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tPD Jul 24. 2020

새소년, 난춘(亂春)

절망적이고 슬프지만 아름답고 희망찬 노래


#첫 만남, 뒷조사, 뇌피셜

올 2월에 뜻하지 않는 병으로 <뮤직뱅크> 연출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멜론이니 벅스니 차트 음악 앱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다가 딸내미 다윤이 덕분에 유튜브 프리미엄을 쓰게 되었는데 유튜브 뮤직이 음악 앱을 대체할 수 있어서 열심히 쓰고 있었다. <검정치마> 밴드를 좋아해서 열심히 들었더니 AI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뜬 <새소년>밴드의 노래 "난춘"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뜻하지 않은 첫 만남.


노래를 듣고 너무 좋아서 여러 번 들었다. 예전에 발표한 다른 노래도 들었다. 뮤직비디오도 찾아봤다. 밴드에 대해 나무위키를 찾았다. 황소윤이라는 아티스트를 추적했다. 찾아들어갈수록 매력적인 이야기로 가득했다. 나만 몰랐지 이미 입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도 나왔던 걸 몰랐다. 한 발 늦은 만남.


평범한 사람이 황소윤 같은 아티스트를 평가할 때 아주 수월한 단어가 있다. "천재"다. 나처럼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에겐 그저 어느 날 갑툭튀, 본투비 천재로 보일 수밖에. 하지만 황소윤의 기타 연주, 작사, 작곡 그리고 인터뷰 등 면면을 보면 오랜 기간 자신이 좋아한 일을 열심히 한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깊은 사유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실제 만나본 적은 없지만 황소윤은 멍 때리고 생각하는 걸 좋아할 거 같다. 


#내 맘대로 해석하는, 난춘(亂春)

국어 시간에 시에 대한 감상을 묻는 문제가 종종 나온다. "위 시를 읽고 작가의 생각이 아닌 것은?" "제목의 난춘이 의미하는 바는?" 이런 류의 문제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문제였다. 시를 읽는 사람이 알아서 생각할 문제지 왜 시를 쓴 사람 생각까지 알아야 하지? 수수께끼 문제 맞히라고 쓴 시가 아닐 텐데.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내 맘대로 해석이다.

<난춘> 뮤직비디오는 한 여성이 묵직한 돌을 갓난아기 안듯이 소중히 들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음악이 아닌 바닷소리가 나오고 아직 노래는 시작하지 않았다. 아마 이것은 결말을 보여주는 스포일러인 듯싶다. 요즘 유튜브 영상들의 문법과 닮아있다. 결과를 보여주고 궁금증을 유발한 후 정주행을 하게 만드는 기법. 


뮤직 비디오에는 세명의 인물이 나오고 장소도 세 군데다. 화면 톤도 블루, 레드, 그린 톤으로 나뉜다.

A: 바닷가에서 무언가 찾는 듯 헤맨다.

B: 댄스 교습소에서 스포츠 댄스를 추고 있다.

C: 어두운 방. 창가 침대에 앉아 괴로워하고 있다.


후반으로 가면서 이들은 다음과 같이 변한다.

A: 바다에 스스로 들어가 허우적대는 듯하더니 수영을 하고 개운해한다

B: 처음엔 쭈뼛쭈뼛하다가 눈을 감고 춤을 연습하니 일취월장한다

C: 혼자 쓸쓸히 울다가 누군가 나타나 위로를 받고 울고 웃고 포옹한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장면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결말은 모두 긍정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엔 황소윤이 돌덩이를 안고 있다. 시작과 끝이 같다. 두번 강조했으니 중요한 상징이다.


# 가사의 힌트들

돌덩이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답을 알아내면 이 노래의 메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뮤비 영상에 보태서 가사를 살펴봐야겠다. 가사의 시작은 이렇다.


그대 나의 작은 심장에 귀 기울일 때에  
입을 꼭 맞추어 내 숨을 가져가도 돼요

아주 아름다운 표현이지만 동작 자체만 놓고 보면 이것은 물에 빠진 사람에게 하는 심폐소생술과 닮아있다. 


https://blog.naver.com/bnbs012/50141204521

노래로만 들었을 땐 아름다운 연인의 꽁냥꽁냥 장난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뮤비를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첫 장면이 바다로 걸어가는 수심이 가득한 여성. 누가 봐도 어떤 목적을 가진 행동인지 알 수 있다. 아름다운 가사로 애써 지웠지만 노래의 시작은 차가운 죽음과 닿아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사.


저무는 아침에 속삭이는 숨
영롱한 달빛에 괴롭히는 꿈
네 눈을 닮은 사랑, 그 안에 지는 계절
파도보다 더 거칠게 내리치는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아침에 대한 이미지는 "활기찬 시작"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저무는 아침"으로 표현되어있다. 다행히 다음 가사는 "영롱한 달빛"이라고 아름답게 표현되어있으나 바로 또 "괴롭히는 꿈"이 나온다. 아침부터 달이 뜨는 밤까지 하루라는 시간. 무의미한 계절의 반복. 그리고 계속되는 모진 파도의 공격. 힘겹게 삶을 이어나가는 당신.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삶의 무게에 짓눌려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는 당신. 


오 그대여 부서지지 마
바람 새는 창틀에 넌 추워지지 마
이리 와 나를 꼭 안자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고장 난 창틀에 조금씩 새어오는 찬 바람에 추위를 떠는 당신. 깨진 창도 아니고 "바람 새는 창틀"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이런 해석을 할 수 있겠다. 지금 방 안 가득한 냉기는 조그마한 틈새로 들어온 바람 때문인데 틈새의 존재를 모르거나 잊어서 방 전체가 춥다고 생각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알고 보면 당신이 그렇게 힘든 것은 별 대수롭지 않은 이유이고 기꺼이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이라는 뜻이 아닐까? 


뮤직비디오에서 춤을 추는 중년 여성의 경우. 처음엔 낯선 느낌과 두려움에 동작이 어설펐다. 그런데 눈을 감고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에 자신을 차단시키자 변화가 나타났다. 즐겁게 춤을 즐기게 되었고 자존감도 올라간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바람 새는 창틀이란 무시해도 좋은 외부의 차가운 시선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귀신 아니고 포옹하는 모습임

노래의 끝은 이렇다. 혼자서 힘들면 내가 안아줄 테니 서로의 온기를 나누자 한다. 큰 목표나 이상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나와 함께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로 가자는 것이 끝이다. 만약에 여기서 "다 잊으세요"라든지 "이겨낼 수 있어요"라든지 "힘을 내세요"라든지 "멀리 떠납시다"같은 해결책을 제시했다면 이 노래는 좋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지마"라는 가사가 맘에 들어서


<난춘> 싱글 앨범 이미지


# 돌덩이의 정체는?

저마다의 인생에 고민과 슬픔, 아픔이 있을 것이다. 종합해보건대 돌덩이는 이걸 상징한다. 각자의 돌덩이는 크기도 모양도 무게도 다를 것이다. 앨범 재킷에서 황소윤을 짓누르고 있는 돌덩이에서 이미 힌트를 줬다. 저 돌덩이를 보면 누가 봐도 깔려 죽을 만큼 무거운 돌덩이는 아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조약돌도 아니다. 잘못 움직였다가는 머리를 찧든지 발등을 찍어 큰 상처를 안길 수 있는 무시 못 할 돌덩이다. 


누가 대신 치워줄 수 있는 돌덩이라면 진작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치워줬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돌은 자기에게만 보이고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작을 땐 모르다가 점점 몸을 짓눌러 올 때 이 돌의 존재를 깨닫게 되진 않을까? 이미 늦었다면서 무게에 눌려 더 앞으로 못 나가는 사람이 있을 테고 힘을 길러 그 돌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고 내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심리적 웨이트 트레이닝도 필요하다.



이 돌은 짐 덩어리가 아니라 내일로 함께 가야 할 애증의 아이템이 아닐까? 돌을 안은 모습을 보면 마치 갓난아이를 안듯이 아주 소중하게 두 손으로 감싸고 있다. 마침내 마주하게 된 돌덩이를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게 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에 남이 돌을 대신 치워주거나 대신 들어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힘겨워하는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안아주는 것뿐. 속도를 맞추어 같이 내일로 가는 것뿐.


# 추가. 무서운 사진 한 장

가사 처음에 나온 심폐소생 묘사. 물에 빠진 사람은 어찌 되었을까? 여기에 해답을 주는 느낌이 묘한 멤버들의 콘셉트 사진이 있는데 우리네 상복(喪服)과 닮았다. 무섭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 노래는 장송곡의 의미도 짙다. 우리... 슬픈 결말 생각하지 말고 같이 내일로 가자. 뮤직비디오 감상(클릭)


작가의 이전글 인사 잘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