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예술경영가가 바라보는 인문학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는 영원할 것이다 : 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아름다움, 미(한자), Beauty,.. 사전에선 이들을 동일 선상에 놓습니다.. 그리고 세 단어를 읽어내린 우리의 머릿속에선 각기 다른 지향점을 찾고 있죠. 이 책의 작가는 아름다움이라는 프레임에 권력을 투영한 채 유유히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문을 던집니다.



그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통념 상 추녀라 일컫어지는 그녀가 있습니다. 둘은 사랑을 합니다. 정확히는, 사랑이라 부르는 ‘무언가’를 하죠. 스스로가 누군가의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그녀,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할 것이라 믿던 그는 함께 일하고, 술을 먹고, 또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세상을 욕하면서도 그들은 그런 모습 그대로 세상의 일부분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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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녀는 세상의 우위에 섭니다. 형체없는 그 만인의 이상처럼 아름답고 여유롭기에, 누군가의 동경을 받고, 자신의 것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죠. 세상을 온통 뒤흔드는 소용돌이의 시작은 바로 그들의 삶 속에 있습니다.



나름의 방법 대로 저항을 외치면서도 아름다움이라는 화려하고 확실한 도구를 뿌리칠 수 없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공통점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사람을 처음 만나고,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며 인사를 나눕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눈에 띄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가치’로써 인정받을 때까지 멈춰있기엔 너무나도 급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름다움을 정상에 둔 채, 책 속의 그녀와 그도, 책 밖의 우리도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얻게 될 권력보다 잃게 될 것들을 두려워하며 쌓이는 부러움은 또다시 권력의 형태로 세상에 떠돌게 되죠. 세상 속에서 애써 아름답기 위하여 자아에 상처까지 내가면서 이를 내던지고, 상처에 약을 바르며 쓰라려하는 것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쯤 되면 과연 아름답다는 것이 뭘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아름다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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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놓고 나를 찾는 과정은 꽤나 복잡하고, 비생산적이며,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아름다움을 찾는 시간들이라면 세상에 널린 ‘아름다움’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죠. ‘그녀’는 외모에서의 추녀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갈 수록 통념에서의 아름다움은 ‘권력’이라는 단어를 꾸미기 위한 수식으로 여겨집니다. 나의 욕구에, 나의 열등감에, 나의 행복에 대해 솔직해지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만들어 낸 허상인 것이죠. 간단하고, 분명하며, 무엇보다 편하니까요.



아마 이 글을 쓰는 저 조차도 세상의 무게에게 한없이 관대한 삶을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사히 상승곡선을 그리며 살아가거나, 활주로로부터 탈선하거나. 둘 중 하나로 분리되어 살아가는 세상이라 세뇌되었기에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겠죠.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얼굴, 사랑하는 모습. 이것이 스스로에게 있어 가장 분명한 아름다움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당장 정의내릴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세상엔 현실적인 계산과 이성을 넘어서서 미치지 않은 이상 할 수 없는 감정적인 선택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그 원동력은 사랑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습니다. 가족을 위한 사랑, 사람을 위한 사랑, 나의 하루에 대한 사랑, 누군가 미소지을 세상에 대한 사랑,…. 이외에도 문자로 정의되지 않는 무형의 애정이 수도없이 많이 존재하겠죠.



아름다움을, 사랑과 애정을,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들을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기에 각종 모양, 색깔, 향기, 소리의 물음표와 온점을 반복해서 던지는 것이 곧 우리가 예술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여러분은 무엇을 사랑하시나요?




글/제작 예술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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