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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O Jan 07. 2021

폭설.

잃어버린 별점을 찾아서. 


 눈은 순식간에 쌓였다. 가늘게 흩날리던 눈발이, 메뉴 하나를 완성하는 사이 골목을 틈 없이 덮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주문이 들어오는 모든 프로그램을 껐다. 하지만 이미 받은 주문은 어쩔 수 없었다. 눈은 점점 쌓이고, 와야 하는 배달 기사님의 도착은 점점 늦어졌다. 당연하지. 눈 쌓인 골목 위로는 아무것도 달리지 못한다. 

겨우 도착한 기사님에게 완성된 음식을 건네주는데. 마치 죽으러 가라고 등을 떠미는 기분이 들었다. 남은 하나의 주문은 주문자에게 직접 전화해 취소 처리를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배달 대행사에서도 더 이상 배달을 할 수 없다는 통보가 왔다.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 친구는 말했다. 그 동네는 눈이 내리면 장사를 못하게 될 거라고. 친구도 나도 성남의 언덕지형은 잘 알고 있다. 그럴 때는 그냥 팔자라고 생각하고 쉬지 뭐. 나는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상황에 맞닥뜨리니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내 힘든 일과, 내가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배달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대행사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계약한 업체는 규모가 크지 않아서 오늘 본 기사님을 내일도 보고 모레도 본다. 배달이 지연되면 아쉬운 소리도 하게 되고. 내가 조리가 늦어 시간이 지체되면 죄송하다 굽신굽신 하며 관계를 쌓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볼 수 없어진 기사님들이 있는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배달 중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음식의 배달이 느려지면 주문한 손님에게 싫은 소리를 듣게 된다. 그뿐이면 다행이지만, 리뷰와 별점에도 피해가 간다. 때문에 나는 배달 기사님들에게 짜증도 내고 사정도 한다. 이럴 때의 나는 철저한, 을도 못 되는 병이나 정의 위치구나 싶어 울화가 터지지만. 결국 그런 나의 짜증도, 사정도. 그들을 빠르게, 무리하게 달리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된다. 서럽다. 나도 너무 힘든데, 사고를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얄팍하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고민하고 자책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감싼다. 


눈은 지금도 내리고 있다. 오늘의 영업은 끝났다. 아마 내일도 배달은 힘들 것이다. 

퇴근 중에 나의 매장에 들린 기사님은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어 스쿠터를 새워두고 직접 뛰어서 다녀왔다고 했다. 이게 무슨 꼴이냐고 서로 웃었다. 사람들의 손해가 막심한 오늘과 내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누군가를 사지로 내모는 일도. 배달 기사들이 무리하게 달리다 다치는 일도. 오늘과 내일은 없다.


생각도 글도, 결론은 뒤로 미루고. 이렇게 한 번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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