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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상블리안 Aug 15. 2022

예술가에게 필요한 세 개의 믿음

#11 영화 ‘틱, 틱... 붐!’으로 바라보는 예술가의 삶

음악으로 영화보기 #11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영화 '틱, 틱... 붐!’ 포스터


  예술가의 삶은 대체로 불안하다. 예술은 생명이 살아가기 위한 동물적 본능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술가는 예술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다. 나아가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예술을 유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목표와 재능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불타오르는 창작욕은 그 어떤 의식주와 관련한 가치보다도 삶을 살아나가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가끔 예술은 예술가의 삶을 다 태워버리기도 한다. 가치 있는 예술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불안은 모든 예술가들이 가지는 두려움이다. 이는 가난한 예술가에게도, 풍족한 예술가에게도 동일하다. 


조너선 라슨(Jonathan Larson, 1960-1996)

  영화 ‘틱, 틱... 붐!’(Tick, Tick... Boom!, 2021)은 뮤지컬 <렌트>(Rent, 1996)의 작곡·작사가이자 각본가인 조너선 라슨(Jonathan Larson, 1960-1996)의 삶을 다루고 있다. 정확하게는 서른 살 생일을 열흘 앞둔 29살 라슨을 현재시점으로 그리고 있으며, <렌트> 이전의 작품인 <슈퍼비아>와 <틱틱붐>을 주요 소재로 다룬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그의 삶은 ‘가난한 예술가’의 표본 그 자체이다. 식당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난방도 잘 안 되는 5층 다락방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고, 그 외의 시간은 작곡에 몰두하며 지낸다. 그는 선배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 1930-2021)을 존경하며 늘 그처럼 20대 때 무언가 성과를 이뤄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서른 살 생일은 가혹한 선고식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대로 그는 시계 초침이 틱, 틱, 틱 요란하게 움직이는 환청을 종종 듣는다. 그의 곡 ‘30/90’에는 늘 엄격하게 다가오고 관통하는 시간에 대한 초조함이 담겨있다. 


영화 '틱, 틱... 붐!’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라슨에게 시간은 시한폭탄과 다름없었다. 그는 8년간 수정을 반복하며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인 <슈퍼비아>의 워크숍을 성공적으로 진행했으나, “너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라.”는 평가와 함께 제작에는 실패한다. 이십대가 이틀밖에 남지 않은 시점, 그는 좌절하고 모든 것을 포기할 마음을 먹는다. 예술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해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 친구들, 마이클과 수전처럼 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다시 예술의 길로 돌아온다. 그가 다시 예술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향한 믿음들 덕분이었다. 바로 내가 나 스스로를, 친구가 나를, 그리고 뛰어난 동료가 나를 믿는 총 세 개의 믿음이다. 

  우선 예술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목소리로 내는 것에 확신이 있어야 한다. 충실한 경험은 감정의 폭을 넓혀주고, 그렇게 모인 이야기들은 곧 예술의 원천이 된다. 즉 삶 자체가 곧 예술이며 영감의 목적이다. 목적이 명확한 삶이 가득 쌓이면 라슨의 작품 <틱틱붐>과 <렌트>처럼 자연스레 걸작이 탄생한다. 그의 친구 마이클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너를 이끄는 감정은 두려움이야, 사랑이야?” 성취에 대한 불안이 가득했던 시기의 라슨은 무심코 “두려움이지! 100% 두려움이야!”하고 소리를 내지른다. 하지만 그는 점차 자신의 경험을 예술로 녹여내는 것을 시도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예술을 향한 두려움과 사랑의 균형을 찾아간다. 이는 삶을 토대로 한 자신만의 예술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을 의미한다. 


영화 '틱, 틱... 붐!’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친구가 나를 지지해주는 믿음이다. 라슨의 친구 마이클은 어려서부터 연기의 꿈을 꾸었으나, 경제적인 고난에 지쳐 도전을 접고 광고회사에 취직을 한다. 또한 라슨의 여자 친구 수전은 발레 무용수였으나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 이후 무용학원 강사직으로 직업을 전환한다. 이 두 인물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저울질을 지속하다가, 결국 현생을 위한 일상을 선택한 수많은 예술가들을 대변한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라슨의 재능과 노력을 믿어준다. 마이클은 라슨에게 “네 재능을 포기하는 건 비극이야.”라고 독려한다. 많은 사람들이 라슨을 깎아내려도 그의 좌절이 포기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친구의 응원 덕분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작품에 영향을 준다면, 친구의 믿음은 예술가의 고통을 직접 감싸 안는 감정적인 지지가 되어준다.


영화 '틱, 틱... 붐!’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세 번째는 자신의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뛰어난 동료에게서 받는 믿음이다. 손드하임은 라슨의 작품을 알아보고, “너는 미래가 밝다. 너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라.”라고 칭찬한다. 또한 <슈퍼비아>의 실패에도 라슨이 계속 이어서 작업해나갈 수 있도록 객관적인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동료의 믿음은 예술가가 예술 앞에서 편견이 드리우지 않도록, 본질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라슨의 곡 ‘Johnny Can’t decide’에는 “야망이 조니를 긁어먹고 있어.”라는 가사가 있다. 그 순간 라슨 스스로에게 음악에 대한 열정은 불필요하게 과도한 야망으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손드하임은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고통이 잠시 예술을 가리더라도, 창작을 해내갈 용기가 채워진다면 라슨이 분명 엄청난 작품을 써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술가가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탱해나가려면 수많은 조건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 살펴본 것은 예술가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가치 있게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에 대한 것이다. 자신의 성공을 증명하는 것은 예술의 목적이 아니다. 예술가가 어떤 가치를 선택했으며 그것을 예술로 승화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이러한 ‘과정’의 서사는 완성된 형태로 내놓아지는 개별의 작품보다도 더 핵심이다. 안타깝게도 <렌트>의 오프닝 바로 전날 밤 라슨은 급작스레 대동맥류 파열로 사망하였다. 하지만 사후에도 브로드웨이에 길이 남은 그의 작품들을 보면, 예술은 죽음이 아닌 삶으로 증명되는 것이 분명하다.



1)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모든 아홉수들에게 추천하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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