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참 힘들구나. 일도 안해도 되고... 호호호"
2021년 5월 1일
얼마 전 시어머니께서 사다 주셨던 시금치로 잡채를 만들었다.
시어머니께서 잡채를 좋아하시니 시댁에 나눠드리려고 왕창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색도 곱고 맛있게 만들어졌다.
나름 들어간 내용물이 많다. 동네 슈퍼에서 산 말린 표고버섯이랑 목이버섯을 물에 불려서 넣었고 시금치와 당근도 듬뿍 넣었다. (당근은 채 썰어서 전자레인지에 4분 정도 돌린 후에 살짝만 볶아주었더니 더 간편하고 색도 곱게 되었다.)
사실 내 잡채의 맛을 보장(?) 할 수 있는 트릭은 바로 시판 갈비양념 소스다. 고기에 양념을 재웠다가 볶은 후고 기를 볶고 남은 소스에다 버섯도 볶는데 그러면 버섯까지 맛있어진다.
프랑스에서는 얇게 슬라이스 된 고기를 구할 수가 없어서 일일이 썰어줘야 하는데 고기가 살짝 얼렸을 때 썰면 얇게 썰 수가 있다.
한통 담아서 무스카델한테 먼저 자랑을 한 후 시댁으로 갔다.
시댁 정원에도 예쁜 튤립이 피었다!
일광욕을 하고 계시던 시어머니께서 나에게도 일광욕을 권하시며 옆에 의자를 하나 더 깔아주셨다.
모웬은 아직 2층 침실에서 자느라 안 내려왔다고 하셨다. 정오가 넘었는데!
덕분에 이스탄불이 혼자서 애교 담당을 맡게 되었다. 나를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뜨거운 시선을 내게 자꾸 보내고 말도 많이 걸었다. 특유의 소심한 목소리의 냐옹이 이스탄불의 매력포인트이다...
좁은 울타리를 통과해서 옆집 정원으로 넘어가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귀여운 뒤태에 반했다. 맨날 저렇게 힘겹게 넘나들고 있었구나...
옆집에 넘어가더니 바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 이스탄불에게 시어머니께서는 커피 한잔만 더 갖다 달라고 요구하셨지만 이스탄불은 대답이 없었다.
우리가 편안히 정원에 앉아서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 우리 옆에서 시아버지께서는 용접을 하고 계셨다. 우리 시아버지는 정말 못하시는 게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지런함이 가장 존경스럽다.
옆에서 불꽃이 파팟 튀어서 나는 좀 놀랬는데 시어머니께서는 평온하기만 하셨다. 심지어 겁쟁이 이스탄불도 익숙한 표정이었다. 다만 시아버지께서는 용접용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셔서 시어머니께 잔소리를 들으셨고 곧바로 마스크를 착용하신 후 작업을 이어가셨다.
오늘 만드신 작품!
저 위에 화분을 올려두실 거라고 하셨다. 이동이 편리하도록 바퀴를 용접으로 설치하신 것이다. 시어머니께서는 장인이시라며 치켜세우셨다.
"요용한테 그동안 당신이 만든 작품들 다 보여주지 그래요. 잘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게요!"
역시 내 블로그와 유튜브에 가장 큰 성원을 보내주시는 시어머니시다. 시아버지께서는 민망하신 표정으로 그저 웃으셨다.
평화롭게 의자에 기대 누운 채로 해를 쬐시면서 시어머니께서는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은퇴는 참 힘들구나. 일도 더 이상 안 하고... 호호호"
여유와 평화를 매우 즐기고 계시다.
요즘 매일 정원에서 이렇게 일광욕을 하시느라 벌써 팔이 빨갛게 타셨다. 그래서 요즘에는 선크림도 잊지 않으신다고. 그을린 피부색만 보면 벌써 휴가를 다녀오신 것만 같다.
내 휴대폰에 반사되는 불빛에 이스탄불이 홀렸다. 시어머니와 누워서 이스탄불의 재롱을 보며 또 웃었다.
시아버지께서 사다주신 단골집 바게트를 하나 얻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시어머니께서는 브리오슈를 만들어서 갖다 주겠다고 하셨다. 두 개를 만들어서 하나를 주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반개만 달라고 부탁드렸다. 나중에 갓 구운 브리오슈를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반개만 부탁드린 것을 후회했다.... 과거의 나... 도대체 왜 그런 거니!
집에 돌아오고 얼마 안 돼서 시어머니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너무 맛있다! 고맙다!"
남은 잡채는 저녁에 자서방이 말끔하게 모두 먹어치웠다. 시금치, 목이버섯, 고기, 면 모두 모두 완벽하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래도 그 많은걸 다 먹을 줄이야... 남으면 다음날 잡채밥으로 먹으려고 했더니...
다들 이렇게 맛있어해 주니 기분이 좋아서 자꾸자꾸 만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요리의 즐거움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