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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un 16. 2023

자폐스펙트럼과의 첫 대면

“어머니.. 너무 너무 조심스럽지만 혹시 자폐스펙트럼이라고 들어보셨나요?”


3년 전 그날, 그 순간 내 표정은 어땠을까. 

덤덤한 척, 이미 예상했던 일인 척 "역시 그렇군요."라고 말했지만, 30년 가까이 지켜온 자랑스러운 나의 세계가 바닥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전문가의 눈에는 우리 아이는 척 봐도 그렇게 보이는 건가? 내가 바보였던 걸까? 아니 근데 자기가 발달센터 원장이면 원장이지 의사야? 왜 애를 10분밖에 안 보고 저렇게 단정하는 거야? 저렇게 섣불리 진단명을 뱉어도 되는 거야?’

수없이 많은 말들이 가래처럼 목구멍으로 밀려들어왔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사이기에 안다. 학부모로부터 "당신이 우리 애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라는 식의 말을 듣는 순간, 교사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학부모에겐 아이에 대한 냉정한 조언을 하기가 어렵다. 발달센터 원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미 수백 번의 검색과 수십 번의 체크리스트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음에도 타인의 입에서 자폐스펙트럼이란 말을 들은 순간, 그 뒤의 말들은 사실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원장은 자기 센터에서 가능한 치료와 치료사 리스트가 인쇄된 팸플릿을 보여주며 언어치료, 놀이치료, 감각통합치료를 권했다. 대충 어떤 치료인지는 알고 있었다. 팸플릿을 읽어보려는데 눈앞이 뱅글뱅글 돌았다. 원장은 계속해서 무언가 말을 이어갔다. 많은 단어들이 내 귀에 들어왔다가 튕겨나가기를 반복했다. 


 믿어도 되는 곳일까? 이 사람은 우리 아이를 도와주려는 사람일까? 나를 현혹시켜서 비싼 수업을 받게 하려는 사람일까? 


 똘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내 삶은 오늘을 전후로 달라지게 되는 걸까?


 "... 어머니?"

 "네? 뭐라고요?"

 "치료... 시작해 보시겠나요?"


“일단... 남편과 상의 후에 다시 올게요.”


“가능하신 시간 말씀해 주시면 스케줄 조율해 드릴게요. 조기개입이 중요해요.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어요.”


 그날의 중력은 왜 그렇게도 유난히 강했을까? 

 그대로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발을 간신히 떼어 똘이의 손을 잡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초가을의 바람이 얼굴에 유난히 차갑게 와닿았다. 그제 서야 내 얼굴이 눈물콧물 범벅임을 알았다. 내 손을 잡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엄마가 운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빨리 어디론가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어디로 가자는 거야? 엄마 잡아당기지 말고 말을 해. 이제 곧 4살이잖아. 왜 말을 안 해. 왜, 왜...” 


 어디로 가야 할까. 사방이 트인 길에서 난 어쩐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일단 한 군데만 더 가서 얘기를 들어보자 싶어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아동발달센터를 검색해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상담가능하신가요?"

"지금 바로요?"

"네. 5분 뒤면 갈 수 있어요"


담담히 찾아갔던 첫 번째 센터와 달리 두 번째 센터로 가는 길은  왜 그리도 두렵고 무서웠을까. 두 곳에서 같은 말을 듣게 되면 더 이상 도망갈 구석이 없을 것 같아서일 것이다. 


두 번째로 간 곳도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뇌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이를 꽉 물고 눈물을 참으며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신발장 위로 눈물이 두두두둑 떨어졌다. 난 소리 내어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아이 앞에서 무너지기 싫었지만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은 쉽게 멈추질 않았다. 짐승처럼 소리 내어 울고 또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얼굴을 파묻은 무릎이 축축하다 못해 흥건해질 때쯤, 작은 두 손이 내 얼굴을 위로 끌어올렸다. 똘이였다. 똘이는 슬픈 것도 화난 것도 아닌, 뭔가 무척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고 불편했나 보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참 곤란한 표정을 짓던 똘이는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벅벅 닦았다. 눈물을 닦는다기보다는 마치 칠판지우개로 칠판을 지우듯, 우는 얼굴 전체를 지워 버리고 싶은 몸짓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둑 터지듯 말을 쏟아냈다. 


"맞대, 우리 똘이가 자폐스펙트럼이 의심된대. 두 군데 상담 갔는데 둘 다 맞는 거 같대."


신랑은 무거운 한숨을 쉰 뒤, 조근조근 말을 이어갔다.


“자기야, 진정해. 그 사람들은 의사가 아니고, 설령 의사라고 하더라도 첫눈에 그렇게 말할 순 없어. 의사의 진단도 아니고 설령 의사 진단이라 해도 달라질 건 없어. 우리가 예상 못한 것도 아니고, 진단명이 뭐든 우리 똘이는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잖아.”


“알아. 그런데 당장 치료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막막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봐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가 너무 늦게 발견한 건 아닐까? 이미 늦었으면 어떡하지?”


“하루 이틀 늦어진다고 큰 일 나지 않아. 마음 단단히 먹어. 자기가 무너지면 안 돼. 진단명이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는 진단을 잘 내리는 곳을 찾을게 아니라 우리 아이를 잘 치료해 줄 치료사를 찾아야 해. 센터에서 우리 아이에게 뭐라고 하는지에 포커스를 맞추지 말고 우리 아이를 어떻게 치료해 줄 건지,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나아질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똘이를 잘 끌어줄 수 있는 곳을 찾자.” 


남편의 말에 조금이지만 진정이 되었다. 

똘이와 둘이서 절벽 끝에 내몰린 것 같던 불안한 마음도 아주 조금 자리를 찾았다. 괜찮아졌다는 게 아니다. 그저, 둘이서 절벽에 내몰린 게 아니라 셋이서 내몰린 거라는 걸 알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상하게도 참 큰 위로가 되었다.


‘ 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저 사람이 너의 아빠라 정말 다행이다.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 진단을 받든 안 받든 똘이는 그대로다. 여전히 소중하고 밉고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그런 아이다. 


부디 늦지 않았기를. 오늘이 가장 절망적인 날이길. 

언젠가 '우리 그때 정말 식겁했었지.' 하며 웃을 수 있길.


막막하고 두렵지만 그래도 길을 찾을 수 있길.


쭈그려 앉아 똘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말귀를 잘 알아듣지도 못하던, 눈도 잘 마주치지 않던 아이의 얼굴을 잡고 말했다. 


“똘이야, 엄마 봐봐. 엄마 눈 봐봐. 괜찮을 거야. 괜찮도록 노력해 보자. 너도 나도 씩씩해지자. 우리 불행해지지 말자. 우리 가족 똘똘 뭉쳐서 잘 이겨내자.


...



그날 이후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우린 대체로 괜찮았고 때론 아팠고 때론 행복했다.


여전히 때로는 무너지고 때로는 아파한다. 그래도 대체로 괜찮았다. 

똘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조금씩 자라고 있다. 


우린 아마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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