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을 이유
창업을 했을 때, 우스갯소리로 돈 준다고 하면 ‘감사합니다’하고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하지만 나는 창업을 할 때 투자를 받지 않았었고, 창업을 정리한 후에야 VC에서 일하면서 내가 왜 안 받았는지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투자로 인해 브랜드 신뢰도도 높아지고, SI(전략투자)는 전략적으로 도움도 되고, 무엇보다 총알이 생기는 것인데 왜 마다할까?
창업 환경 요인
창업비용이 낮아졌다. 자영업자는 클라우드 키친으로 월 단위로 주방을 결제할 수 있고, 배달의 성장으로 오프라인 매장 없이도 사업이 가능해졌다. 커머스 사업자는 3PL, 풀필먼트 사 등으로 유통의 부담을 덜 수 있고, 스마트 스토어, 인스타, 쇼핑몰 솔루션으로 개발 없이 사업을 할 수 있다. 특히 IT서비스는 사무실이랑 인건비, 서버비 말고 초기에 들어갈 돈이 별로 없다. 그런데 그나마도 쓸 일이 적어지고 있는데 사무실은 네모 등 앱으로 구하기 쉬워졌으며, 코워킹 스페이스는 많아졌고, 학생이라면 공짜 사무실도 꽤 보인다. 인건비는 정부의 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창업인턴제, 청년 추가 고용 장려지원금 등으로 도움을 받기 좋아졌고, 서버비는 클라우드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초기 서버비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사람도 개발도 다 돈 없이 해결해버리는 부트스트래핑이 흔하다 보니 투자에 대한 절실함도 적어진다. 반대로 돈을 받을 기회 중 하나인 정부지원금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초기 팀들이 정부지원금을 소액투자의 대체재로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지원은 정말 손이 많이 간다. 정부지원은 받는 동안 욕을 천 번 정도 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무조건 정부지원받으면 안 된다는 아니지만, 투입 대비 효율이 높아 보이는 지원사업들도 항상 기대보다 투입 대비 효율이 낮았던 것 같다.
투자 시점 요인
야심 있는 팀은 좀 더 밸류 키워서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것이 심해지면 미래를 과대평가하면서 오는 욕심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반대로 아직 돈을 태울 때가 아니란 생각 하기도 한다. 이는 현실을 과소평가하는데서 오는 불안함일 수 있다.
이 둘 다 타이밍에 대한 고민인데, 이에 대해 와 닿았던 말은 어느 시점이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시간과 돈은 trade-off 관계에 있기 마련이므로, 돈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심리 요인
어떤 팀들은 투자금 손실로 폐 끼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또 투자를 받기 시작하면 계속 투자받게 되어 투자의 수레바퀴에서 돌 것 같다는 걱정도 더러 한다.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이기심보다 너무 크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느낄수록 그렇다.
투자금을 남의 돈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투자로 연명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VC도 그렇게 막 투자하지는 않는다. 가능성이 없는 팀을 과대평가하는 일은 적고, 후속 단계에서는 더더욱 정이나 창업자의 눈빛 같은 걸로 투자하지 않는다. 사업이 될 만하면 투자를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받지 못할 것이기에, 과하게 조심스러울 필요도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