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온다.

by 차희의 유희

탁, 타닥, 똑똑똑,

굵은 빗방울들이 장작 타들어가는 소리를 내며 창문을 두드렸다.

어둠 속에 작은 균열이 생기더니, 그 틈새로 약국의 노란 불빛이 번져 나갔다.

불빛은 방황하는 그림자들을 불러들였고, 차가운 바람 속에서 하나둘 문 앞에 멈춰 섰다.

누군가는 고개를 떨군 채 웅크렸고, 또 다른 이는 문을 올려다보며 망설였다.

침묵은 고요했으나, 빗소리에 숨어 두드리는 수많은 노크 소리나 다름없었다.


이주는 따뜻한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끝으로 저릿하게 퍼지는 온기가 가을 끄트머리 차가움을 밀어내듯 스며들었다.

그녀의 고단함을 덮는 듯 커피 향이 코 끝을 간질였지만, 창밖을 바라보다 이내 지겹다는 듯 시선을 돌려 약국 내부를 훑었다.

"날씨가 이런데도 손님들 줄이 어마어마하네요. 벌써부터 기 빨려요."

직원 전용 문으로 들어선 수영이 트렌치코트를 벗으며 말하자, 그녀의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살풋 웃으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게. 오늘 손님 많을 것 같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어."

이주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두껍게 쌓인 피곤이 역력했다.

조제실 안에서 약을 정리하던 다온이 고개를 내밀며 창밖을 살폈다.

"윤 실장님은 아직이시죠..? 시간이 다 돼가는데, 제가 전화해 볼까요?"

다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친 바람과 함께 은호가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출근길에 어린 영혼을 도와주느라 조금 늦었어요."

"어린 영혼?"

"네, 붕어빵 트럭 앞에 얇은 옷차림으로 서성이더라고요. 길을 잃은 아이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어린 망자였어요."

은호는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는 말을 덧붙이며 이주의 반응을 살폈다.

"역시 은호답네! 근데... 우리 붕어빵은...?"

은호를 놀리는 듯한 이주의 말에 이제야 아차 싶은 듯 눈동자를 굴려댔다.

"아! 아... 죄송해요. 제가 음.. 마감하는 사장님께 사정하느라..."

그녀와 직원들은 은호의 반응에 깔깔 웃어댔다. 타격감 좋은 은호는 종종 놀려대는 재미를 줬다.

이주는 곧 따뜻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네며 안경을 벗어 닦았다.

"킥킥 어서 준비해 오늘 손님들 엄청 많아."

"네!"

그는 이제야 안심한 듯 옷을 갈무리하며 자리를 정돈했다.


이주 외에 영혼과 장비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직원은 은호가 유일했다.

그녀는 은호의 능력과 따뜻한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근데, 오면서 보니까 청령의원은 벌써 진료 중이더라고요. 역시 장담호 선생님답네요."

"그렇죠. 청령은 주말에도 쉬는 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월요일만 되면 망자들이 우리 약국에 우르르...

청령 직원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더라니까요."

"우리도 곧 그렇게 될걸?"

다온의 말에 수영은 창밖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러게, 주말은 좀 쉬라고 협박 좀 해야겠어. 킥킥. 이제 곧 손님들이 밀려 들어올 테니까 빨리 서두르자."

이주의 말에 직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그녀는 문 앞으로 걸어가 약국의 불을 천천히 낮추었다.

간판의 빛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운향약국’이라는 글자가 희미해졌고,

그 자리에는 서서히 새로운 이름이 떠올랐다.


'운향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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