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게임이 지루함에서 벗어나 재미를 추구하기위한 오락의 하나였다면, 이제는 게임조차도 그에 대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보장받아야만 마땅한 것으로 인식이 변하고 있다. Game과 Defi가 만나 GameFi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블록체인 기반의 게임이 탈중앙화 금융을 만나면 어떤 마법을 부리는지 보여주고 있다.
P2E(Play-to-Earn) 트렌드
요즘 게임업계에서 가장 핫한 Play-to-Earn(P2E)은 GameFi를 경이적인 성공으로 이끈 최초의 재정적 인센티브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Pay-to-Win 또는 Play-to-Win(P2W) 모델은 상대 플레이어를 이기기 위해 게임에서 돈을 지불하여 아이템이나 게임능력을 구매했다면, 이제는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는 Play-to-earn 모델이 게임업계를 휩쓸고 있다. (위메이드 주가만 봐도,,, 지금 게임업계는 온통 P2E 이야기뿐이다)
Axie Infinity를 통해 본 Play-to-Earn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필리핀에서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Axie Infinity 공동설립자 Jefferey Zirlin이 말했다. P2E의 대표적인 게임 Axie Infinity는 필리핀에서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게임만 해도 한달에 최저 임금의 3배를 벌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 베네수엘라, 브라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나이지리아, 가나, 터키 등의 나라에서 성장하고 있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은행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많은 나라라는 점, 그래서 이러한 게임이 은행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소득창출을 돕고있다는 점이다. 우버, 에어비앤비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 것처럼 Axie Infinity도 디지털 메타버스 경제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
Axie Infitinity의 경우 몬스터를 구매하여 거래하고 번식하는 과정에서 암호화폐 SLP(Smooth Love Portion)를 획득한다. 새롭게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의 경우 최소 3마리의 Axie 몬스터가 필요하고, 두 Axie를 교배하면 새로운 Axie를 만들 수 있는데 최대 7회까지 교배가 가능하다. 거래소에서 자유롭게 Axie몬스터를 NFT형태로 판매할 수 있고 게임내 자산을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따라서 SLP토큰을 현지 통화로 교환하려는 수요가 많을수록 토큰 가격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즉, 새로운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공급되지 않는 한 SLP 토큰 가격이 유지될 수 있는지,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SLP 차트 (출처: Coinmarketcap.com)
그런데 Axie Infinity의 거버넌스 토큰인 AXS(Axie Infinity Shards)는 여전히 흥행중이다. AXS 홀더는 Axie Infinity와 관련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고, 향후 수수료 수익을 보유량에 맞춰 배분받을 수 있다. 참고로 Axie 게임을 만든 Sky Mavis가 약 20%를 소유하고 있다. 올해 메타버스, P2E 트렌드로 인해 이 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하면서 AXS는 그 어느때보다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AXS 차트(출처: coinmarketcap.com)
현대판 소작농과 지주
게임 플레이어와 게임회사가 마치 디지털 경제에서 현대판 소작농과 지주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월급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다며 희망에 찬 플레이어들을 활용해 코인의 시장 진입 및 유통을 쉽게 하여 코인을 활성화시키면, 결국 그에 따른 과실은 게임을 만들고 투자한 사람들의 몫이 되는게 아닌가. 은행에서 소외된 계층의 소득 창출을 돕는다고 홍보하지만, 실상 배후에는 A16z와 같은 거대한 벤처산업이 막대한 돈을 투자하며 이 게임의 성장을 돕고 있다는 사실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다.(원래 투자란 그런거라고 한다면, 할말 없지만)
"If you don't pay, you are the product." 상품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네가 상품이다. 라는 유명한 문구가 떠오른다. 어느새 게임조차도 그냥 즐기는 오락의 도구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해야만 하는 즐길수 없는 신세가 되는건 아닌지.
국내에서는 불가
우리나라에서는 게임내 재화가 현실의 재화로 교환되는 것을 사행성을 이유로 규제한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8조제2항 및 제3항을 근거로 NFT게임에 대해 부정적이다.
제28조(게임물 관련사업자의 준수사항) 2. 게임물을 이용하여 도박 그 밖의 사행행위를 하게 하거나 이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아니할 것 2의2. 게임머니의 화폐단위를 한국은행에서 발행되는 화폐단위와 동일하게 하는 등 게임물의 내용구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운영방식 또는 기기ㆍ장치 등을 통하여 사행성을 조장하지 아니할 것 3. 경품 등을 제공하여 사행성을 조장하지 아니할 것.
NFT의 핵심은 환금성인데, 국내 법은 이러한 환금성을 규제하므로 P2E 게임은 국내에서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내 게임업체들은 현재 해외 서비스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고, 법 개정과 함께 NFT게임과 같은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기성세대의 관념에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것까지 더해져 인정할 수 없는건가. 블록체인 기술은 장려하지만, 블록체인 기반의 게임은 용납할 수 없고, NFT라는 새로운 시장이 생겨서 과세는 해야겠지만, 게임 내 NFT로 돈을 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고. 한 끗 차이처럼 보이지만, 저변에 깔린 사고방식은 그 차이가 너무도 커서 언제쯤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Web3.0과 디지털 세상의 노동
게임업계에서의 이같은 변화는 Web3.0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보여진다. 웹2.0시대에는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할수록 플랫폼이 더 많은 돈을 벌고 플랫폼의 가치를 더해갔지만, 웹3.0시대에는 "탈중앙화"를 바탕으로 사용자들이 자신의 콘텐츠에 대하여 "직접" 정당한 보상을 받고 투명하게 유통하기를 원한다. 메타버스까지 더해져 디지털 세상과 현실 세계와의 상호작용이 점점 극대화된다면, 디지털 세상에서의 노동 또한 현실 세계의 재화로 교환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이란 일반적으로 육체적으로 땀을 흘리거나 정신적으로 창작의 고통을 겪는, 그런 힘들고 값진 것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가 과연 디지털 세상의 노동이냐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NFT as a service 시대
Jeremias Adams-Prassel의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원제: Humans as a service) 책을 보면 온라인 플랫폼에서 분 단위로 거래되는 노동이 진정한 '상품'이 되어버린 현실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미 긱경제(Geek Economy)에서 소비자와 노동자를 연결해주는 혁신적인 앱들을 이용하여 익명의 상호작용을 통해 각종 노동을 손쉽게 제공받고 있다. 저자는 '서비스로서의 인간'으로 표현했는데, 마찬가지로 P2E(Play-to-Earn)에서는 '서비스로서의 NFT' 시대가 도래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NFT를 생성하고 누군가는 그에 대해 가격을 지불하면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대말이다.
P2E모델은 돈을 벌 수 있는 새롭고 유연한 방법일 수 있지만 아직은 중앙 집중화된 세상에 존재한다. 게임내 NFT의 발행, 유통, 환금성 등 모든 부분은 게임회사가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있고 NFT가 완벽히 개인의 소유권으로 이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게임 플레이어의 물리적 지역에 상관없이 디지털 세상에서의 시간과 노력을 현실 세계의 소득으로 이전해주는 마법같은 환금성으로 이제 게임에서도 'NFT as a Service'를 양산하는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우클릭 세상과 NFT
기술의 발전은 빠르지만, 사고의 전환과 규제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 따라서 국가나 개인도 이러한 흐름에서 뒤쳐질때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생각해야한다. 나조차도 '우클릭'으로 이미지 저장 또는 다운로드를 하는 세상에 익숙했기 때문에, 과연 지금의 NFT의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모르겠다. 만약 우클릭 세상에 살지 않았다면, NFT를 오히려 쉽게 받아들였을까.
어쨌든 그 사이 NFT는 트렌드가 되어버렸고, 엔터테인먼트, 미술, 게임 등 IP를 가진 모든 비즈니스와 결합하며 힘을 발휘하고 있다.사람은 자기가 가진 편견이 무너질 때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데, 내가 요즘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