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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양 Sep 08. 2019

유비의 인내

마지막 한 번으로 그르치지 않기를...

   유비가 스승인 노식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제법 넓은 개울을 건너게 되었다. 다리는 지난번 비가 왔을 때 쓸려갔다. 늦가을이 지나 물이 차가웠지만 별도리가 없어 유비는 신을 벗고 바지를 걷어 개울을 건넜다. 물은 보기보다 깊어 유비의 허리까지 젖을 정도였다. 갈 길이 멀어 몸도 말리지 않고 급히 떠나려고 하는데 개울 뒤편에서 한 노인이 유비를 불렀다.


    "섰거라. 귀 큰 어린 놈아."

   

   노인은 허름한 차림에 낡은 지팡이를 지고 있었다. 노인은 유비가 마치 다리를 치워버리기라도 한 듯, 꾸중하는 듯한 말투로 자신을 업고 강을 건너라고 당당히 말했다. 유비는 탐탁지 않았지만, 다시 개울을 건너 노인을 업고 건너왔다. 물은 더 차가웠고 노인은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이런 내 정신 보게. 보퉁이를 저쪽에 두고 왔구나. 네놈을 부르는 데 급해서 그만..."


  노인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여전히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노인은 겉보기에 행색이 초라했지만 유비는 무엇인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범상치 않았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네가 어딜 가서 찾는단 말이냐? 잔말 말고 다시 나를 업어라"


  어지간한 유비도 슬슬 부아가 일었다. 노인이 심술을 부리는 것 같지만 유비는 다시 말없이 노인을 업고 물을 건넜다. 다행히 노인은 한번 더 냇물을 건너갔다 오는 것으로 더는 유비를 괴롭히려 들지 않았다.



.... 중략....



  노인은 유비에게 부드러운 투로 물었다.


    "너는 어째서 두 번째로 나를 업고 건널 생각을 했느냐? 무엇을 바라고 한번 더 수고로움을 참았더냐?"


   "잃어버리는 것과 두 배로 늘어나는 차이 때문입니다. 제가 두 번째로 건너기를 마다하게 되면 첫 번째의 수고로움마저 값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한번 더 건너면 앞서의 수고로움도 두 배로 셈 쳐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 1권 중 일부 내용 요약 및 발췌]




   삼국지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다. 이 부분을 읽다가 책을 덮고 오래 생각했었다. 과연 나였으면 어땠을까?


   내가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면 유비 같이 개울은 여러 번 건넜겠지만 결코 생각은 저렇게 못했을 것이다. 그저 잘못 걸렸다고 생각하고 마지못해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비는 그냥 가버린다면 첫 번째 고생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잘 알기에 물은 한 번 더 건넜던 것이다. 이 내용은 내게 와 닿았다.


   일을 하다 보면 아무 성과도 없어 보이고 빠른 포기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참고 노력하면 끝에 가면 더 큰 성과를 이룰 때가 있다. 나는 이런 교훈은 일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친한 친구와 사소한 일로 크게 관계가 틀어졌다. 별 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불같이 번져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연락도 끊고 안 볼 사이가 되었다.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은 우리 둘의 눈치를 보느라 따로따로 만나는 상황까지 되었다. 즉 내가 있으면 그 친구가 없고, 그 친구가 있으면 내가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너무 분이 안 풀리고 억울해서 앞뒤 안 가리고 화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조용히 앉아서 곰곰이 생각했다. 과연 내가 화를 내는 게 최선일까? 화를 내면 속이 후련할까? 그 순간은 후련하겠지만 굉장히 어리석은 행동이다. 여태껏 참아 놓고 한 번을 더 못 참아서, 좋은 친구와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은 바보 같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상하게, 고생스럽게 두 번씩이나 개울을 건너 유비가 생각났다.


    "그래, 조금만 더 참아보자. 지금까지 참아온 시간이 헛으로 돌아가면 너무 억울하잖아. "


   맞는 말이다. 만약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릴 거라면 애초에 처음부터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기에 다시 참고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볼 사람이면 보고, 안 볼 사람이면 안 보겠지. 왜 사필귀정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다시 만나 화해하기까지 딱 1년이 걸렸다. 다시 만나서 서로 미안하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상대가 싫은 것이 아니라 입장이 달랐던 것이기에 이해가 됐다.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털어버렸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보면, 참기를 잘한 것 같다. 정말 화나는 대로 했다면, 다시 만나서 이야기조차 못했겠지. 다른 내 친구들은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참느냐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마지막 한 번이 모자라 일을 망치는 것에 대한 내 노력이 아까웠고, 최선을 다하지도 않는 나에 대해 부끄러웠고, 좋은 친구를 잃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기에 참았다. 그래서 결과는 뭐냐고? 따로 볼 필요 없이 다 같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경험은 분명 내게 큰 교훈이 되었다. 유비가 그리했던 것처럼, 어떤 것에서 마지막 한 번이 부족해 그르치지 않기를. 그래야 나의 수고에 보상을 받는 날이 올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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