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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Oct 06. 2023

마음이 무너진 날

느린 것도 알고 부족한 것도 알지만...

몇 달 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모처럼 날씨도 화창했고, 바람도 선선했다. 똘이와 셋째 중 누군가 하나는 새벽에 꼭 나를 깨우는데 그날은 신기하게 아무도 새벽에 울지 않았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해서 아이가 한 둘씩 있다. 다들 맞벌이라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모처럼 시간이 맞았던 주말, 키즈카페를 대관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기로 했다. 


우리 랜선 친구인 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고, 어느새 훌쩍 커버린 각자의 아이들을 소개했다. 대관 키카라 아이들을 굳이 관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안심하고 첫째와 똘이를 풀어놓았다. 친구들과 티타임을 즐기려 할 찰나,


“우엥~”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이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난 자동반사적으로 똘이를 찾았다. 역시나, 똘이 옆에 있던 아이가 울고 있었다.


“똘이가 뭐 잘못했어?”


자동반사적으로 그렇게 묻고 말았다. 친구들은 아마도 의아해했으리라. 역시나 똘이의 잘못이 맞았다.


똘이에게 장난감을 뺏기고 밀침을 당한 아이가 자기 엄마 앞에서 똘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서럽게 울었다. “OO아, 미안해. 똘이 형아가 실수했네. 똘이도 미안하다고 해."


친구에게도 사과를 했다. 

“미안해.. 똘이가 요즘 불안이랑 충동성이 많이 올라왔어. 조심시킬게.”

똘이에 대해 대충 알고 있던 그 친구는 웃으면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말했다. 등에서 살짝 식은땀이 나려 했다. 



그 뒤 5~10분 간격으로 어딘가에서 자꾸만 울음이 터졌다. 모두 똘이의 과잉행동 때문이었다. 나는 혼비백산해서 달려가서 똘이에게 주의를 주고, 친구와 친구의 아이에게 사과하길 반복했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의 대화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친구들의 말소리는 만화 속 활자처럼 뱅글뱅글 내 머리 위로 원을 그리며 돌기만 했다. 나는 똘이에게만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미안해.. 변명 같지만.. 키즈카페 자주 가도 평소엔 이러지 않는데.. 똘이가 오늘 왜 이러나 모르겠어. 각성이 너무 올라갔나 봐.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데리고 오는 건데...”


친구들은 괜찮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했지만 괜찮지가 않았다. 화창한 주말 오후, 시끄러운 도시의 5층짜리 건물에서 내 발이 디딘 곳만 땅이 꺼지며 우주의 블랙홀로 빨려들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똘이가 게임을 하고 있는 두 아이 사이를 비집고 끼어들었다. 아이들이 비켜주지 않자 손바닥으로 친구의 머리를 때리던 찰나였다. 


“똘이 그만해!!”


나는 똘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도 똘이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똘이는 비명에 가까운 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또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했음을 알았다.


“똘이가 또 잘못했어? 똘이는 또 안전하게 놀지 못했어? 똘이는 이제 집에 가야 해?”


똘이는 혼나는 게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이,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 요즘 똘이는 자기 조절이 안되는 걸 불안해한다. 충동성이 올라오면서 불안이 더 늘었다. 아니 불안이 올라오면서 충동성이 늘어난 건가.. 뭐가 먼저인지도 모르겠다. 


행동이 먼저 나가서 늘 괴로워한다. 6살짜리가 벌써부터 자기 자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그 어린 꼬맹이가 미워하려 한다.


주저앉아 똘이를 껴안고 울고 싶었다. 아니 똘이의 엉덩이를 팡팡 때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표정관리를 하려고 애썼지만, 나는 누가 봐도 굳고 창백한 얼굴이었을 거다.


“미안해....”

“어린이집 가서도 이러면 전화 오고 막 그러지 않아?”


친구가 물었다. 

똘이에게 자신의 아이가 자꾸 밀침을 당해 속상했던 친구 나름의, 나를 배려한 최소한의 항의였을 것이다.


“맞아... 그래서 요즘 힘들어.”

“정말 힘들겠다.”

“미안해.”

“우리야 하루지만.. 넌 힘들어서 어떻게 사니...”


너무 창피하고 너무 미안했다. 똘이가 밉고 똘이가 불쌍했다.


내가 얼마나 불쌍해 보일까. 지난 몇 년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즐겁고 행복해 보였을 나의 모든 순간들이 다 연극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바로 며칠 전, 단톡방에서 영유와 놀이학교, 일반유치원 중 어디를 보낼까 고민하던 친구에게 ‘초등교사’가 본 영유, 놀이학교, 일유의 차이에 대해 잘난 척하며 떠들어 댔던 것이 생각났다. 


자기 아이 하나 간수 못하면서 남의 아이 기관 선택에 오지랖은 왜 떨었을까. 내가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얘들아 미안해. 나 먼저 갈게.”


친구들은 더 있다가 가라고 말렸지만 조금이라도 더 머물렀다간 공황장애가 올 것 같았다. 각성이 올라 날뛰는 똘이와 안 가겠다고 엉덩이를 뒤로 빼고 버티는 첫째를 한 손에 하나씩 붙들고 질질 끌어 건물을 나왔다. 악다구니를 쓰는 아이들을 억척스럽게 끌고 나오는 내 모습이 초라하고 비참했다. 


두 아이를 끌고 버스를 탈 자신이 없어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똘이는 그 와중에도 내 팔을 이리저리 끌며 빙빙 돌았다. 팔이 빠질 것 같았다. 똘이가 자꾸 도로로 튀어 나가려 해서 온몸에 힘을 주고 끌려가지 않으려 애썼다. 도로로 끌려가지 않으려 애썼지만, 한편으론 인도에서 그대로 도로로, 쌩쌩 달리는 차 앞으로 추락할 것 같은, 어쩌면 그래도 상관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


택시 안에서 소리를 죽여 끅끅 거리며 울었다. 첫째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나를 달래주려 애썼다.


“엄마, 왜 자꾸 울어?”

“ㅇㅇ야, 똘이는 아무래도.. 이제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아.”

"왜?"

"엄마도 모르겠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아내는 나를 첫째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만 6세까지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난 이제 알았다.

똘이는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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