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tPD Jul 10. 2020

브런치 작가 부럽지?

꼴랑 글 5개 올리고 쓰는 체험기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잘 쓰지는 못 하지만 말이다. 워낙 잡생각이나 아이디어가 자꾸 떠오르는 스타일이라 구글 keep 앱에 떠오르는 걸 정리해두곤 하는데. 이게 포스트잇 같아서 나중에 보면 무슨 말인지 한참을 해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날의 기억과 느낌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내가 알아들을 정도로 혹은 남들이 봐도 부연 설명 없이 이해될 정도로 충분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브런치다.


그럼 왜 네이버 블로그가 아니고 브런치였나? 브런치의 장단점이 될 수 있지만 바로 "폐쇄적인 생태계" 때문이다. 브런치는 글을 쓴다고 해서 바로 독자가 읽을 수 없다. 작가 신청을 통과해야 글을 발행할 수 있다. 작가의 글을 랜선 끝 누군가에게 심사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자격제인 셈이다. 일종의 특권이 될 수 있고 자부심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브런치 생태계의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마치 운전면허 제도와 비슷하다. 우리는 상대방도 운전면허를 갖고 있으니 어느 정도 안전할 거라는 믿음으로 도로에서 차를 운전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운전면허는 매우 따기 쉽다. 브런치 작가 검증도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은 것 같다. 쓰고 보니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다


반면에 네이버는 다음보다 사용자가 더 많고 노출 빈도도 더 높다. 조금 더 열린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보다 많은 사용자들에게 내 글이 읽힐 가능성이 더 크다. 힘들게 쓴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면 좋은 것이니 이것은 daum을 모체로 둔 브런치의 단점이라 할 수 있다. 


내 글을 찾아 들어오는 유입 경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할 때 올렸던 글은 <코로나19와 뇌경색>, <퇴사와 불닭볶음면> 두 개였다. 작가를 신청하면서도 "이거 너무 개인적인 글을 올린 건 아닐까? 떨어질 수도 있겠는걸?" 생각했다. 작가 통과 프로세스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나 정도의 필력으로도 통과한 것을 보면 글을 엄청 잘 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글 솜씨도 어느 정도 보겠지만 그 외에도 중요한 조건들이 숨어있는 것 같다.


내 맘에 안 들어요! 작가님!

#뇌피셜_작가 선정 기준

우선 남의 글을 복붙 한 것은 아닌지 AI 시스템으로 거르지 않을까 싶다. 제목만 그럴듯하고 내용은 어디서 긁어오는 경우 손쉽게 글 한편을 만들 수 있을 터. 진짜 이 사람이 쓴 글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정이 아닐까? 네이버 블로그의 경우 제목, 문단 순서만 바꾸고 같은 글을 반복적으로 올리는 업자(?)들이 많다. 브런치는 이런 걸 막고 있는 게 아닐까? 저품질의 양적 확장보다는 질적 확장을 꾀하는...


표절 심사를 통과하면, 글이 가진 가치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되어도 될 글인지 볼 것 같다. 아주 잘 쓴 글이어도 어느 업체나 물건을 홍보하기 위한 상업적 글이거나 선량한 미풍양속을 해치는 글, 특정 집단이나 인물에 대한 저격 글, 정치적인 편향과 지지하는 세력에 대한 동참을 담은 글 등. 내가 공영방송에 몸을 담고 있어 봐서 잘 안다. 쉽게 얘기해서 누가 보더라도 불편함 없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엄청 잘 쓴 소설이지만 읽어보면 아주 야한 내용일 경우 당연히 반려되지 않을까? 


내 글을 통과시킨 걸 보면 문장력은 기본 이상이면 되는 것 같다. 문장을 아름답고 간결하고 능숙하게 쓸 줄 아는 글솜씨까지 요구하는 것 같진 않다. 심지어 브런치에는 맞춤법 검사, 수정 기능까지 있어서 띄어쓰기 맞춤법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마치 운전면허에 2종 오토 면허가 있는 것처럼. 역시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다

이런 실수를 저지를 일은 없다

기왕 읽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글이면 좋지 않을까? 입담이 좋아서 내용이 재미있다거나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들어있거나 다른 작가라면 쓸 수 없는 전문적인 글이라던가 혹은 글의 구성이 좋아서 결론까지 술술 익힌다든가 하는 이유로 말이다. 브런치 메인 화면에 노출되는 작가들을 살펴보면 특이한 직업 세계를 담고 있는 전문직 작가들, 외국에 살며 특이한 풍속을 소개하는 작가들, 퇴사를 하고 특별한 도전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많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끝까지 읽기 쉬운 글이다.


#통계의 유혹

내가 처음에 쓴 글은 <코로나19와 뇌경색>이었다. 내가 마흔 살에 겪은 뇌경색의 치유 과정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때마침 세상을 뒤덮은 코로나19와 악연도 양념으로 넣고 싶었다. 말하고 싶은 내용은 뇌경색 치유기였지만 검색으로 코로나19가 얻어걸리면 좋겠다는 마케팅적 영악한 술수도 있었다. 예능 피디 직업병이다. 어떻게든 만들어낸 콘텐츠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힘들게 쓴 글이니까. 그런데 정작 글의 유입은 <전동 킥보드 출근>이 가장 많았다. 압도적이다.




전동 킥보드에 대한 관심들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자동차 출근이 지겨워서 전동 킥보드를 사고, 출근한 것을 정리해서 올렸는데 1만 건이 넘는 조회가 되었다. 그만큼 전동 킥보드는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깊고 넓은 정보력으로 잇썹 같은 유투버처럼 장비 비교를 한 것도 아니고 동영상으로 친절히 찍은 것도 없었다. 그저 출근길에 찍은 서강대교 풍경과 킥보드 주행 기록이 전부였다. 쓰는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실 <뇌경색과 코로나19>같은 글이 쓰는데 더 오래 걸리고 더 많은 퇴고를 필요로 했다. 


"여기 제 글 좀 읽어주세요!"

브런치는 나만 볼 수 있는 비밀 일기장에 쓰는 글은 아니다. 네이버 블로그보다는 유입이 적지만 어찌 됐든 남들에게 읽히기 위한 글을 쓰는 공간이다. 글을 써서 남들에게 보여주고는 싶지만 네이버 블로그처럼 어지러운 공간에서 노출되는 건 싫은 그런 느낌인 거 같다. 브런치는 이런 작가들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준다. 어떤 글이 인기가 있고, 어떤 검색어, 채널을 통해 유입되었는지 "통계"메뉴로 상세히 보여준다. 작가가 되어 통계에 들어가 보면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어라? 이런 글이 더 읽고 더 검색되는구나!"


사람들이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은 브런치 작가에게 독배와 같다. 읽히기 위한 글을 쓰게 되는 유혹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독배를 잘 쓰면 성배가 된다. 세상을 바꿀 엄청난 권력을 잡게 된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그랬다.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



#독선과 타협 사이

마치 자기가 좋아하는 희귀 브랜드의 제품을 모아놓아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편집숍을 운영하던 고집 센 사장님이 있다고 치자. 이 가게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브랜드와 제품이 있는 곳이다. 입소문도 나서 특이한 걸 좋아하는 손님들도 찾아온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손님이 왔다.


"요즘 ㅇㅇㅇ 브랜드가 유행인데! 그건 취급 안 하세요?"


이 사장님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 임대료 따위 걱정 없는 본투비 갑부라 치자.


"죄송합니다. 그런 브랜드는 취급 안 합니다"


단호하게 손님을 돌려보내고 묵묵히 자신의 취향으로 가게를 채워나갈 것이다. 아마 처음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점점 발길이 뜸해지는 손님들에 애써 발굴한 정말 좋은 희귀 브랜드를 알릴 기회마저 잃게 된다면? 


"이 지갑은 제가 이태리 남부 도시에서 찾은 건데 거기 장인이 5대째 내려오는 분이고...."


이런 얘기를 들려줄 사람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면? 아마 본투비 갑부라도 이쯤 되면 취미로라도 가게를 계속 운영할 심리적 동기가 없어질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고객이 찾는 것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브런치 작가와 독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작가 신청에 통과되면 받는 축하 이메일

#비슷한 듯 다른 너와 내가 만나는 곳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일단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자기 글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나의 생각과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기꺼이 용기를 낸 사람이고 좋아요, 댓글, 구독 등의 기능을 통해 다른 작가와 소통하고 싶은 사람이다.


글 쓰기를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게 다를 수 있다. 성별, 나이, 거주지부터 시작해서 글의 소재도 제각각일 것이다. 하물며 소재가 같은 경우에도 글을 풀어내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이를테면 고양이라는 소재로 글을 쓸 때 고양이의 매력을 혹은 야생성을 혹은 기원을 혹은 사료를 혹은 미용을 혹은 죽음을 혹은 노래를 혹은 소설을 혹은 시를 혹은 그림을 혹은 부동산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듯 다른 작가들이 모여있는 곳이 바로 브런치다. 그래서 다른 작가에게 동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나와 닮은 듯 다른 지점에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어떻게 저런 일을 하지? 어떻게 저런 걸 다 알지? 글에 대한 호기심은 글을 썼을 그 작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증폭된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나랑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를까? 마주 앉아 커피 한 잔 하고 싶은 작가들이 많다. 브런치는 그래서 좋다. 좋은 사람들이 많다. 좋은 글이 많다.


#무엇보다 필요한 꾸준함

매번 글을 쓰면서 가볍고 짧게 써야지 하면서도 막상 쓰다 보면 문장도 터무니없이 길고 주절주절 쓸데없는 문단이 늘어난다. 짧은 문장으로 경쾌하게 위트 있게 글을 쓰고 싶은데 그건 정말 어려운 경지인 듯싶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점점 커진다. 내 글 <1%의 우정>의 주인공인 재활 치료사 장선생님은 자기 이야기를 다룬 글을 읽고선 폭풍 친찬을 건넸다.


"김성민 님은 글을 참 잘 쓰시네요" 


"다들 그 정도 써요. 안 써 버릇해서 그래요"


정말 맞는 말이다. 글을 쓰기 위해 마음먹는 것이 가장 힘들다. 그리고 첫 문장을 손쉽게 썼어도 끝을 맺기 어렵다. 쓰다 보면 이야기가 산으로 간달까? 글을 쓰면서 새로 생기는 논리와 근거들로 내 생각 자체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글의 중간쯤 써 내려갈 때쯤...


"내가 이 글은 왜 쓰려는 거지?"


"다 무슨 소용이지?"


쓰다 보면 현타가 오는 것이 글쓰기다. 왜냐하면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행위는 철저히 자유의지이기 때문이다. 글을 안 올리면 계정이 없어지거나 혹시 없어지나요? 비난이 쇄도하는 것도 아니다. 자유의지라는 점에서 다이어트와 같다. 누군가 자극을 줘서 시작할 순 있겠지만 결국 본인 의지에 달려있다. 치킨에 맥주를 먹고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는 대신에 닭가슴살에 물을 마시고 꾸준히 운동을 하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자신과의 싸움 때문에 시작한 사람은 많아도 목표에 도달한 사람은 적다. 그리고 목표치를 계속 유지하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


브런치 작가도 마찬가지다. 시작한 사람은 많아도 꾸준히 활동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현재 나에겐 글을 잘 쓰는 것보다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 더 큰 도전이다. 브런치를 탐험하다 보면 100개가 넘는 글을 올린 작가들을 종종 찾게 된다. 마치 식스팩을 만든 다이어트 성공자를 보는 듯한 부러움이 든다. 


글쟁이 롤모델이 곁에 있다는 점에서 브런치는 훌륭한 플랫폼이다. 아마 그 작가도 나처럼 시작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글 5개가 20번 모이면 100개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 20세트 중에 1세트를 해냈다. 즐겁게 글을 써나가자. 브런치는 꾸준함이다. 끝.

꾸준함에 도움을 주는 체력도 중요


작가의 이전글 점약의 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