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시작한 BNPL(Buy Now Pay Later) 열풍은 작년 미국, 유럽 등 각국을 강타하였다. 스타트업이 시작한 '먼저 사고 나중에 결제한다'는 이 컨셉은 코로나19를 만나 더욱 사람들의 사재기를 부추겼다. 그러자 비자, 마스터카드와 같은 카드업계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BNPL서비스를 너도나도 제공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도 '소액후불결제'를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해 허용하였으며, 네이버와 카카오페이에서 현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혹시 BNPL에 대해 알고 싶다면 <뉴 노멀이 된 '소액 후불결제'>, <anti-BNPL 캠페인의 배경> 참고
온라인 쇼핑의 결제옵션으로 시작한 BNPL은 이제 오프라인 쇼핑까지 확대되고 있다. 2020년 이미 Afterpay는 매장내 결제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Klarna도 룰루레몬, 셰포라, 포레버21과 같은 소매업체와 협력하여 BNPL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BNPL서비스를 가장 일찍 시작한 호주의 경우 쇼핑객의 60%가 매장에서도 이 서비스를 사용한다고 하니, 현재 미국의 현재 47%수준에서 더욱 성장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겠다.
비규제 영역
지금까지 BNPL서비스는 규제되지 않는 산업이었다. 또한 신용조사기관에도 보고되지 않는 그림자금융이었다. 신용점수가 없거나 신용점수가 안 좋은 이들이 BNPL서비스를 사용해도 그들의 신용점수는 BNPL 지불 내역에 영향을 받지도, 영향을 주지도 않았다.
신용조사기관의 발표
그러나 이제 미국 3대 신용조사기관 Equifax, Experian 및 TransUnion이 신용 보고서에 소비자의 BNPL 대출에 관한 정보를 포함하겠다고 발표했다. Experian과 TransUnion은 개인의 신용점수에는 반영하지 않되, 별도로 이 정보를 신용보고서에만 포함할 예정이다. 반면 Equifax는 소비자가 핵심 신용 점수 계산에 BNPL대출을 포함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Equifax는 작년말 보도자료를 통해 BNPL을 새로운 "비즈니스 산업 코드"로 인식한다고 밝혔다. 지불 내역을 포함하여 BNPL 거래 라인을 분류하고, 고객정보를 통합하여 새로운 금융서비스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위협이자 기회
BNPL은 엄연히 단기 할부 대출로 발전하여, 신용카드와 같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는 기존 금융회사를 위협하는 요소이면서 동시에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맥킨지 소비자 대출 풀 데이터에 따르면 BNPL 제공업체로 인해 지금까지 은행은 연간 80~100억 달러의 수익을 잃었다. 또한 C+R Research에 따르면 BNPL사용자의 38%가 BNPL이 신용카드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한다.
금융회사도 준비
Square가 Afterpay를, PayPal이 Paidy를 인수한 것은 BNPL생태계 구축을 위해서였다. 최근 마스터카드가 파트너쉽을 확대하여 BNPL서비스를 더욱 확장하기로 밝힌 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사항으로 보인다.
은행 또한 BNPL 제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왔다.PYMNTS 연구에 따르면 현재 BNPL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70%는 핀테크가 제공하는 것보다 은행의 지불계획 옵션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또한 BNPL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은행의 BNPL서비스에는 관심이 있다고 하니, 은행이 만약 BNPL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그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행동양식의 변화
BNPL업체 역시 가만히 있을리 없다. 기존 금융회사가 BNPL서비스를 제공함에 따라 BNPL업체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최근 Afterpay가 음식배달 중개서비스를 하는 DoorDash와 제휴한 것도 공급업체 확대를 통해 서비스의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DoorDash 평균 주문금액이 $37.28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분할하여 지불하는 것이 좋은 소비습관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비자의 행동양식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즉시 값을 치루는 것이 디폴트가 아닌, 나중에 값을 치루는 것이 디폴트가 되는 세상. 필요한 것이 아닌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내주는 세상이다.
신용, 우리 사회의 모든 것
과거 대출은 각 개인의 신용을 수치화해서 제공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수치화되지 않는 신용까지 데이터화되었고, 인플루언서를 위한 대출상품을 제공하는 특화 은행이 나오기까지 한다. 또한 대학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P2P대출 네트워크를 구축한 SOFI는 핀테크에서 이제 은행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신용이 돈이 되는 사회에 마땅히 시대적 변화를 읽은 혁신적 서비스라 생각했다.
그런데 BNPL 역시 혁신적인 서비스일까? 소비자는 개인의 신용내역과 상관없이 소액을 분할하여 지불하고, 대신 판매자가 신용카드보다 높은 수수료를 내는 구조다. 판매자가 높은 수수료를 분담하는 이유는 MZ고객 확보와 매출 증대 때문이다. 소비자의 결제 편의성 증진보다는 신용 여력이 되지 않는 소비자의 과소비를조장한다고 비난받는 이유다. 현재로서는 혁신적인 서비스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이 서비스도 사용하다보면 소비자의 데이터는 쌓인다. 결국 신용 데이터가 되는 셈이다. 잘 활용한다면 그것이 개인의 신용점수를 높여주기도 하겠지만, 연체가 될 경우 신용점수를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대출기관이 개인의 신용도를 판단할 때 BNPL을 하나의 지표로 고려하는 날이 성큼 다가왔다. 이제 BNPL은 신용내역과 무관하지 않다.
신용 데이터, 어떻게 활용하느냐
니시노 아키히로의 <혁명의 팡파르>에서 현대사회의 돈과 신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는 "신용을 얻고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자신의 신용을 돈으로 바꾸는" 생활 방식이 당연해지고 있다.
그는 그림책을 선판매하는 도구로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하면서, '크라우드펀딩은 신용을 돈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라고 말한다. BNPL 역시 신용을 얻고 필요할 때 활용하는 방식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에서 물건을 판다면 당연히 현대인의 움직임을 읽어야만 한다.
반면 무수히 많은 소매업체는 앞으로 모두 BNPL을 도입할 지 모른다. 현대인의 결제습관에 BNPL이 디폴트가 된다면, 판매자 입장에서는 높은 수수료를 내더라도 매출을 올리는 것이 더 우선일테니 말이다.
신용에 관한 족적
우리는 이미 신용에 관한 많은 데이터를 남기고 있다. 어떻게 하면 신용을 더 얻을 수 있을지, 신용을 활용하여 돈으로 바꿀 수 있을지, 이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있다. BNPL 역시 지금 당장 소비할 수 있는 편의성이 아닌, 이를 활용해서 신용데이터를 쌓고 내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핀테크와 금융회사 역시 이러한 데이터를 읽어낼 수 있다면, 변화하는 시대에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상의 돈의 흐름 뿐만 아니라, 개인이 온라인에 남기는 수많은 족적은 모두 신용 데이터가 될 수 있다. 과거부터 해왔던 관행으로만 신용을 평가하기에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현대인의 움직임을 읽어야하는 것은 비단 물건을 파는 회사뿐 아니라,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이며 이들이 더 시급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