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자의 눈으로 본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예술경영자의 눈으로 본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 “국가란 무엇인가”_ 국가라는 거대 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개인들



“국가는 최고의 도덕이다”_플라톤



“국가주의 국가론에서 정의하는 국가의 목적은 하나이다.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그리고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즉, 개인의 자유나 인권보다 국가의 권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_<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돌베개, 2017



우리는 종종 집단이라는 권력에 의해 개인을 상실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거북함과 불편함이 있더라도 개인의 의견보다 집단의 결정이 더욱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다. 특히 ‘함께’, ‘공동체’의 가치가 우선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나 하나의 의견보다는 조직의 의견이 훨씬 중요하게 여겨진다. 애국심이라는 고결한 단어를 사용하여 맹목적인 충성과 희생을 요구한다. 조국을 향한 사랑은 다른 국가를 향한 증오가 되어 또 다른 미움과 희생을 낳는다. 과연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당연한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 하나쯤 가만히 있는 것이 미덕인가.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국가/사회라는 거대 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사람들이다. 재개발 사업으로 살던 집을 잃고, 조선인은 일본인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가미카제(자살 특공대)에 지원하고, 국가 간의 정치, 이념 대립으로 인해 죄 없이 목숨을 잃는다.



“그 누구도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지배할 천부적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강제력만으로는 그 어떤 권리도 탄생시킬 수 없으므로, 사람들 사이의 모든 합법적(즉, 정당성을 갖춘) 권력은 계약에 근거해야만 한다.”_루소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정부의 기본은 만인의 협약이다. 국가는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자연권을 보장받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생겨났다. 사회는 모두의 약속이고, 개인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시민은 사회에 속한 개인으로서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할 뿐이다. 각 개인에게 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만약 정부가 이를 배반하고 자연권을 침해하면, 인민은 정부에 저항하여 정부를 다시 구성할 권리를 가진다. 주권은 항상 국민에게 속하며, 양도될 수 없다. 국가는 대리인으로서 법을 집행할 뿐이다.


결국 국가의 탄생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더는 국가가 개인을 지켜주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와 마주했다. 국가라는 틀 속에서도 개인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라는 거대 권력을 만들어냈는데도 그 시스템이 나의 목숨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국가라는 시스템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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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군인이다.



연극을 보는 동안 한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모두가 전쟁 중인 군인 아닐까.’ ‘우리네 삶이 쉽지 않은 건 나를 지키기 위한 싸움 때문이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극의 말미에서 병장 이원재의 독백에서 극의 주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어차피 세상은 전쟁이고, 우리는 모두 군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극의 초반부만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나의 이야기였고,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우리는 개인의 안전을 도모하지 못하는 국가를 대신하여 전쟁에 참여한 군인이다. 삶이라는 전쟁터에는 나를 지켜줄 시스템도,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전쟁터에 내던져진 군인이다. ‘나’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휴전은 없다. 후퇴도 없다. 전쟁을 멈추는 순간 삶도 끝난다.



“먼저 작가 박근형. 그동안 그의 작품들은 비루하기 짝이 없는 밑바닥 인생의 일상이 전제되고 그것을 견뎌내는 독특한 캐릭터가 중심이었다. 즉, 보편성에 대한 특수성이 강조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으로 접근 방향을 바꾸었다. 전쟁과 군인이라는 소재 자체가 지닌 특성에 힘입은 바도 크겠지만 구체성과 개별성을 넘어선 근원과 근본에 대한 작가로서 고민이 심화된 부분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 역사와 기억, 사건에 대한 근원과 근본에 대한 탐색은 시대적 특수성, 상황적 특수성을 넘어 이제 보편의 문제로 확장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선 주목받는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교차되는 네 개의 사건에 등장하는 ‘모든 군인’이 주인공이고, 그래서 그들이 마주한 각각의 죽음이 중심 사건이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 군인들의 보편적 정서로 인해 모든 군인은 불쌍하고, 나아가 모든 인간이 불쌍하다. 작가 박근형 개별과 특수를 넘어 보편을 지향함으로써 그것에 내재한 근원-사회구조적 시스템에 대한 통찰이 깊어졌음을 이 작품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_ 객석 2016.04.01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도, 당사자를 둘러싼 사람들도 모두 슬픔으로 몰아넣는다. 전쟁은 죽은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불쌍하게 만든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삶이라는 전쟁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불쌍하다.



“우린 모두 전쟁 중이고 우린 모두 군인이라고요.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에게 죽어야 하는데 왜 난 자신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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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삶을 계속하는 이유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한가지. 우리 모두는 군인이고 삶은 전쟁이라면, 우리는 왜 이 끔찍한 전쟁을 끝내지 않고 있을까.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이를 죽이는 힘겨운 싸움을 왜 지속하고 있을까. 무엇 때문에 죽지도 못 하고 아픔을 참아가며 삶을 이어나가고 있을까.



작은 희망 때문이다. 삶이라는 것이 언젠가는 전쟁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행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희망. 언젠가 이 전쟁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희망. 내일은 날씨가 맑을 거라는 그 희망이 우리를 살게 한다. 산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희생되는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지켜주는 국가가 되길 바라며.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약속이다.


그러나 국가는 더 이상 개인을 지켜주지 않는다.


그래서 삶은 전쟁이고 우리 모두는 군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은 희망 때문이다. 내일은 전쟁이 끝날 거라는 희망.










제작/글: 예술도서관TA 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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