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잘하는 아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 중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이다. 나는 같은 층에 사는 두 가족을 제외하고 다른 주민들과는 인사를 안 하고 지냈다. 같은 층 주민 말고는 누가 누군지 모르는 익명성의 아파트 세상이기 때문이다.
친절하게도 먼저 인사를 하는 주민이 있으면 고마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 하지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건 소심한 내 성격상 부끄러운 일이었다. 오지랖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상한 사람으로 볼 거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다. 아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타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귀여워해 주시는 지긋한 어르신들과 인사를 하게 된다.
"아이고 귀여워라~ 몇 개월이에요?"
"딸이에요? 아들이에요?
그리고 또래 아이를 키우는 주민을 만나면 더더욱 반가운 인사를 하게 된다. 보통 아이가 할 말을 부모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우와~ ㅇㅇ이랑 친구네?"
"몇 살이야?"
"어디 유치원 다녀?"
그럼 또 내가 우리 아이가 된 것 마냥 대신 답해준다.
"6살이에요"
"ㅇㅇ유치원 다녀요. 달님반이에요"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인사를 나눈다.
"안녕히 가세요!"
"안녕 잘 가!"
아이를 키우게 되면 이웃과의 접점이 생기게 된다. "아이"라는 접점.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연세의 주민들은 자신의 자식의 어릴 적 모습 또는 손자, 손녀들을 떠올리며 인사를 한다. 출산을 앞둔 신혼부부는 미래의 자녀를 상상하며 이웃의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며 인사를 나눈다.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민은 동질감에 인사를 나눈다. 유치원, 초등학교 또래 아이들은 동생 뻘 친구 뻘 아이를 보고 반가움에 인사를 한다.
유일하게 인사가 잘 안 되는 연령대는 중고등학생이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이 연령대에는 남에게 관심이 없다. 성격에서 묻어나는 쿨, 시크가 그들을 감싸고 있다. 냉랭한 기운.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고 이 아이는 내 길을 막는 장애물 정도로 느끼는 것 같다. 사춘기의 소년 소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다.
나도 아는 사람과는 꼬박꼬박 잘 인사를 한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하기란 참 힘들다. 인사는 아는 사람 사이에 하는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이런 이야기 했다. 인사만 잘하고 다녀도 밥은 안 굶는다고. 나는 잘 해내지 못했지만 내 아이는 인사를 잘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스 브레이킹이 빠른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변화를 바라면서 내가 먼저 변하지 않으면 넋두리에 불과할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 하지 않았는가? 내가 먼저 낯선 사람과 잘 인사하고 잘 지내면 아이도 그 방법을 따라 하지 않을까? 나에겐 아이라는 좋은 무기가 있으니 앞으로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열심히 해봐야겠다. 아이도 내가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사를 잘하게 되길 바라면서...
그러나 한편으로 무서운 생각도 든다. 워낙 흉흉한 세상이라. 이상한 사람에게 먼저 인사해서 나쁜 일을 겪지 않을까 말이다. 낯선 사람 중엔 나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쁜 사람을 걸러내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사회면을 가득 채우는 강력 범죄 뉴스에서 범죄자는 거의 멀쩡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범위를 보면 주변에 약간의 친분이 있는 경우에 더 많이 발생한다. 얼굴만 아는 이웃 주민이 도움을 요청해서, 새로 온 학원 선생님이, 교회 오빠가, 친구 아빠가...
부모와 함께 있을 땐 인사성이 바른 아이, 혼자 있을 땐 적당한 인사성을 가진 아이로 키워야 하나? 인사를 잘하는 바른 아이라는 것이 좋은 건 알겠지만 위험한 세상이라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부모가 처음이라 어려운 문제다. 아직은 혼자 어딜 가거나 할 나이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앞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혼자서 다닐 경우가 왕왕 생길 텐데 고민이다. 좋은 교보재를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