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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Oct 06. 2023

아빌리파이냐, 메디키넷이냐

어렵고도 어려운 약물의 세계

6월 한 달 내내,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흐르는 우울한 시기를 겪었다.

나의 무게중심이 휘청이니 덩달아 남편도 어깨가 축 처지고 자꾸 골골댄다. 왠지 모르게 꼬질꼬질해진 첫째는 걸핏하면 내 눈치를 보며 “엄마 또 슬퍼?” 또는 “엄마 이제 안 슬퍼?”하고 묻는다.



똘이는 조기 약물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병원 두 군데에서 상담을 받았다. 첫 번째 병원에서는 아빌리파이(불안을 낮춰주는 약)를 처방했고, 두 번째 병원에서는 메디키넷(주의집중력을 올려주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충동적 행동의 원인이 불안이냐, 산만함이냐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처방이 갈린 것 같다. 불안을 잡아 충동성을 낮추려는 처방이 첫 번째 의사의 처방이고, 주의집중력과 상황 판단력을 끌어올려 충동성을 낮추려는 처방이 두 번째 의사의 처방 같다. 



아빌리파이는 불안을 낮춰주는 약답게 신체대사를 전반적으로 천천히 흐르게 한다. 따라서 졸음, 무기력증이 생길 수 있고, 식욕이 늘고 살이 찔 수 있다. 메디키넷은 주의집중력을 끌어올려주는, 일종의 각성효과를 가진 약인 것 같다. 불면, 불안, 강박, 짜증, 틱, 식욕부진이 주요 부작용이라 한다. 


‘충동성’이라는 문제행동을 잡기 위한 처방인데, 두 약은 완전히 결이 다르다. 물론 두 병원 모두 부작용이 생기거나 효과가 미미할 경우, 두 약을 함께 쓰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난 결국 아빌리파이를 먼저 시작할 것인가, 메디키넷을 먼저 시작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부작용을 포함해서 약물에 적응해야 하는 주체는 똘이지만, 나 또한 그 과정을 함께 감내해야 한다. 똘이의 표정과 행동에서 똘이가 어떤 부작용을 겪고 있는지 읽어 내야 하고, 똘이가 잠을 못 자면 나 또한 함께 보초를 서야 한다. 짜증이나 우울이 올라오면 그 감정을 받아내는 것 역시 내 몫일 것이다. 


두 약의 부작용을 놓고 비교해 보면, 아빌리파이의 부작용이 압도적으로 적다. 유아기에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다수의 아이들이 아빌리파이를 먼저 먹는다고 한다. 아빌리파이는 잠이 늘고 살이 찌는 것 외엔 큰 부작용이 없다. 졸리면 재우면 되고, 살이 찌면... 그래 그건 문제지만, 똘이는 어차피 자신이 살이 쪘는지 어떤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응당 아빌리파이를 선택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아빌리파이를 먹이기 싫다. 자꾸 메디키넷에 더 마음이 갔다. 아이가 불면, 두통, 복통, 식욕저하를 겪을 수도 있고 불안과 짜증, 강박이 더 심해질 수 있으며, 틱이 생길 수도 있다는데도 아빌리파이보다 메디키넷을 차라리 먹이고 싶다니!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그래, 솔직히 말한다. 나는 다른 어떤 부작용보다도 똘이가 살이 찔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똘이는 비교적(어디까지나 비교적) 외모가 괜찮은 편이다.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똘이의 외모가 선생님이나 친구, 이웃들로 하여금 아이에게 너그러워지게 하는 면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똘이는 식탐이 많은 편이다. 피자, 햄버거, 치킨 등 고열량 음식을 좋아하고 야채는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조금만 관리에 소홀하면 금방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불과 2~3킬로만 쪄도 얼굴의 느낌이 확 변한다. 살이 빠졌을 땐 똘망똘망하니 귀여운 꼬마 아이 같은데, 살이 찌면 얼굴살부터 붙으면서 갑자기 아저씨 얼굴이 되어버린다. 대근육 발달이 더디고 시야가 좁아 멧돼지처럼 우당탕탕 뛰다가 제 발에 걸려 제가 넘어지는 아이다. 살이 찌게 되면 움직임은 더 둔해지고 친구들이 느끼는 비호감도는 더 올라갈지도 모른다. 



자폐스펙트럼에 ADHD까지 가진 똘이가 뚱뚱하기까지 한 아이가 되어버리면, 나 외에 누가 이 아이를 예쁘게 바라봐 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울고 싶었다. 무엇보다 똘이가 살찌는 건 막고 싶었다.


먹성 좋은 아이기에 식탐이 폭발할까 봐 두렵다. 먹고 싶어 하는 아이를 못 먹게 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만 해도 괴롭다. 주변으로부터 “똘이 요즘 왜 이렇게 살이 쪘어?”라는 말을 듣게 되는 상황이 싫다. 가뜩이나 친구가 없는 똘이가 혹여라도 외모 콤플렉스를 갖게 될까 봐 걱정된다.


맞다. 이건 다 변명이다. 사실은 내 마음의 문제다. 나는 아이가 겪을지 모르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보다 아이의 살찐 모습을 봐야 하는 나의 괴로움이 더 우선인 못난 엄마다. 



똘이가 어떤 아이이든, 어떤 모습이든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던 그 마음은 위선이고 거짓이었나. 


어떤 약이 똘이에게 맞을지는 먹여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결국은 둘 중 하나를 먼저 먹이게 될 거다. 똘이를 위해서 약을 먹인다고 하면서 어떤 약이 똘이가 적응하기에 수월한 지보다, 내가 더 견디기 힘든 부작용이 무엇인지를 따지고 있다. 직접 약을 먹어야 할 똘이가 아니라 ‘똘이를 지켜봐야 하는 나’에게 맞는 약을 찾고 있다니. 참 못났다. 


나는 똘이를 위해 약물치료를 결심했다. 흔히들 권장하는 만 6세보다 1년 이상 이른 나이에 말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을 위해서도, 친구들을 위해서도 아니고 똘이를 위해서. 그래. 똘이를 위해서 하는 거다. 그 과정에서 내 마음보다 중요한 것은 똘이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다. 무엇이 정말로 똘이를 위하는 길인지, 어떤 약이 더 똘이에게 필요한 약인지, 어떤 약을 먼저 시도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하고 안전한 길일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보자.



1. 원 생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똘이의 문제행동이 무엇인가?

충동성을 조절하지 못해 친구들을 미는 것 


2. 똘이는 일상생활에서 어떤 점을 가장 힘들어하는가?

  ① ‘하면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음에도 자기 조절이 안 되어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고 좌절감을 느끼며 자책하는 것

  ② 언어 수준이 낮아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③ 실패할 것 같으면 불안해서 시도조차 안 하는 것


3. 내가 바라는 약물의 효과는 무엇인가?

  ① 어린이집에서 친구를 밀거나 친구의 장난감을 무너뜨리는 행동을 안 하는 것 

  ② 자신의 과잉행동에 실망하고 자책하는 패턴을 끊는 것

  ③ (선생님의 설명과 친구들의 말을 비롯한) 주변의 자극에 좀 더 눈과 귀를 여는 것


4. 걱정되는 부작용은?

  ① 살이 찌는 것 -> 아빌리파이

  ② 불안이나 강박이 심해지는 것 -> 메디키넷




모르겠다. 똘이는 아직 어리니 똘이의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약물 적응 과정도 쉽지 않을 텐데 시작 전부터 이렇게 끙끙 앓고 있는 내가 답답하다. 





#자폐스펙트럼, #adhd, #불안, #강박, #약물치료, #느린 아이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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