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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ul 01. 2023

다른 누가 아닌, 나를 위해 좋은 사람 되기

나를 지키는 방법

십몇 년 전, 그러니까 내가 3년 차 새내기 교사이던 시절, 처음으로 맡았던 6학년, 첫 번째로 졸업시킨 제자 한 명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 10년도 넘게 지난 일인데, 아직도 생생한 걸 보면 나에게도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한 꼭지였음이 분명하다.



 당시의 나는 아이들에게 내 온 마음을 쏟았고 아이들의 모범이 되려고 노력했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라 ‘좋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생님이 되고자 애썼다. 바른말을 쓰고 예의 바른 행동을 하는 ‘교과서 적인 모범’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통해서 ‘삶의 한 방식’을 관찰할 수 있길 바랐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단다.’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 1년은 보람되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 본받을 만한 사람이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내 그릇보다 큰 사람처럼 행동하려니 몸도 마음도 힘들 때가 많았다. 처음엔 내가 설정한 ‘이상적인 어른으로서의 나’와 ‘게으르고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진짜 나’ 사이의 괴리 때문에 몸도 마음도 고단했다. 지치고 버거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이 두 모습이 내 안에서 좋은 방향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느꼈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나를 껍데기뿐 아니라 내면까지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마법 같은 경험이었다.

 


 온 마음을 쏟은 아이들이 졸업하던 날, 마지막 사랑의 인사를 전하며 그 애들이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길 빌었다. 보람과 애틋함, 아쉬움..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지만, 가장 나를 많이 지배했던 감정은 일종의 해방감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받는다는 건, 그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누군가에게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이제 끝났구나, 이제 좀 편해지겠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다.



 고백하자면, 난 그 이후론 그렇게 열정을 쏟지 못했다. 우연스럽게도 그 뒤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더더욱 반 아이들은 나의 우선순위에서 멀어졌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내 도리만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에 써야 할 에너지를 남기기 위해 학교에서 적당히 에너지를 배분하여 쓰는 요령도 터득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도, 내가 상처를 받지도 않는 적정선을 지키며 학급을 운영했다. 아무런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하루에 감사하며, 꼭 가르쳐야 할 내용을 성심성의껏 가르치고,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엔 개입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해도 학급은 잘(오히려 더 잘) 굴러갔다.



 그렇게 일하니 에너지도 덜 들고 스트레스도 덜 받았다. 돌봐야 할 내 진짜 아이들이 있고, 퇴근 후에도 이어가야 할 내 몫의 노동이 있으니, 혼자일 때처럼 아이들에게 모든 걸 쏟을 순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가도 그 시절의 뜨거운 마음, 서로를 아끼던 애틋한 기억, 20명 넘는 아이들이 내뿜는 각각의 빛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순간의 마법 같은 경험은 여전히 내 안에서 휘발되지 않는 강렬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교직생활을 하며 일에 지치고 사람에게 상처받을 때마다 그 기억들이 방파제처럼 나를 지켜준다.




 엊그제 편지를 보내온 J는, 그 기억 속의 한 아이다. 내가 넘치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하던 시절, 6학년 담임으로서 처음으로 졸업시킨 제자였다. 성실하고 다감한 남자아이였다. 경청과 역지사지가 몸에 밴 친구였다. 진심으로 대해주면 자신 또한 진심으로 보답해 주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자기가 이제 성인이 되었다고, 그때 참 커 보였던 선생님이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나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12년 간의 학창 시절 중에 나는 가장 특별하고 고마운 선생님이었다고, 그 시절 내가 했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의 학창 시절 내내 좋은 양분이 되었다고, 나 덕분에 사춘기를 잘 넘기고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굳이 내가 아니었어도 충분히 바르게 컸을 아이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마웠다.



“선생님, 저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순간마다 선생님이라면 이때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선생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를 생각했어요.”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눈물이 났다. 내가 누군가에게 남긴 1년의 기억이 그 사람에게 생각의 지표가 되었다는 것. 세상에 그 보다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




첫 제자들이 졸업하던 날 아이들이 준 편지와 학부모님들의 감사 인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 덕분에 사춘기 딸아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하는 학부모님도 계셨고, 나 덕분에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아이도 있었다. 하나같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들은 여전히 날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잊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시절의 기억을 아직까지도 갖고 있고, 그 기억이 지금도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기한 일이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타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 분명하다. 그때 내가 받은 감사의 인사들 뿐 아니라 내가 쏟은 마음의 기억까지도 아직도 내 핏속을 흐르며 나의 자존감을 구성하는 필수 영양소가 되어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결국 나 스스로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게끔 한다.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는 이유들을 하나둘씩 쌓아 가다 보면 그것이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결론은 좋은 사람이 되자고.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만만하게 보이거나 손해를 보는 일이 아니라, 나를 지켜내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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