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달빛
음악으로 영화보기 #14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드뷔시를 좋아하세요?
만약 당신이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를 봐야 한다. 게다가 만약 당신이 근래 영화, 문학, 드라마, 예능, 아이돌, 게임 등 수많은 분야에서 소재로 쓰이고 있는 멀티버스, 즉 다중 우주에 대해 호기심이 있다면 더더욱 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을 꼭 보아야 한다. 이 영화에서 드뷔시의 작품 달빛(Clair de lune, 1890)은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방식으로 비틀어진다. 달빛의 첫 마디 세 음정은 격투 장면의 온갖 화려한 시각적 효과를 등에 업고 아주 잠깐 아스라이 스쳐지나간다. 방금 들은 것, 달빛의 선율 아니었나? 하고 의심을 품자마자 실험적이고 돌발적이고 정신 사나운 액션들이 그 의심을 덮어버린다. 멀티버스를 넘나들며 신나게 영화를 즐기다 보면 어느덧 드뷔시의 달빛이 정말로, 제대로 흘러나온다. 언제? 가장 파괴적인 전투 장면에서, 누구보다 달콤하게.
에블린과 디어드리
세탁소 주인 에블린과 국세청 조사관 디어드리의 갈등 관계는 대부분의 멀티버스에서 비슷한 결을 가진다. 대개 디어드리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우세한 권력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반면 에블린은 멀티버스의 다른 에블린에게서 재능을 빌려오며 조금씩 각성해나간다. 그러나 이 둘은 일상에 건조하고, 업무적이고, 딱딱하고, 불친절하다는 점이 매우 닮아있다. 하루 온종일 단 한 번의 웃음도 짓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다. 그런데 드뷔시의 달빛은 꼭 이 둘의 전투 장면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따뜻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이들의 싸움에 어째서 달빛같이 달콤하고 은은한 곡이 흐르는 것일까? 사실 달빛의 모티브를 사용한다면 포근한 드뷔시의 달빛보다는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월광 소나타 3악장 정도의 격렬함이 오히려 장면과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다정한 것이 세상을 구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멀티버스에 있다. 극중에서 인물들은 통계적으로 말이 안 되는 황당한 행동을 했을 때 다른 멀티버스의 나 자신으로 옮겨 다닐 수 있다. 이러한 버스 점프(Verse Jump)를 수백 번 뛰어넘던 중 에블린과 디어드리의 관계가 서로 우호적인 유일한 우주가 나타난다. 이곳에선 모든 인류의 손가락이 소시지로 이루어져있어 피아노를 발가락으로 칠 수밖에 없다. 같은 단발머리, 같은 소시지 손가락을 한 에블린과 디어드리는 함께 발가락으로 달빛을 연주하며 서로를 쓰다듬는다. 이 다중우주에서 둘은 연인 관계인 것이다.
은근하게, 또는 코믹하게 계속 암시되고 있던 달빛의 모티브는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피아노 건반에 의해 오롯이 연주된다. 여기서의 달빛은 앞서와 같이 전자기타의 파워풀한 사운드로 편곡되지도, 첼로의 저음역대로 따뜻하게 묘사되지도 않는다. 원곡의 속도와 음향을 덤덤하게 그대로 피아노로 살렸다. 다만 가사가 붙었다, “I Love You”라고. 달빛의 주선율에 은은한 인성(人聲)으로 계속해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에블린과 디어드리는 너무도 서로 닮아있어 온갖 멀티버스에서 증오와 사랑, 우정을 넘나드는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 달빛을 통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절대 허물어질 것 같지 않던 그들의 벽을 의외의 방법으로 손쉽게 부숴버리는 건 바로 에블린의 남편, 웨이먼드이다. 그는 다정함의 대명사이다.
친절, 인내, 용서
이 영화에서 사실 줄곧 핵심 주제를 외치고 있는 것은 에블린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 웨이먼드이다. 그는 계속하여 유쾌한 장난을 치고, 음악과 춤을 사랑하고, 싸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말이지 끝까지 올곧게 다정하다. 그는 다정함의 3요소를 Kind, Patient, Forgiveness라고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 바로 친절하기, 인내하기, 그리고 용서하기이다. 에블린과 디어드리의 극한으로 치닫는 갈등은 웨이먼드의 수제 쿠키 한 상자에 우습게도 무너진다. 또 어떤 우주에선 단순히 어려운 사정을 토로하고 양보를 구하는 단 몇 분의 구구절절한 대화만으로도 싸움이 쉽게 와해되기도 한다. 그들의 불친절함과 건조함 이면에 숨겨져 있던 따스함을 이끌어내는 것은 의외로 아주 작은 다정함이다.
에블린과 웨이먼드의 딸 조이는 멀티버스로 모든 것, 모든 가능성을 경험한 후 강한 허무주의에 빠진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만 그것을 간접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는 존재이다. 아마도 그건 신의 영역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것을 언제든 새로 시작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죽기 바로 직전까지도 유효하다. 그래서 세상을 멸망시킬 만큼 거대한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웨이먼드는 끝까지 다정함을 설파한다. 서로의 분노와 절망까지도 품어줄 수 있는 조그마한 가능성들이 모인다면 인류애가 말라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다정의 3요소, 친절과 인내와 용서의 공식 덕분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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