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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PD Jul 01. 2020

1%의 우정

환자와 재활 치료사 사이

나는 보기 드물게 젊디 젊은(?) 마흔 나이에 뇌경색을 맞았다. 신촌 세브란스 뇌졸중 집중 치료센터에서 1주일 입원 이후 현재 통원으로 재활치료 4개월째에 접어든다. 지금 재활치료를 받는 주된 이유는 연하곤란 때문이다.



연하곤란

[ disphagia , 嚥下困難 , Shluckbeshwerde ]


음식물을 섭취했을 때에 인두부~전흉부~심와부에 음식물이 메이는 듯한 느낌을 말한다. 이것은 인두~분문부에 이르는 기질적인 질환이나 연하 운동에 작용하는 신경, 근육의 기능적 이상으로 분류된다. 원인 질환에는 혀, 인두, 후두부의 염증성 질환(설염, 편도염, 인두염 등)이나 악성종양(설암, 후두암), 플러머 빈슨 Plummen-Vinson증후군, 식도질환으로서 이완 불능, 식도암, 식도염 등 외에 교원병(피부근염, 강피증), 연동운동 저하 질환, 분문부암 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연하곤란 [disphagia, 嚥下困難, Shluckbeshwerde] (간호학대사전, 1996. 3. 1., 대한간호학회)



길고 어렵게 설명되어있는데 한마디로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운 장애이다. 초기엔 물도 한 모금 마시지 못했고 죽 한 숟갈도 먹지 못했다. 심지어 입에 고이는 침도 삼키질 못해 뱉어내야 했고 침으로 축축해지는 베개에 잠을 깨곤 했다. 죽으란 법은 없다고 콧줄이라고 하는 실리콘 관을 코에서 식도까지 넣어서 약이며, 물이며, 죽을 공급을 받아야 했다. 지금이야 먹고 싶은 걸 다 먹고 마실 수 있지만 당시엔 모든 음식이 그림의 떡이었다. 살이 쏘옥~ 빠질 정도로 몸과 마음이 힘든 후유증이었다. 이미 과체중이라 아마 그렇게 티나 진 않았을 것 같다. 그렇게 맛없다는 병원 밥 냄새에 위장이 꼴릿해 산해진미로 보였으니 말 다 했다.

연하 장애 치료법 중 하나인 전기자극 치료

현재 일주일에 두 번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에서 전기자극 치료연하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전기자극은 목과 턱에 저주파 자극을 주어 근육과 신경을 재생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 치료법은 발병 2~3개월 내에 효과가 있다. 그리고 연하 재활은 재활 치료사의 지도와 도움으로 얼굴, 목, 혀 근육 운동과 함께 촉각, 온도 감각을 깨우는 마사지를 받는 것이다. 이런 과정 없이 섣불리 음식을 섭취하면 식도가 아닌 기도로 음식물이 넘어가서 폐렴에 걸릴 수 있다. 먹지 못하는 병, 연하 곤란 환자들에게 영양실조보다 더 위험한 것은 사실 폐렴이다.


2월 말부터 지금까지 매주 2번씩 재활 치료사를 만났기 때문에 중간에 휴일을 빼면 약 30회 정도 만난 셈이다. 30분씩 재활을 했으니 만난 시간만 합쳐도 15시간이 된다. 장ㅇㅇ선생님은 발병 초기에 내 몸과 멘털 모두 바닥이었던 나의 암흑기부터 현재  많이 나아진 나의 모습까지 지켜본 산증인이고 그 과정에 도움을 준 사람이다. 자꾸 보면 정든다고 장 선생님과 나는 가벼운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우정을 쌓았다. 마흔 살 아재와 20대 여성.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우정이다. 마치 영화 <언터처블>처럼 말이다.


2011년작 / 1989년작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은 부제 <1%의 우정>으로 더 많이 불리는데 우리나라 수입사에서 따로 지은 제목이다. 아마도 동명의 갱스터 영화와 구분하기 위해 지은 듯하다. <1%의 우정>은 상위 1%의 슈퍼리치이지만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장애인 필립과 하위 1%인 무일푼의 흑인 간병인 드리스의 우정을 담은 영화다. 영화에선 사회적 지위로 상하위 1%를 나눴지만 결국 <1%의 우정>이란 "결코 만날 일 없는 두 사람의 우정" 정도의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나이 마흔에 뇌경색을 맞고 재활 치료사를 만날 일이 있을 거라고는 결코 몰랐다. 건강하다고 자부해서가 아니라 아직 한창 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아차 싶은 단서는 있었다. 근 5년간 건강검진에서 반복적으로 지적했던 "고혈압 관리" "체중 관리"가 그것이다. 하지만 술도 한 달에 한두 번 마시고 태생이 비흡연자인 내가 혈압이 조금 높다고 해서 병원으로 달려갈까? 그래야 했던 것이다. 무관심과 자만심으로 망가진 건강이었다. feat. 운동부족.


영화 <1%의 우정>처럼 "환자+간병인" 조합은 아니지만 "환자+재활 치료사"로 비슷한 상황인 것은 틀림없다. 아무튼 불행한 일로 인해 만나게 되었지만 많은 재활 선생님 중에서도 장선생님을 만나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 장선생님은 일단 밝다. 힘들고 지친 모습을 보일 법도 한데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항상 밝다. 그래서 일전에 치료를 받다가 내가 물어본 적이 있다.


"매일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만 보면 힘들지 않아요?"


"아뇨, 전혀요. 환자분들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조크든요"

교과서적인 대답이었지만 표정이 진심이었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지..... 진짜가 있구나. 집중 치료실에 입원해있는 동안 곁에 있는 다른 환자들이 끙끙 앓는 모습에 질려서 퇴원을 서둘렀던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간호사가 아니라서 흰옷만 안 입었지 백의의 천사로 불릴만하다. 파란 옷을 입었으니 청의의 천사라 부르면 될까?

(장선생님 아니고 배우 이채영) 이런 청색이다.


우리 장선생님은 칭찬을 잘해준다. 목 근육을 써서 음식을 삼키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이게 참 쉽지가 않다. 흔히 목젖이라고 잘못 말하는 밖으로 돌출된 목뼈 부분이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원활하게 작동해야 삼킴이 완벽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절반만 움직인다. 삼키는 힘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힘겹게 얼굴 찡그리며 이걸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면 장선생님은 칭찬을 해준다.


"잘하셨어요. 김성민 님" (환자의 호칭은 성까지 다 붙여서 풀 네임을 불러준다)


이 말을 듣자마자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와버렸다. 나이 마흔 먹은 남자가 어디서 칭찬받기란 로또 5등 당첨될 확률만큼이나 어렵다. 집에선 말 안 듣는 남편, 안 놀아주는 아빠, 회사에서는 반항하는 후배 반대로 후배에겐 꼰대. 어딜 가나 중간에 끼인 세대인 만큼 칭찬을 받을 일도, 해주는 사람도 없기 마련이다. 칭찬은 아재도 춤추게 한다. 이렇게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받는 재활의 효과는 말해 뭣하랴.


우리 장선생님은 정이 많고 배려심이 많다. 음식을 삼키는 훈련을 하기 위해 병원에서 음료와 과자 같은 음식물을 준비하는데 오렌지 주스와 빅파이가 주로 나온다. 왜 항상 이 조합인지 의문임


"평생 먹을 빅파이를 여기서 다 먹네요"


"빅파이 지겨우시죠?"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다음 재활 때 빅파이가 아니라 정확하진 않은데 경주 황남빵 같은 특이한 팥빵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다른 환자가 나누어준 것을 나에게 양보한 것이다. 그 팥빵으로 삼킴 훈련을 하면서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전해졌다. 그리고 퍽퍽함도?! 팥빵 특유의 퍽퍽함으로 인해 훈련 강도가 높아졌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재활할 때 옵션 넣으면 좋을 거 같아요. 각 지역 특산 빵 선택권 넣어서.... 퍽퍽함 난이도 조절도 하고"


"하하하~ 정말 좋은 생각인데요!"


아참, 장선생님은 이렇게 아재 개그에 관대하다. 혀 근력을 키우기 위해 혀를 위아래 좌우로 힘주어 설압자를 밀어내는 훈련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웃긴 생각이 들어서 빵 터졌다.

(황당해하며) "왜 그러세요? 김성민 님?"


"예능 프로그램에서 팔씨름이니 무릎 씨름이니 여러 씨름을 하는데... 혀로 씨름하면 진짜 웃길 거 같아서요"


(박장대소) "푸하하하하~  그걸 어떻게 해요"


"근데 지금 시국도 시국이지만, 그냥 평소라도 할 수 없는 게임이네요"


"근데 좀 변태 같네요"


"그렇죠? 불가능하겠네요"


"평소에 이런 생각을 좀 하시나 봐요?"


"네, 직업상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다행히 내 직업이 예능 PD인 걸 알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말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준다.

장선생님 아님. 그냥 러닝 이미지임.

무엇보다 장선생님은 뭐든지 열심이다.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치료해주는 것은 기본이고. 항상 아침 7시까지 출근해서 8시부터 시작인 업무를 준비한다고 한다. 아침 7시 출근이라니! 무슨 수도승도 아니고! 그리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 집에서 왕복으로 2시간 정도를 걷고 달리기를 한다고 한다. 나도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걷고 있는 헤비 워-ㄹ커로서 두 시간은 참 놀라운 일이다. 심지어 중간중간 달리기도 한다고 하니 존경스럽다. 아마 이런 체력 관리가 장선생님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지탱해주는 에너지원이 아닐까 싶다.


나도 이번에 큰 병을 겪으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바로 신체와 정신은 하나라는 점이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생각도 부정적이 되기 쉽고, 몸이 건강하면 정신도 긍정적이 되기 쉽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정상인이 아니라 환자의 경우다. 환자는 몸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정신 상태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내가 발병 초기에 가족에게 쉽게 짜증을 내고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했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기약 없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후유증과 통증, 왜 하필 내가 몹쓸 병에 걸렸는지 자괴감과 피해망상이 나를 지배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의 우정>에서 하반신 불구가 된 필립과 같은 상태였을 것이다. 몸과 마음의 고통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가한 것이다.

중환자인 가족을 병간호하다 보면 본인 건강도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통은 나눌수록 반이 된다고 하지만 그 반은 결국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희석되는 것이다. 재활 치료사도 그런 점에서 보면 꽤 고통스러운 직업이다. 아픈 환자 곁에서 별 별 꼴을 다 보기 때문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나도 병원에서 간호사와 치료사에게 욕하거나 손찌검하는 환자들을 본 적이 있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것저것 요구하는 환자도 많다. 가족에게나 할 수 있는 추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극히 일부의 이야기다


사실 내가 이런 병을 겪기 전에는 병원엔 의사와 간호사만 있는 줄 알았다. 물론 의사, 간호사 분들에게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아픈 환자 곁에서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으며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게 하는 그들. 청의의 천사 재활 치료사 분들의 존재를 몰랐다. 시청자들을 한 번이라도 더 웃기려고 밤을 새우며 편집하던 웃음 팔이 예능 PD가 웃음과 건강을 잃고 방황하며 흑화 되어 있을 때 손을 잡아준 장선생님. <1%의 우정>의 간병인 드리스만큼이나 나에겐 평생 은인과 같다.


감사합니다. 장선생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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