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류회사 Everlane은 제조원가와 제조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벤처캐피탈에 근무중이던 Michael Preysman이 패션업계의 폭리를 참지 못하고 설립한 기업이라 Radical Transparency, 급진적인 투명성을 내세운게 특징이다.
에버레인의 특징
원래 패션업계는 원가보다 디자인과 브랜드 가치 등으로 의류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제조원가를 공개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그는 제조비용 또한 고객의 알 권리라며 모든 제품의 제조원가를 공개한다.
$50 린넨셔츠를 클릭하면 보이는 원가 공개
심지어 제품별 제조공장도 공개한다. 어느 베트남 공장에서 만들어지는지까지 알 수 있다.
옷을 만든 베트남 공장에 대한 설명까지 친절하게...
나는 이 사례를 보면서 고객경험의 차별화가 과연 어디까지일까 생각했다. 품질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니 이런 기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윤리적 기업, 투명경영, ESG 등의 가치에 돈을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는 MZ세대. 이제 어떤 것을 먹고, 입고, 사용하는지에 본인이 생각하는 가치를 대입한다. 그래서 상품 자체의 차별화가 아니라 상품을 만드는 과정과 정보 공개라는 것까지도 고객 경험의 차별화 요소를 이루며 열광하게 하는게 아닐까. 신박한 발상이고 엄청난 차별화지만 아무나 따라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유니크한지 모른다.
고객경험 개선여지
금융회사는 어떨까? 고객경험 차별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 따르면 은행의 지점 기반 모델은 5년내에 죽을 것이라는 데에 65프로가 동의했다. 4년전 35프로였던 수치가 팬데믹 기간을 계기로 오프라인 지점에 대한 니즈가 확연히 떨어진 것 같다. 아니 반대로 디지털 채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봐야겠다.
반면 81프로의 뱅커는 은행상품보다 고객 경험을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할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예전보다 금융에서도 고객경험이 우선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는 것과 하는 것은 천차만별이던가. 지점에서, 모바일 앱에서 고객경험을 생각해보면 차별화는 아직 없다. 반대로 개선의 여지가 엄청 많기 때문에 할일이 많다는 것일 수도 있다.
오프라인 영업점의 경우 규격화된 지점이 아닌 지역별 특색에 맞춘 지점으로 디자인화할 수 있으며 디지털 요소도 지점에 가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바일 앱도 비워내기의 미학을 발휘하여 심플하고 단순하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능한 UX/UI디자이너의 고용이 아닌 업무 프로세스의 개선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도출된 결과물일뿐, 그것을 목적으로 하면 목표한 바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일을 하다보면 늘 하고 싶은 말이다. 나만 이런건 아니겠지.)아날로그 프로세스를 그대로 유지한채 디지털에 최적화된 앱을 만든다는 것은, 마치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차분한 필터 느낌에 따뜻한 색감으로 토끼 귀 이미지도 입혀서 귀엽게 찍어달라는 것과 똑같다.
BACK TO THE BASIC
오히려 국내에서 벌어지는 은행의 대출중단 사태를 보며, 금융회사는 이제 유틸리티 회사로 분류해야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은 우리사회에서 남들이 하기 힘든 역할, 즉 신용을 확장하고 시스템에 유동성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증권사도 마찬가지로 주식/채권시장에서 거래를 도우며 기업들에게 유동성을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가 심하고, 그래서 혁신이 어려운지도 모른다.
그런데 유틸리티 회사의 대표격인 통신회사를 생각해보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재창조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4G 시대가 되면서 플랫폼, 콘텐츠회사들이 새로운 수익 창구가 되기 시작했다. 카카오가 메신저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구글이 유튜브로 광고수익을 창출하는 그 시점에 통신사는 한발 늦는 바람에 많은 기회를 놓쳤다. 데이터통화 이용료를 받는 BM에서 통신망을 활용한 다양한 플랫폼, 콘텐츠사업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BM으로 변화하지 못했다.
지금 금융회사도 통신회사가 돌아가고 싶은 그 때, 비즈니스 모델을 재창조해야할 시기가 아닐까. 아날로그 프로세스, 즉 체질을 개선하지 못한 채 앱만 수정한다고 될일일까. 고객경험 개선이라는 미션 하에 결과물만 지향하다보면, 마치 80대 노인이 20대 옷을 입은 채 젊어보이지 않냐고 우기는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금처럼 메타버스 플랫폼에 집착하며 혁신적인 이미지를 입으려 하지말고, 과연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 어떤 프로세스를 개선해야할지 생각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