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딩 Jun 20. 2023

아들과 제자에게 가르치고픈 3가지

단단한 마음, 사유하는 힘 그리고 너그러운 시선

K야, 네가 벌써 00살이라니... 놀랍구나. 시간이 빠르다는 말보다, 너의 푸르른 젊음이 너무 아름답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구나. 어제 너의 편지 잘 받았어. 네가 요즘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 중인지 짐작이 가더라.


선생님과 제자라는, 고정된 역할관계 때문인지 자꾸 너에게 격려나 조언을 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구나. 미래를 결정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것을 이루는 것은 더 쉽지 않잖니. 고민이 많으리라 예상되는구나. 너는 분명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결정하고, 또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있겠지. 네가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네 목표가 꼭 이뤄지길 바랄게.



너는 내가 롤 모델이라고 했지만, 미래를 준비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너에게 있어 난 그다지 훌륭한 모델은 아닐 것 같구나. 사실 나는 내 목표나 꿈을 이룬 적이 없단다. 다만 직업으로써 교사를 택했을 뿐이지. 내 꿈이나 목표가 교사는 아니었어. 선생님은 언제나, ‘글로써 타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단다. 하지만 재능도 부족했고, 막연한 꿈을 오래도록 붙들고 있을 시간적·경제적 여유도 없었고, 설령 글 쓰는 사람이 된다 해도 먹고살기도 막막했지. 그래서 교사가 된 거야. 물론 내 꿈이 교사가 아니었던 것과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건 별개의 문제란다. 선생님은 꿈을 이루지 못해 차선의 직업을 택한 평범한 사람이야. 네가 보기에 능력 있어 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은, 그냥 그저 그런 보통 사람일 뿐이야. 꿈을 꾸기도 하고, 꿈을 포기하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꿈을 이루고, 어쩌면 아무리 노력해도 꿈을 못 이루기도 하는...



그래도 선생님은 아직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단다. 지치면 잠깐 쉬어가기도 하고, 다시 열정이 생기면 키보드 앞에 앉곤 해. 그래서 말인데, 선생님의 긴~ 답장에 심적 부담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 선생님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 내 긴 편지만큼 긴 답장을 기대하고 쓰는 게 아니란다. 네가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읽어주면 그걸로 족해.



세상이 정말 크게 변하는 것 같구나. 인간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체한다는데, 미래 세대는 아마 인간들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만나게 될 제자들과 나의 아들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도 고민이 많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가장 중요한 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너희를 가르칠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나는 내 아들들에게 딱 세 가지만 물려주고 싶고, 제자들에게도 딱 세 가지만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한단다.



그건 바로 ‘단단한 마음’, ‘사유하는 힘’ 그리고 ‘너그러운 시선’이야. 어린 네 눈에, 내가 뭔가 지혜롭고 특별해 보였다면, 그건 아마 나의 이러한 가치관 때문일 거야.



‘단단한 마음’이란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 최선을 다한 뒤 실패한다 해도 그로 인한 좌절과 절망까지도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시킨 후 다시 일어서는 겸허함과 굳건함, 상처받더라도 다시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용기, 세상이 나를 뭐라 부르든 나만은 나의 가치를 믿어줄 수 있는 긍지 같은 것이야.


‘사유하는 힘’이란 거짓과 사실을 구분하고 사실 속에서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 나와 다른 생각을 존중하면서도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고, 세상과 타인을 향해 귀를 열어두면서도 외부의 자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신념을 갖는 것, 자신이 언제든 틀릴 수 있음을 전제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는 신중함과 성실,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는 즉시 생각의 항로를 수정할 수 있는 유연함과 단호함 같은 거란다.



마지막으로 ‘너그러운 시선’은 내가 직접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존중과 예의를 갖추는 것, 나의 세상이 세계의 전부가 아님을 알고, 나의 눈은 언제나 ‘선입견’이라는 안경을 쓰고 있음을 인정하며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타인의 잘못을 탓할 때, 그의 ‘과오’가 아니라 ‘과거’를 먼저 보고자 하는 노력 같은 것이란다.




‘단단한 마음’은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고, ‘사유하는 힘’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기를 수 있을 것 같구나. ‘너그러운 시선’은... 음 글쎄, 이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 선생님도 여전히 놓치고 실수하고 나서야 ‘아차!’ 한단다. 좋은 말로 그럴싸한 포장을 하는 것보다 그냥 ‘경청’에서부터 함께 출발해 보자고만 말해둘게.



이 세 가지를 기억하고 실천한다면, 너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세상에서든 너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말이 너무 길어졌구나. 혹시나 지겨운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같았다면 미안하다. 나도 요즘 내가 점점 꼰대가 되어간다고 느낀단다.ㅎㅎ


요즘은 ‘노오오오오력’이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 시대인 것 같아. 혹시라도 네가 상처받거나 좌절하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이렇게 긴 잔소리를 해 보았어.



다시 한번, 네가 네 꿈을 이루길 진심으로 응원할게. 넌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아이니, 최선을 다하라는 말보단, 네가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 정말로 ‘최선의 방법’이 맞는지 늘 점검하라고 말하고 싶구나. 그리고,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실패하더라도 괜찮단다. 식상한 말이지만, 사람은 언제나 성공보다는 실패를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법이야.



최선을 다한 뒤에 실패를 경험하고, 그것을 털고 다시 일어나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인생의 파고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돼. 네가 성공한다면 너는 자긍심과 성취감을 얻을 것이고 많은 축하를 받겠지. 혹여 실패한다면 실망하고 좌절하겠지만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난 뒤에 얻게 될 ‘겸허함’과 같은 마음의 근육은 네 인생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될 거란다. 그리고 네 옆에서 네가 잘 되길 바라는 무수한 사람들의 사랑 또한 느끼게 될 거야.


전자와 후자 중 무엇을 얻든 성공이니, 아무런 걱정 말고 분연히 일어나 도전하렴.



나도 네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선생님으로 남을 수 있게 계속 노력할게.



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야.

너를 언제나 지지하고 응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장애등록을 어쩌면 좋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