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이집에 돌쟁이 때부터 보내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다양한 행사들이 존재했을 텐데 19년 12월부터 보낸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 세계가 코로나로 뒤엉켜버렸다.
코로나 시대 4-5년을 보내는 동안, 행사는 사실상 사라졌다.
근처 키즈카페 같은데라도 다녀오면 다행이었고 숲체험이라도 갈 수 있으면 다행이었고 생각보다 많은 걸 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일상이 주는 소중함과 행복을 깨닫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던 거 같다.
그러다 재작년쯤이었을까 어린이집에서 처음 운동회를 한다고 했었는데, 아빠는 대전으로 떠나 주말부부 중이었고 그 사이 아이들은 자주 아파왔다.
그래서 운동회를 앞두고 입원하느라 결국 첫 운동회를 그렇게 흘려보냈다.
이사를 자주 하는 통에 생각보다 행사 참여를 오롯이 다 해보기란 쉽지 않다는 걸 느껴왔다.
어느덧 첫째 아이는 내년이면 초등학생.
그전에 꼭 운동회라는 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남편에게도 시간 꼭 비우라고 했다.
우리 다섯 식구 꼭 필히 참석해야 한다고
그렇게 우리 다섯 식구는 운동회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아이들도 설레었겠지만 부모인 나조차도 너무 설레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되고 처음 참석해 보는 운동회
사뭇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모두 특별한 추억이 되길 바랐다.
분명 듣기로는 어린이집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부모가 참여해야 하는 경기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역시나!
첫 시작부터 엄마들을 불러내기 시작한다.
마음속으로는 ‘한두 경기만 참여하자’ 했지만, 어느새 나는 거의 모든 경기에 나서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보다 내가 애들한테 등 떠밀려서 혹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우리 첫째가 달리는 걸 좋아하니 계주 참여하라고 했더니,
쭈뼛쭈뼛하는 사이 이미 대다수의 아이들이 자리를 채우는 바람에 우리 첫째는 달려보질 못했다.
그러더니 첫째가 나에게 말한다.
“엄마가 달려줬으면 좋겠어.”
“엄마가 달리기 이겼으면 좋겠어.”
그 한마디가 세상 무거운 내 엉덩이를 가볍게 털고 일어나게 했다.
“엄마가 그러면 달리기 잘 못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볼게?”
“이든이가 엄마 잘 봐줘야 돼? 움직이지 말고 엄마 뛰는 거 잘 봐야 돼”
그렇게 나는 엄마대표 계주선수로 뛰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는 달리기 계주도 해본 적 없던 내가 엄마가 되어서야 다시 계주를 뛴다는 게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엄마가 되면 모든 게 끝나는 건 줄 알았는데, 포기해야 하는 것만 생각이 났는데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또 뛸 수 있다는 생각 하니 설레었던 것 같다.
엄마이기 때문에 무언가 더 잘 해내면 더 멋진 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요즘은 더 드는 것 같다.
내가 뛰었던 순간에도 죽을힘을 다해 뛰어서 결국 내가 이겼고,
우리 팀이 이겨서 엄마계주는 우리 팀이 이겼다.
상품으로 계란한판을 받아서 오니 우리 첫째 아이가 나에게 말한다.
“엄마 진짜 잘했어. 엄마 최고야. 엄마 잘 뛰어. 엄마 이겨서 계란 한 판 받아온 거야? 이야~ 엄마 진짜 멋지다. “라고 말하는 첫째
아마 자기가 할 수 있는 칭찬은 죄다 끌어모아 쏟아붓는 것 같았다.
내가 만약 거절 하고 뛰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에게 이런 기쁨은 주지 못했겠지?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은 게 바로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엄마라도 할 수 있다
엄마여서 할 수 있다
엄마여도 괜찮다
엄마라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