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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O Dec 27. 2020

메리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치킨이나 피자, 케이크를 당해낼 수 없다. 사람들은 24일에 죽이나 국밥, 삼겹살 도시락을 먹진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렇게 늦게 깨닫다니. 감이 없는 걸까, 애써 모른 척한 걸까. 여하튼 그 대가로, 나는 하루를 온전히 잃은 사람처럼 우두커니 매장에 앉아만 있었다. 이 정도로 장사가 안되면 차라리 일찍 정리하고 들어가 뒤늦은 이브의 무드를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었겠지만. 항상 ‘최선’이라는 미련에 발목이 잡힌다. 


언제부터일까? 크리스마스가 쓸쓸하다. 오늘 하루 장사가 안돼서 떠는 궁상은 아니다. 큰길에는 사람들로 넘치고. 다들 행복한 표정을 하고 거리를 걷는다. 꼭 그래야만 하는 날인 것처럼. 하지만 모두에게 의미 있는 날은 기필코 없다. 그럼에도, 나는 때때로 의미를 가지지 못해 어깨가 뻐근해지곤 했다. 그럴 때는 골목을 걸었다. 그 어떤 축제도 골목 깊숙이 스며들진 못한다. 나는 그렇게, 보통의 일상으로 숨어버리곤 했지만, 귀에 꼽은 이어폰에서는 여전히 캐럴이 흘렀다. 양 쪽 발을 어정쩡하게 걸치고 있는 나는 쓸쓸한 재주꾼 같았다. 


나의 매장은 골목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캐럴도 트리도 이곳까진 닿지 않는다. 바쁘게 다니는 것은 배달 오토바이. 이 좁은 골목을 재주 좋게 다니는 차들과, 그들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골목을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 바깥만 쳐다보고 있으면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인데. 그래도 무슨 날은 날이라고 매장에 내내 주문 하나 없는 것이 서글프다. 그렇게 하릴없이 앉아있다가 매장 문 밖을 내다보니, 할머니 한 분이 내가 내놓은 박스를 정리하고 계셨다. 평소였다면 하지 않았을 일을, 나가서 ‘날도 추운데 커피 한 잔 하시라’고 권했다. 믹스 커피 두 잔을 타서 매장 안에서 같이 마셨다. 별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추운데 고생이시라고, 건강은 괜찮으시냐고, 우리 매장에 박스 많이 나오니까 종종 오셔서 챙겨가시라고, 나는 오늘 이상하게 장사가 안된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이 잘 돼야지. 안되면 어떡해. 새해에는 더 좋아지고 더 잘될 거예요’ 할머니는 벌써 새해를 조준하고 계셨다. 나는 아직 매상이 바닥을 친 오늘 저녁에 머물러 있는데. ‘총각이 장사 잘해서 박스도 많이 만들어 버려 줘’ 우리 둘에게 좋은 일이라고, 같이 웃었다. 할머니에게 매장에 있는 니트릴 장갑을 챙겨드렸다. 그리고 나는 하루 장사를 마쳤다. 


 곧 크리스마스다. 할머니는 집에 들어가셨을까? 둘 다 크리스마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늘이 아무것도 아닌 날 같았다. 하지만 오늘이 24일이 아니었어도, 내가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을지는 모르겠다. 모두에게 의미 있는 날은 없다. 하지만 그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은 하다. 나는 역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이왕이면 바깥쪽에 걸친 발에 좀 더 힘을 주고 싶었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기우뚱한 자세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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