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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의 여섯 왕비 이야기: <식스 더 뮤지컬>

헨리 8세의 여섯 왕비가 다시 쓰는 역사,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

헨리 8세의 여섯 왕비가 다시 쓰는 역사 뮤지컬




‘이혼, 참수, 사망, 이혼, 참수, 생존’


뮤지컬 <식스>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개발된 뮤지컬로, 2017년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여진 작품이다. 같은 해 오프-웨스트엔드에서 선보여지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2019년에는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로 진출한다. 헨리 8세의 6명의 왕비가 결성한 가수 그룹 ‘SIX’의 콘서트 형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여섯 왕비가 다시 쓰는 역사’라는 타이틀을 걸고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형식의 뮤지컬로 자리매김 했다. 2020년 예정되었던 한국 공연이 코로나 19로 미뤄지게 되었고, 코로나 19 규제 완화와 함께 한국 초연 공연이 개막했다. 3월 10일 내한 공연이 먼저 개막하였고, 3월 31일 한국인 배우들의 공연이 개막했다. 첫 곡인 ‘Ex-Wives’의 반주가 나오면 관객들은 모두 박수와 함성을 지르며 왕비들을 맞이한다. 실내 마스크가 해제 등의 규제 완화에 걸맞는 뮤지컬이다.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



팝 가수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여섯 왕비의 테마곡


<식스>는 헨리 8세의 첫번째 왕비인 ‘아라곤’을 시작으로, ‘불린’, ‘시모어’, ‘클레페’, ‘하워드’, ‘파’가 각각 솔로곡을 부르며 자신의 결혼 생활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진행된다. 왕비 한 명이 솔로곡을 부를 때 나머지 5명은 뒤에서 화음을 쌓아주고, 백댄서를 해주며 한 곡의 무대를 완성시킨다. 6곡의 테마곡은 팝 가수들의 음악으로 부터 영감을 받아서 작곡되었다. 여섯 왕비는 ‘누가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는가’를 뽑기 위해 대결을 하며 노래를 시작한다.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왕비 자리를 차지했던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의 테마곡 ‘No Way’는 비욘세, 제니퍼 로페즈, 샤키라를 모티브로 한 음악이다. 높은 고음과 빠른 비트를 오가는 이 곡은 캐서린이 첫번째 왕비로서 가지고 있던 위엄을 느끼게 해준다. 헨리 8세가 아라곤과의 결혼을 무효화시키고 영국 국교를 바꾸게 되도록 만들었으며, 뒤집히는 사회 속에서 참수를 당한 두번째 왕비 ‘앤 불린(Anne Boleyn)’의 테마곡은 ‘Don’t Lose Yr Head’이다. 케이티 페리, 릴리 알렌, 케이트 네쉬 등의 가수를 모티브로 한 음악인 이 곡은 유쾌하면서도 귀엽고, 장난스러운 분위기의 음악이다. 자신이 헨리 8세의 유일한 사랑이자 아들을 낳은 왕비라고 이야기하는 ‘제인 시모어(Jane Seymour)’의 테마곡은 ‘Heart of Stone’인데, 아델과 시아의 음악을 모티브로 작곡되었다. 댄스곡들 사이에 있는 유일한 발라드인 이 넘버는 분위기를 한 번에 바꾸면서 바위처럼 단단했던 시모어의 사랑과 아들을 낳고 바로 죽음을 맞이한 슬픔을 모두 담고 있다. 네번째 왕비이자, 초상화와 실물이 다르다는 이유로 헨리 8세로부터 버림받은 ‘클레페의 안나(Anna of Cleves)’의 테마곡은 ‘Get Down’이다. 니키 미나즈와 리한나의 음악을 모티브로 작곡된 이 곡은 헨리 8세에게 버림받았지만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거대한 궁전에서 여생을 살았던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삶과 그 에너지에서 나오는 압도감을 담고 있다. 가장 어린 왕비이며, 간통을 했다는 이유로 참수를 당한 ‘캐서린 하워드(Katherine Howard)’는 ‘All You Wanna Do’라는 테마곡을 부른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모티브한 음악으로, 카리스마 있고 매혹적인 하워드의 모습과, 수많은 남성으로부터 성적으로 소비 되기만 했던 그녀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 함께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왕비이자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며 여성의 독립을 옹호한 왕비인 ‘캐서린 파(Catherine Parr)’의 테마곡은 ‘I Don’t Need Your Love’이다. 앨리샤 키스와 에밀리 산데를 모티브로 한 음악으로, 헨리 8세와 결혼을 하게 되어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라 믿었던 ‘토마스’에게 이별을 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곡이다. 누가 가장 불행했는지를 뽑기 보다는 그저 ‘나’라는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를 하자고 하며 분위기를 전환한다.



각각의 왕비의 매력을 뽐내는 여섯 곡과 네 곡의 단체곡이 모여 80분 동안 꽉 찬 콘서트를 즐길 수 있다. 여섯 왕비 말고도, 라이브 밴드인 ‘시녀들’이 무대 위에서 함께 연주를 하며 극이 진행되는데, 키보드를 맡은 ‘조안', 베이스를 맡은 ‘베시’, 기타를 맡은 ‘매기’, 드럼을 맡은 ‘마리아’는 실제 왕비들의 시녀의 이름이다. ‘역사의 재해석’이라는 작품의 흐름에 맡게 이들의 역사에 대한 고증 역시 철저히 되어있다.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


누군가의 여섯 왕비가 아닌 ‘SIX’


결국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여섯 왕비의 삶이 그저 ‘헨리 8세의 여섯 왕비의 비극적인 삶’으로 묶일 수 있는 삶이 아니라, 각각이 존중받아 마땅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하나로 묶여서 ‘여섯 왕비’로 정의되었던 그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 화음을 쌓으며 함께 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의 역사를 뒤집는다. ‘문란한 왕비’로 알려졌던 하워드는 13세에 처음 남자와 성관계를 맺었으며, 17살에 헨리 8세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4절까지 존재하며, 7분이 넘는 가장 긴 솔로곡인 하워드의 ‘All You Wanna Do’ 안에는 하워드가 성적으로 문란한 10대 소녀가 아닌, 남성들에게 학대를 당하며 살았던 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발랄한 분위기로 시작하여 점점 표정을 잃게 되고, 마지막에는 절규하듯 노래를 하는 하워드의 감정을 통해 잘못 알려져 있던 역사를 비판한다. LED 조명을 활용한 무대 전환과 시원한 역사의 재해석, 여섯 명의 여성 배우들이 모든 에너지를 쏟는 무대라는 점에서 ‘이게 바로 요즘 뮤지컬’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곡이자 합창곡인 ‘SIX’에서는 헨리 8세가 그녀들을 구속했던 불행에서 벗어나서 각자가 원하는 새로운 역사를 외친다. 원치 않았던 삶을 살았고, 그 삶이 500년의 시간 동안 전해져 내려왔다. 500년 동안 ‘불행한 왕비들’이었던 여섯 사람이 각자의 마음속에 있던 소리들을 외치며 불행한 역사 속에서 탈피하고 목소리를 지닌 각각의 존재로서 무대 위에 선다. 콘서트 형식의 짧은 러닝 타임을 갖고 있는 작품이고, 단순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며 역사의 뒤편에 있던 여성들의 외침에 호응을 하며 즐긴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존재 자체가 우리 사회 속에서 큰 의미가 될 것 같다.



‘우릴 하나로 묶을 순 없어

잊혀졌던 우리의 역사

내 삶, 욕망, 이제 되찾아’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




글: 예술도서관 에디터 리니


예술도서관 아카데미 3기 졸업생 리니는 지난 3년 동안 300회가 넘는 관극을 하며 예술의 힘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짧게는 90분, 길게는 약 180분 동안 무대 위에 펼쳐지는 세계가 위로가 되고, 용기와 힘을 주는 과정을 보면서 누군가에게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일지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작품을 보고 친구가 해줬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만약 이 작품이 흥행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변화시켰다면 성공한거다. 나를 변화시켜주었기에 이 작품은 성공한 작품이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는 작품을 알리고 싶고, 더 나아가 그런 작품을 만드는 것이 삶의 목표이다. 한 작품이라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창작자라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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