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용 Apr 24. 2021

시댁에 가면 힐링이 된다.

기분이 좀 우울했었는데...

2021년 4월 23일


남편과 내 체류증을 위해 경시청에 갔다가 10년 체류증 취득에 실패를 한 후 실망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어머니로부터 메시지 한통을 받았다. 어쩜 이렇게 항상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알고 계신 걸까! 

"어떻게 됐니? 임시체류증 안 주면 증명서라도 달라고 해야 하는데..." 

"다 끝났어요. 저 2년 받았어요...

"집에 들러서 차 마시고 갈래?" 

기분이 좀 우울했는데 시댁을 떠올리니 뭔가 벌써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시댁에 오면 이 녀석들의 뒤통수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캡슐 티를 한잔 마시려고 다이닝 룸에 갔더니 모웬이 쪼르르 따라왔다. 그리고는 시어머니께서 곱게 새로 식탁보를 깔아 두신 식탁 위로 뻔뻔하게 올라가서 나를 바라보았다. 


너 정말 고양이 맞니...? 꼬리만 안 칠 뿐이지 행동은 아무리 봐도 강아지 같은데...



시어머니께서 차와 먹으라며 주신 하트 모양 과자! 생강쿠키맛인데 너무 맛있었다. 게다가 하트 모양이라니!!



자서방 주변으로 이스탄불과 모웬이 모여들자 시어머니께서 자서방에게 고양이 간식을 내미셨다. 그러자 자서방 왈:

"나 이거 안 먹어..." 

그 말에 나와 시어머니는 크게 웃었다. 우리 남편 농담할 때 매우 능청스러워서 진짜 같이 말하는데 이제는 좀 적응이 되었다. 연애할 때는 구분이 좀 어려워서 가끔 당황했다. 


곧 시아버지께서도 내려오셔서 네 식구가 둘러앉아 차나 커피를 함께 마시며 경시청 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걱정 말거라. 넌 1년 안에 이미 프랑스어를 많이 배웠잖니. 2년 안에는 또 얼마나 더 늘겠니?" 

시어머니의 말씀에 자서방도 한마디 거들었다. 

"작년 12월에 TCF시험을 봤을 때도 성적표에서 한 항목만 A2를 받았고 나머지 3 항목은 모두 한 단계 높은 B1으로 받았잖아. 걱정할 거 없어. 정 걱정되면 B1 말고 그냥 A2로 다시 봐도 상관없고." 

 시어머니께서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끄덕하셨다. 나더러 항상 국적을 취득하라고 하시면서... 국적 취득에는 B1이 요구된다는 걸 모르시는 게 분명하다. 



나보다 자서방이 먼저 발견한 시어머니의 새 요리책. 시어머니의 두 번째 한국 요리책이다. 

자서방이 이 책을 흥미롭게 넘겨보고 있을 때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도 이런 책 낼 수 있잖니? 네가 만든 한국 음식들을 우리가 맛보고, 우리가 좋아하는 요리들을 추려서 말이야. 넌 분명 더 좋은 책을 낼 수 있을 거야!" 

아... 설마요...



내가 김밥 페이지를 보고 있었더니 자서방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시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빠, 전에 엄마랑 요용이 김밥 만든 거요, 그거 정말 드셨어요?" 

"응, 먹었지! 맛있었어!" 

그 말을 듣고 나는 한번 더 여쭤보았다.

"정말 맛있으셨어요?"

"그래 정말!"

내 얼굴에 화색이 심하게 돌자 자서방은 웃으며 시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빠 대답 신중하게 하셔야 해요. 그거 또 드셔야 할지도 몰라요." 

"제가 또 만들어 드릴까요? 저 집에 재료 다 있어서 지금 당장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아버님 좋아하시는 참 치루요!"

맛있었다고 하시더니... 왜 그냥 웃기만 하시나요.... 


김이 해외에 얼마나 많이 수출되고 인기가 높은지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우리 시부모님께는 여전히 두려운 식재료일 뿐이다.  안타까워라...



시어머니께서 싸주신 샐러드를 가지고 자서방 팔짱을 끼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댁에 가기 전에는 10년짜리 체류증을 못 받아서 기분이 좀 우울했는데 역시 시댁이 내 힐링 장소인가 보다.

기분 좋아져써!

작가의 이전글 친정인 듯 시댁인 듯 친정 같은 시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