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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un 26. 2023

나의 지옥을 보여주고 싶진 않지만 알아차려 주었으면 해

괜찮은 척한다고 해서 진짜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아 줘

동생은 재활의학과 전문의, 동생의 아내는 소아과 전문의다. 똘이의 문제는 재활의학과나 소아과 쪽보단 소아정신과 쪽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때때로 동생네 부부에게 조언을 구한다.


6월 말에 초진이 예정된 대학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님은 내 동생의 한 다리 건넌 지인이다. 초진 전에 똘이를 좀 잘 봐주십사 미리 부탁하려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근황토크를 하다가 오늘의 본론인, ‘똘이의 초진 날,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대화의 마무리 즈음이었다.


“똘이 카스검사(자폐척도검사) 했는데.. 자스(자폐스펙트럼의 줄임말)로 결과가 나올 것 같아. 지능도 경계선이래.”

“아이고.. 어쩌냐.”

“만 6세가 되면 약물치료 시작하자는데 어쩌면 조금 더 일찍 약을 먹여야 할지도 모르겠어. 부작용이 너무 걱정돼.”


“그런 부작용은 아-무것도 아니야.”



어째서인지 동생의 저 말에 빈정이 확 상했다. 나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일부러 가볍게 한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뉘앙스였다.


자폐스펙트럼이나 adhd의 증상을 조절하는 약물의 부작용으로는 구토, 식욕감퇴, 식욕폭증, 두통, 어지럼증, 틱, 불면증, 졸림, 무기력함, 감정기복, 우울 등이 있다. 모든 아이들이 겪는 부작용은 아니지만, 약물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겪는다. 약물의 부작용이 자라나는 아이의 성장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투여한다. 그렇기에 최소한 만 6세 이후에 시작하길 권한다.



의사로서 약물의 부작용보다 효능이 훨씬 크니 부작용을 먼저 걱정할 필요 없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설명을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로 압축해서 말해준 것일 지도 모른다. 응급하고 위중한 환자들을 많이 보아왔기에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투여하는 약물도 많다는 걸 알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의 양육태도를 알기에 서운함이 배가 되었다.


어느 부모가 안 그러겠냐 만은, 동생은 ‘아빠’ 치고는 물론이고 ‘요즘 부모’ 치고도 유난히 자식 걱정이 많고 아이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며, 아이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긴다. 아이가 자라며 겪는 크고 작은 이슈를 대할 때(아이가 아프다거나 밥을 안 먹는다거나, 아이가 아파서 밥을 안 먹는다거나 등), 속상해하는 걸 넘어 마음의 병을 얻을까 걱정될 만큼 아파한다. 어떨 때는 ‘의사가 맞나?’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아이가 아파서 입맛을 잃으면, 발달이 느려질까 고민한다거나, 폐렴에 걸리면 천식으로 번질까 봐 걱정을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나쁘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동생은 세상에 다시없을 좋은 아빠다. 다만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본인 스스로를 괴롭히는 경우가 있는 거 같아 종종 안타까웠다.


동생의 그런 성정을 알기에, adhd약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나에게 건넨 첫마디가 “그 정도는 아-무겠도 아니다.”였다는 게 섭섭했다. 그 무심한 말투가 나와 똘이의 아픔을 가볍게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본 가족이라 해도 각자의 가정이 생기고 각자가 지켜야 할 것들이 생기고 나면 결국은 모두가 남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의 지옥을 동생이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여기고 털어버리려 했다.


'그래도 어떻게 저렇게 남보다 못하게 말하지?'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왠지 모르게 괘씸한 마음까지 드는 걸 보며 나 스스로도 이건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은 어떤 가치나 의도가 포함된 말이 아니다. 동생은 아마 기억도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이 그렇게 기분 나쁜 말인가? 날 무시한 것도 아니고 모욕적인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난 왜 자꾸 그 말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상처 내고 있는 걸까?


내가 모르는 어느 정신과 의사가 자폐나 adhd 치료에 쓰는 약물의 부작용에 대해 아무리 가볍게 말한들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다.


 ‘의학적 지식을 충분히 갖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이들의 사소한 아픔에는 그리도 깊이 아파하던 동생이 너무 다른 온도로 조카의 (지속적이고 심각한) 아픔을 대하는 것이 섭섭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 자기 자식 일에 약해지는 건 본능적인 거다. 동생이 의사이든 아니든 자기 자식 일에는 호들갑을 떨 수 있는 문제다. 당연히도 조카는 자식이 아니므로, 조카가 정신질환(너무 아픈 단어다ㅠ쓰고도 다시 한번 상처받는다) 치료제를 먹는다는 것에 덤덤한 것이 잘못은 아니다.


아마 내가 동생에게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거나, 말하는 도중에 조금 흐느끼기라도 했다면, 동생은 특유의 다정함으로, 약물치료 예후가 좋은 자폐스펙트럼 환우의 사례를 들어가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을 것이다. 남 얘기 하듯 덤덤하게 똘이의 상태를 얘기하는 내 말투 때문에 동생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아서가 아니라, 굳이 동생에게 나의 지옥을 내보이고 싶지 않아서 덤덤한 척했던 거다. 세상 어떤 엄마가 자기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으로 진단이 나왔고, 앞으로 부작용을 감수한 약물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며 괜찮을 수 있겠나?


위로받고 싶었더라면 처음부터 감정을 좀 드러내었으면 좋았을 텐데. 강한 척해놓고 왜 혼자 상처받는 걸까.


‘의사'인 동생에게 상담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동생'인 의사가, 의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문적인 언어로, 그러나 따뜻하게 내 마음을 안심시켜 주고 어루만져 주길 기대했던 것이다. 가족이기에, 내가 내보이는 것보다 조금은 더 무겁고 사려 깊게 내 아픔을 취급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이

'나의 지옥을 직접 보여주고 싶진 않지만 "내 아무렇지 않음" 속에서 나의 지옥을 알아차려주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걸 알았다.


#

이번 일을 겪으며 확실하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똘이는 이미... 나의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악의 없는 말, 그 어떤 부정적인 단어도 들어있지 않은 담백한 조언에도 상처를 받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는 앞으로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게는 똘이로 인한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이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지옥이 생겨버렸다. 기적처럼 똘이가 낫지 않는 한 그 이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내 마음의 병을 인식하고 있자. 타인의 악의 없는 말에 가시를 드러내지 말자. 나의 피해의식을 다른 사람이 이해해 주길 바라지 말자. 타인이 나를 상처 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처가 나를 다시 상처 입히는 것이다. 섭섭함이 일어도 그걸 타인의 탓이라 여기지 말자. 적개심이 일어도 그게 타인의 악의 때문이라고 단정 짓지 말자.


그리고 들키지 말자. 특히 똘이에게, 똘이에게 만은 들키지 말자




# 왜 똑같은 말도 가족이 하면 상처받을까.


'내가 잘 알고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지금껏 곪아왔던 것들은 언제라도 계기만 있으면 터질 준비를 하고 있기에?



#


2018년이었던가, 9년이었던가? 소위 수도권 집값이 폭등하기 직전, 동생이 결혼하고 1년쯤 되었을 무렵, 그러니까 그가 가난하고 고달픈 레지던트였을 때의 일이다. 난 동생보다 먼저 결혼해서 시댁의 도움으로 서울(핫하지 않은 지역)에 남편명의로 된 작은 아파트를 갖고 있었다.(내가 결혼했을 무렵에는 서울 집값이 이렇게 까지 억억소리나진 않았다.)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동생을 만날 때마다 앞으로 수도권에서 살 예정이라면 영끌해서 집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동생의 병원과 가까운 몇 몇 군데의 아파트를 콕 찍어 추천하기도 했다.


 당시의 동생은, 부동산은 최대한 지켜보고 나중에 사자는 주의였고 사실 관심이 있다 해도 여유가 없기도 했다. 남편이 대출을 있는 대로 끌어서 사야 한다고 지금 안사면 나중엔 더 힘들다고 말해도 동생은 흘려듣는 눈치였다. 나는 동생에게 매형의 말대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두어 번 말하긴 했지만 돈을 보태줄 것이 아닌 이상 부동산 조언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 더 이상 말을 아꼈다.


 불과 2~3년 후, 신랑이 콕 찍었던 그 아파트는 2배 이상 폭등했다.(사실 모든 아파트들이 오르던 시기였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정말로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맹세컨대, 오직 그 마음이었다.) "그때 매형 말을 듣지 그랬냐."라고 두 번, 아니 세 번은 말했던 것 같다. 지나고 나서 알게 된 일이지만, 동생은 나의 그 말에 크게 마음이 상했다고 한다.



아이까지 생긴 동생이 수도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정말로 안쓰러웠다. 이러다 집을 살 기회를 영영 기회를 놓치면 어쩌나 하고 걱정되었다. 동생이 덤덤한 척, 내색 않고 있어서 아직도 위기감을 못 느끼고 있으면 어쩌나 싶었던 것도 같다. 지금 생각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덤덤할 수 있었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동생이 나의 지옥을 몰랐듯, 나도 그의 속에서 끓고 있는 지옥을 몰랐다.


동생은 엄마에게 '누나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지나고 나서 그때 그거 사지 그랬냐는 말은 누가 못 하냐, 집 가진 사람이 집 없는 사람한테 그때 샀어야지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상처되는 말인 줄 아냐'라고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내가 동생을 걱정하고 염려한다고 했던 말이 동생에게는 '집 가진 사람의 무례한 오지랖'이었던 것이다. 나의 경솔함과 무신경함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당장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무례함을 사과했다. '네가 괜찮을 리 없는데 괜찮은 척해서 괜찮은 줄 알았었다고. 정말로 미안하다고. 다시는 너에게 오지랖을 떨지 않겠다'라고 했다. 동생은 (할 말이 많았을 테지만) 조용히 사과를 받아주며 괜찮다고 말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그때가 떠올랐다. 당시 나의 말실수에 비하면 동생의 말은 실수라고 이름 붙일 것도 없을 만큼 사소하다. 나의 말은 '실언'이었고, 동생의 말은 '조언'이니 엄밀히 말하면 비교대상도 아니다.


다만 드는 생각은, 당시의 내가 '조금만 생각해 봐도 괜찮을 리 없는 일을, 동생의 덤덤한 태도만 보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듯, 동생도 마찬가지였으리란 것이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나 역시도 했던 실수였다.


내 무례함도 용서해 준 동생이니, 그의 작은 무심함은 지나가는 바람으로 털어버리자.



# 손주자랑만 돈 내고 할 것이 아니라, 오지랖도 돈 내고 부려야 한다. 진짜.



# 이건 여담인데...


교사의 객관적인 의견이 듣고 싶다며 내게 아이의 학교생활을 상담해 온 지인들이 가끔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었던가?


지금 와서 깨닫는 사실은, 그들 역시도 '교사'인 지인이 아니라 '지인'인 교사에게 상담을 요청했던 것 같다.


내가 ‘의사'인 동생에게 상담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동생'인 의사가, 의사의 언어로 내 마음을 안심시켜 주길 기대했듯, 그들 역시도 그랬으리라.

‘교사의 시각이나 입장을 알고 싶다.’ 던 말이 사실은  ‘지인'인 교사가 교사의 언어로 공감과 위로를 해주길 바란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역시, 나의 좌우명을 다시금 되새긴다.


겪어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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