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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May 13. 2021

시부모님께서 축하해 주신 내 생일

이제는 나보다 내가 좋아하는걸 더 잘알고 계신것 같다.

2021년 5월 4일


작년 이맘때쯤 시댁에서 지내면서 내 생일을 축하받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지나고 프랑스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생일이 찾아왔다. 

시부모님께서는 며칠 전부터 내 생일 케이크를 미리 주문했다고 말씀하셨고 오후에 함께 케이크를 먹자며 우리를 초대하셨다. 


내 생일인 오늘, 우리 부부가 시댁으로 건너갔을 때 시댁 거실에는 우리 시부모님뿐만 아니라 옆 옆집에 사시는 시부모님 친구분, 아니 아주머니께서도 와 계셨다.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아니 아주머니의 생신이 바로 하루 전이었기 때문에 함께 축하하고 싶어서 초대하신 거라고 하셨다. 



모웬은 자서방이 유독 반가워서 자서방의 무릎에 올라간 것이 아니다. 자서방이 모웬의 의자에 앉아있기 때문에 저러는 것이다.


예쁜 은방울 꽃은 마리 필립 아주머니로부터 선물 받으신 거라고 하셨다. 프랑스에서는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우정과 행운을 상징하는 은방울 꽃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문화가 있다고 하셨다. 올망졸망 탐스러운 꽃송이들이 너무 예쁘다.      


부엌에서 발견한 내 생일 케이크. 내가 좋아하는 생또노레다!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 상자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으... 난 시어머니 생신 때 꽃화분만 드렸는데...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죄송하고 민망한 기분이 더 앞섰다. 



모두가 바라보는 앞에서 선물 상자를 풀어보았다. 모두들 내 얼굴만 빤히 보고 계셨다. 



옴마나...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시어머니시다. 

나는 원래 어깨에 매는 큰 사이즈의 숄더백을 선호해 왔는데 프랑스에 와서 보니 장 보러 동네 나갈 때 이런 작은 핸드백이 매우 유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그동안 나는 시어머니께서 쓰시던 낡은 가죽 핸드백을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어머니께서는 그게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가만... 내가 얼마 전 자서방이 인터넷으로 여자 핸드백을 검색하는걸 우연히 봤었단 말이지....? 나는 자서방에게 슬쩍 물었다.

"이거 혹시 당신 아이디어 아니야? 얼마 전에 당신이 핸드백 검색하는 거 봤었는데?" 

"원래 내가 핸드백을 사주려고 했지. 근데 막상 선택하는 게 어려워서 엄마한테 전화드렸더니 엄마가 이미 핸드백을 생일선물로 사놨다고 하시더라고. 우리 엄마 엄청 빠르시잖아." 

옆에서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내 마음에 드는지 재차 물어보셨다.

"당연하지요! 너무 예쁘고 감동스럽고 감사드려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신 걸까요."

잠시 후 아니 아주머니께서도 나에게 수국 화분을 건네시며 생일 축하를 해 주셨다. 

"즈와이유 자니벡세흐! (생일 축하해요!)" 

"저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는데요... 감사합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아니 아주머니를 위해서 예쁜 꽃다발을 준비하셨다. 



곧 시어머니께서 케이크에 불꽃초(?)를 꽂고 불을 붙이셨다. 불꽃이 요란스럽게 타오를 때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생일 축하 노래를 힘차게 독창하기 시작하셨다. 우리 시어머니 최고!!! 

나머지분들도 곧 같이 불러주셨다. 


아... 민망한데 행복한 기분이랄까...



야속한 고양이들아... 내가 너희한테 이것밖에 안되니... 축하해주는 시늉이라도 좀 해다오... 


시어머니께서 부엌으로 케이크를 들고 들어가셔서 한 조각씩 자르셨다. 그리고 나는 케이크가 담긴 접시들을 거실로 날랐다. 



이 디저트 접시들은 파리에 사는 시어머니의 조카인 마리가 선물로 보내준 것인데 접시마다 서로 다른 프랑스의 디저트들이 이름과 함께 프린트되어 있다. 시어머니께서는 나를 위해 특별히 생또노레 접시에 생또노레 케이크를 담아주셨다. 



커피와 함께 먹으니 더 맛있었다. 

잠시 후 시아버지께서는 생또노레 (나만큼 좋아하신다.) 한  조각을 더 드시려고 부엌으로 가셨는데 허겁지겁 내 이름을 부르며 다시 나오셨다.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시아버지께서는 케이크 위에 데코로 있던 초콜릿 (생일 축하라고 써져있는)을 내 접시에 고이 올려주고서 다시 들어가셨다. 마치 큰일 날 뻔했다는 듯 진지한 표정이셔서 나는 웃을 타이밍을 못 찾고 있었는데 자서방은 옆에서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모웬은 어느새 아니 아주머니 옆에 자리를 잡고 졸고 있다. 역시 고양이의 탈을 쓴 강아지 같단 말이지...


프랑스가 너무 건조해서 우리 둘 다 손이 어찌나 거칠어졌는지... 


무뚝뚝한 남편이지만 나는 이 남자를 만난 덕분에 이렇게 좋은 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항상 남편에게 고마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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