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게 내린 애국과 나무라는 무지의 세계
뿌리 깊게 내린 애국과 나무라는 무지의 세계, LG아트센터 <나무 위의 군대>리뷰
작년 초 집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때 울리는 핸드폰, ‘예비군 기동대’에서 온 전화였다.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징집인가?” 순간적으로 스치는 많은 생각을 뒤로하고 전화를 받았다. “전입신고 확인차 전화드렸습니다”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날의 해프닝은 짧은 사건이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여전히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 오키나와에서 일본의 패전도 모른 채 2년 동안 가쥬마루 나무 위에 숨어서 살아남은 두 병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으로 전쟁터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간 두 병사의 갈등을 통해 전쟁의 무익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작품의 원작과 실화의 배경은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이지만 민새롬 연출과 이홍이 드라마투르그는 일본의 배경을 걷어내고 보편적인 전쟁, 보편적인 군대만 남겨두었다. 작품의 제목인 나무 위의 ‘군대’만 오롯이 전달되게끔 원작을 윤색하였다.
“거 봐요. 하나도 안 슬프시잖아요.”
“정말 하나도 슬프지 않네”
- <나무 위의 군대> 대사中 -
전쟁에 참여해있는 상관조차 자신의 고향이 아닌 신병이 나고 자란 땅에서의 비극과 참상을 온전히 공감하고 슬퍼하지 못한다. 우리는 타국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서 얼마나 공감하고 슬퍼할 수 있을까? 미국의 사상가인 수잔 손택은 현대인(사진과 텔레비전을 접하는)들은 계속해서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여 타인의 고통(살인, 강간, 강도, 전쟁 질병, 기아 등과 같은)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린다고 주장한다. 또 단순한 연민의 감정은 매우 위험하며, 연민을 넘어 우리가 그러한 사건들에 대한 무감각함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준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 <타인의 고통>中 -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 볼 수 있지만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무지의 상태에 놓여 뿌리 깊게 밖혀 아무런 행동도 해지 못하는 나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그들의 고통에 어느 정도 우리의 지분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신병의 대사 중 ‘이제 이곳은 어디인가? 여기는 더 이상 예전에 친구와 함께 신발을 찾아 헤매던, 여자친구와 거닐던 섬이 아니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을 총으로 쏘아 죽인 공간이 되었다.’ 와 같은 맥락의 대사가 있었다. 이 대사는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와 더해져 긴 여운 남긴다. 전쟁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어떤 존재가 되어 살아갈 것인가? 전쟁이 휩쓸고 간 지역은 비극의 참상이 남은 공간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곳은 또 다른 공간으로 불려질 것이다.
연극은 단순히 동시대의 전쟁 중인 타국에 대한 공감을 넘어 역사 속 전쟁과 그 역사 위에 세워진 현재를 인식하게 만든다. 간혹 독립운동가의 후손들과 6‧25 참전 용사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취재한 뉴스와 유튜브 영상을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그들의 헌신과 노고 끝에 세워진 땅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왜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 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우리와 실제적인 행정 책임자들이 그들에게 온전히 공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드라마투르기 작업에서 일본의 배경을 걷어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실제 배경이 된 ‘오키나와’는 물론이고 혹여 등장인물들이 서로 ‘기무라’, ‘나카무라’하며 서로를 부른다면 어떨까? 이미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DNA로 비호의 정서를 내포한 바다 건너 옆 나라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보편성은 공감과 함께 보편적 진실에 대해 비판적 태도까지 유발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있었던 ‘불쌍한 두 군인’을 넘어 그들이 겪은 세상. 즉 전쟁의 부조리함과 무익함에 대한 비판을 유발하기 위해 다양한 연출적 장치를 활용한다.
극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무대에 세워진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이 나무는 두 병사가 2년 동안 삶을 꾸려나가는 집과도 같은 공간이다. 최희서 배우가 연기하는 여자는 마치 이 나무의 정령과도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자연’그 자체를 상징된다. 특히 작품의 배경이 되는 태평양 전쟁은 자본주의의 산물로 만들어진 고도화된 기술로 치러진 현대전이라는 점에서 ‘나무’라는 자연의 공간의 성스러운 느낌과 어쩌면 두 병사를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 나무는 종국에 다다라 두 병사가 숨어 지냈던 곳이자 전쟁을 기억하고 상징하는 하나의 역사가 된다.
무대 위 나무 세트와, 나무 뒤편 벽의 큰 원 그리고 조명의 활용한 연출로 두 군인의 서사와 대화에 집중토록 만든다. 특히 연극성이 돋보였던 부분은 신병이 쓰레기장에 내려가 상대편 군인을 만났던 장면이다. 조명을 활용하여 상대편 군인을 표현하고 이에 반응하는 신병의 태도를 통해 상대편 군인이 신병을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 할수록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신병과 이러한 상황 자체를 알지 못하는 상관을 생각하면 두 인물이 처해있는 상황이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뒤편 벽의 큰 원은 마치 총탄이 뚫고 간 구멍을 확대해 놓은 듯하다. 이렇게 생긴 큰 구멍은 왠지 모를 공허함을 자극한다. 그리고 어쩌면 두 군인이 이 지긋지긋한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쟁이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병사가 느꼈을 공허함을 상상해 보자.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애국주의, 애국자라는 명분으로 기세 등등 참여했던 전쟁은 무엇을 남겨주었나? 작품의 원래 배경인 일본의 경우로 생각해 보면 결국 엄청난 피해와 함께 패망이라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곧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쟁의 가장 큰 수혜국이 되어 엄청난 경제 성장을 한다.
많은 관객들이 손석구와 최희서 배우를 보기 위해 극장을 처음 방문하기도 한 듯 보였다. 나는 종종 TV에서 보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연극을 보면 일종의 브레히트적인 소외효과를 느낀다. 신병이라는 배역을 손석구라는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인식하면서 신병이라는 역할에 완전한 몰입을 방해하게 하는데 이것은 지인이 출연하는 연극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러한 캐스팅은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이미 최희서 배우가 연기하는 여자의 역할이 서사를 진행시키는 설화자이자 인물 내면의 심정을 드러내는 코로스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캐스팅과 연출은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더 많은 관객에게 전하기에 효과적이었다. 여기에 연극 관극 초심자들의 핸드폰 벨이 울린다던가 관객들끼리 수군대는 등의 관객의 태도가 많은 다른 관객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듦과 동시에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는 역할에 일조했다(?)
LG아트센터의 공연을 통해 박해수, 손석구, 최희서 등 연극을 시작으로 매체에 진출한 배우들의 연기를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연극 관람객을 유입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 공연 관계자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연극도 클래식처럼 우리가 잘 아는 이름 있는(조성진, 임윤찬)과 같은 사람들이 출연하는 공연에 사람이 몰리고 그 외의 수많은 공연들(대학로의 작은 공연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그 둘 사이의 간극이 점점 더 심해지는 현상에 대해서는 경계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상업성과 예술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상업성은 LG아트센터라는 극장과 캐스팅이 논거를 제공해 준다. 나는 ‘좋은 연극’의 기준을 현재의 나의 상황과 내 삶을 비추어 보았을 때 새롭게 생각할 지점을 하나라도 제공해 준다면 좋은 연극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은 언제라도 전쟁이라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에서 군인의 신분이 되어보았던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나는 과연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전쟁에 뛰어들 수 있을까?
글: 예술도서관 박두환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예술도서관 아카데미를 통해 수많은 예비 연극인들을 만났다.
건강한 예술 교육자가 되기 위해 공연 관람과 글쓰기, 창작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연극과 공연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그렇게 얻은 삶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