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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un 16. 2023

어쩌면 아스퍼거 증후군일지도 모른다.

똘이의 ABA 선생님은 상담 중에 문득, “똘이가 아스퍼거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스펙트럼의 일종이지만, 자폐스펙트럼에 비해 일반적으로 진단 시기가 늦다. 그 말은, 결정적 시기에 결정적 치료를 못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일종의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이다.(고기능이라고 해서 드라마에서 나오는 천재 자폐 환자를 말하는 건 아니다. 아이큐 80 이상의 자스를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이라고 한다.) 인지와 언어능력은 정상에 가깝지만,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헷갈렸다. 어떤 부모에겐 “아이가 아스퍼거 같아요.”라는 말이 하늘이 무너지는 말이겠지만, 나의 경우, 자폐스펙트럼을 의심하다가 아스퍼거로 최종 진단을 받는 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재 언어도 인지도 사회성도 경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똘이를 최소한 언어나 인지는 정상 범주 언저리라고 평가해 주신 게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자스가 아니라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면 어쩌면 자립은 가능할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가족을 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진단받으면 장애등록을 할 수가 없어 오히려 생활이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인지가 정상이고 자조가 가능하기에 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자로도 선정되기 힘들다. 엄연히 ‘장애’로 분류되는 질환이지만, 군대, 대입, 취업 등에서 장애인 전형이 아닌 일반인 전형에 줄을 서야 한다.



“어머니, 힘내세요. 무너지시라고 드린 얘기가 아니에요. 미리 대비하자고 말씀드린 거예요.”

“그럼요. 알아요.”



아스퍼거 증후군은 눈치가 없고 공감능력이 부족하며 의사소통 기술이 매우 떨어진다. 타인의 반응이 어떻든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며, 상대방이 고통을 호소해도 이에 잘 공감하지 못한다. 제 밥벌이는 가능할 수 있으나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은 힘들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자신이 그런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 느린 아이 카페에는 배우자가 아스퍼거 증후군인 것 같은데 당사자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의사소통이 너무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 왕왕 올라온다.




 똘이가 만약 정말로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면, 나는 똘이에게 그 사실을 밝힐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평생을 모른 채로 살아가는 사람도 이미 많은데) 똘이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모른 척할 것인가. 아스퍼거 증후군은 사실 타인과 깊은 관계만 맺지 않으면 자신이 아스퍼거라는 것을 적당히 숨기고(혹은 본인조차 모른 채) 조금 특이한 사람, 혹은 말 안 통하는 사람 정도의 소리를 들으며 살 수 있다.



고민은 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똘이가 만약 아스퍼거라면 나는 똘이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을 때 그 사실을 꼭 밝힐 것이다. 왜냐하면 똘이가 자신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 상처받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보다, 영문도 모른 채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는 것이 훨씬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스퍼거는 인지와 언어가 평균이상이기 때문에(물론 똘이는 지금은 언어도 인지도 경계다.) 피나는 노력을 하면 자신의 한계점을 어느 정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 ‘피나는 노력’이란 걸 하려면 자기 객관화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똘이가 자기 자신을 ‘멀쩡한 사람’으로 여기며, 타인을 이해하지도 타인에게 이해받지도 못한 채 살아가기보다, 아프고 괴롭더라도 자신을 직시하고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또한, 똘이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지 않길 원한다. 상처를 줄 수밖에 없더라도 자신이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이 힘들어할 때, ‘상처받는 네가 이상하다.’가 아니라, ‘나의 어떤 부분이 너를 힘들게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자신이 질환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면 비록 ‘공감’은 잘 안되어도, 상대방의 마음을 수용하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내 유전적 기질이 소중한 사람을 힘들게 한다면 그건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그래도 그것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편이 똘이에게도 더 좋은 일일 것 같다.



자신의 증상을 알게 되고 나서도 그것을 외면하고 살아갈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 애쓸지는 똘이의 몫이다. 후자를 택하는 아이가 될 수 있게 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키워야겠다. 정말로 똘이가 후자를 택한다면 난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며 무한한 지지와 격려를 보낼 것이다.



똘이가 언젠가 혹시라도 가족을 꾸릴 수 있을까? 가족을 꾸린다 해도 가족에게 상처를 주거나 외면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아니, 그것까진 사치여도 자립이라도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이 생각을 하면 너무 우울해지므로 그저 묻어둔다. 때로는 먼 미래를 보기보다 눈앞만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똘이의 한계를 미리 규정하지 말자.

괜찮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할 수 없더라도 괜찮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행복할 것이다.


혹시라도 행복할 수 없다 해도 괜찮다.

행복할 수 없다 해도 나는 좋은 삶을 살 것이다.


Happy 하지 않아도 Good 할 수는 있다.

그럼 괜찮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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