른 와인은 거들뿐

2020년 4월 30일


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점심식사 후 한 시간 정도 정원에서 선배드를 깔고 일광욕을 하고 들어왔더니 자서방이 보여줄 게 있다며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와이프가 아주 좋아하는 걸 줄 거야.”

자서방은 벙글거리며 지하실에 있는 와인 저장고로 나를 데리고 갔다. 위칸에 있는 화이트 와인들 중 한 병을 꺼내 들더니 나에게 말했다. 


“소테른 와인이야. 2009년 산을 구하는 게 쉽지 않거든. 발견하자마자 와이프랑 마시려고 한 박스 사 왔어. 병도 작은 거 봐. 딱 와이프 스타일이지?”


거실로 올라오자마자 우리는 와인을 시음했다. 


와... 달콤하고 향이 진짜 좋았다.


한 모금을 입에 살짝 머금었을 때 내 시선은 저절로 활짝 열린 테라스와 파란 하늘을 둘러보고 있었다. 새소리도, 곰이 된 자서방도, 향이 좋은 이 화이트 와인도, 이 모든 것들이 다 완벽한 순간이었다. 


감격한 내 표정을 보더니 자서방이 뿌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봉쇄 생활하는 거 정말 힘들다. 그렇지...?”

“응...”

2초 후 둘이서 마주 보고 깔깔 웃었다.


봉쇄라...

앞에 있는 자서방을 바라보았다. 봉쇄기간 중 잘 먹고 움직이질 않아서 곰이 돼 버린 자서방은 이발소를 못 가서 머리도 점점 덥수룩해져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안전하게 입국한 후 마침내 남편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나는 너무 행복했다.

“와이프 오면 같이 마시려고 얼마나 기다렸다고...”

내가 같이 있으니 너무 좋다고 몇 번이나 말하는 자서방에게 나는 말했다. 


“나도 너무 행복한데 동시에 마음 한구석은 조금 찜찜한 거 있지. 우리가 이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항상 데드라인이 있었잖아. 2주든 3주든 휴가가 끝나면 일터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지금은 그냥 이러고 같이 놀고먹고 살찌고 해도 되는 건가 싶은 게 나도 모르게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드네...”

“와이프는 프랑스어 공부도 하고 테라스에서 요가하면 되지.”

“응... 그렇지. 근데 귀찮아...”

또 같이 웃었다. 


점점 닮아간 단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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