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물치료는 두더지 잡기 같아
#1
똘이의 메디키넷 복용으로 인해 짧게나마 찾아왔던 평화는 4개월 만에 끝이 났다. 걱정하던 부작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약효과가 있는 오전에 어린이집 피드백이 나쁘지 않아서 오후에 부리는 짜증은 그냥 내가 감당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버텨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만 버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메디키넷을 먹은 후, 어린이집의 피드백은 한결 좋아졌다. 착석도 잘 되고 문제행동도 줄었으며, 단체 활동 시 말귀도 잘 알아듣는다고 했다. 다만, 선생님께서도 아이가 가끔 불쑥불쑥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억지로 참으려 노력하는 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메디키넷의 대표적 부작용은 분노발작과 짜증이다. 똘이는 약효가 돌 동안은 부작용으로 인한 예민함과 짜증을 어떻게든 참아냈지만, 약효가 떨어지는 오후가 되면 더 이상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했다.
똘이는 저녁 시간에 때로는 밥그릇을 집어던지고 가족들이 밥 먹는 내내 소리를 질렀다. 실수로 물을 옷에 쏟았다고 울고 실수로 숟가락을 떨어뜨렸다고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괜찮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해도 진정되지 않았다. 장난감 놀이를 할 때는 형이 자기 주변을 스쳐 가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화를 냈다. 산만하지만 밝고 긍정적이었고, 과격하지만 애교 많고 사랑스러웠던 우리 똘이는 메디키넷 복용 후 고슴도치가 된 것 같았다.
어린이집 생활은 단체 생활이니 그곳에서의 문제 행동을 없애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지금도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물을 시작한 후 똘이는 최소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피해를 덜 끼치는(안 끼친다곤 말 못 하겠다)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오후 시간이 되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이 왜 화가 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괴로워서 울부짖곤 했다.
내가 잘 받아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기계가 아니었다.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똘이와 둘이서만 사는 게 아니었다.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고 퇴근한 남편은 저녁에 만이라도 쉬는 시간이 필요했고, 첫째 아이는 유치원에서 하원한 후 아늑한 집에서 일상을 즐기며 따뜻한 엄마의 품에서 쉬고 싶어 했다. 막내는 자꾸만 자기에게 소리를 지르는 똘이를 슬금슬금 피하고 똘이가 다가오기만 해도 움찔움찔했다.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똘이 역시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이유도 모른 채 주체할 수 없는 짜증과 화가 밀려오는 것을 너무 괴로워했다. 똘이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자 우리 가족 모두의 고통이었다.
결국 메디키넷의 부작용을 누르기 위해 또 다른 부작용을 감수하고 약물을 추가해야 했다. 리스페리돈이었다. 검색을 통해 알아본 리스페리돈의 부작용 역시도 메디키넷만큼이나 무시무시했다. 졸림, 코피, 비염, 복통, 분노발작, 식욕 폭발, 비만, 무기력증, 호르몬 이상, 성기능장애....... 감정기복과 짜증을 줄여주기 위한 처방이었다.
리스페리돈을 먹고 일주일쯤 지나니 저녁 무렵 매번 폭발하던 짜증이 조금 줄었다. 나도 살 것 같았고 똘이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다시 기관에서 나왔다. 리스페리돈을 추가한 후부터 똘이는 사소한 이유로 어린이집 단체 활동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미끄럼틀에서 순서가 밀려서, 자신의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앉게 되어서 등 자신의 루틴에 어긋나는 일상이 생기거나 조금이라도 속상한 일이 있으면 모든 활동을 보이콧하고 꼼짝없이 앉아만 있는다고 한다. 그리고 짜증 대신 서러운 울음을 보였다. 친구들을 밀거나 선생님께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진 않았지만, 텅 빈 눈동자를 하고 표정도 없이 모든 활동을 거부한 채 어린이집 구석에 몇 시간씩 앉아있는다고 했다. 활동 거부도 문제지만 바깥놀이를 하거나 강당으로 이동해야 할 때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 선생님이 많이 난감하다고 하셨다.
왜 자폐나 adhd는 증상에 딱 들어맞는 치료제가 없을까... 리스페리돈의 효과로 겨우 한숨 돌리려던 찰나에 이런 피드백을 받으니 또다시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저녁에 찾아오던 짜증이, 땡깡이가 사라지니 오전에 우울이, 설움이, 무기력이가 튀어나왔다.
기관 생활이 우선이니 다시 리스페리돈을 끊어야 할까... 그럼 저녁 시간에 온 가족이 다시 또 똘이에 울부짖음을 감당해야 한다. 똘이 역시도 이유도 모른 채 자기의 마음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분노와 짜증을 감당해야 한다. 똘이는 사랑도 많고 애교도 많고 밝고 긍정적인 아이인데, 메디키넷은 내 아이에게서 산만함과 충동성을 걷어간 대신 ‘똘이다움’을 모두 앗아가 버렸다.
차라리 리스페리돈의 용량을 더 올려 볼까. 약 용량이 적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용량을 올리면 활동거부가 좀 줄어드려나... 그랬다가 이번엔 리스페리돈의 부작용이 튀어나오면 어쩌지? 리스페리돈도 부작용이 없는 약이 아니다. 오히려 메디키넷보다 부작용이 더 큰 약이다. 섣불리 용량을 올리면 언제든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두면 똘이의 기관 생활은 어떻게 되는 거지...?
정답은 무엇일까. 똘이에게 맞는 약은 대체 뭘까? “이 아이에게 맞는 처방은 00입니다.”라고 누군가 속 시원히 알려 주면 좋겠다.
정신과 약물 치료는 두더지 잡기 같다. 약으로 문제행동 하나를 누르면 부작용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다른 증상이 튀어나온다. 그걸 또 새로운 약으로 누르면 전혀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부작용이 나온다.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막막하고 답답하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똘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2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라는 식의, '나는 엄마니까'로 시작하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은.. 사회가 하면, 여자에게 인내와 희생을 강요케 하려는 가스라이팅이고, 여자 스스로가 하면, 슈퍼우먼으로 살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건네는 최면일 뿐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엄마라서 힘을 내는 것이 아니다, 엄마라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모성은 만능 치트키가 아니고 내 인생은 똘이가 전부가 아니므로. 똘이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모성일 수 있지만, 내 모든 노력의 원동력이 모성애인건 아니다.
나는 엄마니까, 엄마이기 때문에 똘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내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힘을 낼 뿐이다. 내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내 운명과 싸우기 위해 힘을 낼 것이다. 지금껏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선택이 정답이 아니라 해도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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