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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an 17. 2024

살다 보면 좋은 날보다 힘든 날이 더 많데이

네가 힘든 걸 내가 안다는 말


#1
“똘이 엄마야... 힘들재. 내, 니 고생하는 거 안다. 내 다 아니께 기운 내라.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라.”

며칠 전 전화 통화 중에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들을 때는 그냥 “네,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말았는데, 그 말이 며칠째 내 귓가를 들락거린다. 그 말을 곱씹고 또 곱씹고 하던 나는, 한겨울에 찜기에서 갓 꺼낸 찐빵을 손에 들고 호호 불었을 때와 같은, 꼭 그런 온기가 내 몸에 전달되고 있음을 느꼈다.

‘네가 힘든 걸 내가 안다.’ 이게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말인가? 흔하디 흔한 말이라.. 지금껏 이 말이 가진 힘을 잘 몰랐다.

시어머니는 '엄마니까 당연히 해야지', '엄마가 잘 못 키웠으니 애도 저러겠지.'라는 시선이 아니라, '엄마가 제일 힘들지.', '저렇게 노력하니 언젠가 발전이 있겠지.'라는 시선으로 나와 우리 가족을 바라봐 주시는 분이다.  

인정과 연민이 가득한 위로의 말과 묵묵하고 따뜻한 시선. 시어머니가 그런 시선을 가진 분이라 정말 다행이다.

 ‘나의 힘듦’을 알아주는 이가 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은 참 든든한 일이다.


#2
“똘이 엄마야. 내가 살아보니 있재... 좋은 날보다 힘든 날이 더 많데이. 내만 그런가 싶었는데 이 나이 먹고 나니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여... 그래도 좋은 날이 온데이. 힘든 날이 더 길어도, 그래도 우리는 좋은 날이 결국은 오는 거... 그거 하나 보고 사는 거여. 좋은 날이 분명 올 거다. 우리 그래 믿자.”

그래, 한 때는 인생이 밝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줄 알았다.


 내 삶은 반짝반짝 빛날 거라고, 당연히도 그럴 거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시절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소중하고 든든하다. 막연한 낙관과 철없는 설렘만 가득했던 시절. 쉽게 설레고 쉽게 행복하고 또 쉽게 실망하고 쉽게 슬퍼했던, 순수하고 해맑았으나 여물지 못했던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믿음직하다. 인생은 내 맘대로 안 되고, 타인은 더더욱 내 맘대로 안 되며, 가족도 결국은 가장 사랑하는 타인일 뿐이어서 때로는 가장 내 맘대로 안 됨을 아는 나, 불운은 누구의 인생에나 불쑥 찾아올 수 있고 나와 내 가족 역시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아는 나. 그리고 그 사실을 알더라도 그것을 유난한 슬픔으로 여기지 않는 지금의 내가 더 믿음직하다.

 시어머니의 말씀이 맞다. 대부분의 인생은 좋은 날보다 힘든 날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날을 기다리며 힘든 날을 살아간다. 그 원동력은 근거 없는 낙관이나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책임감’... 그래, 어쩌면 책임감 아닐까?

 내가 건사하고 있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 미래의 꿈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나만이 끝낼 수 있으나 결코 함부로 놓을 수 없는, 내가 온전히 쥐고 있는 내 삶에 대한 책임감.

언젠가 찾아올 좋은 날을 기다리며 내 인생과 내 가족과 내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사는 것.

그렇게 살다 보면, 반짝반짝하고 설레고 새로운 것들이 주는 행복과 즐거움 같은 보상은 없어도,
그런 가볍고 일시적인 가치보다 훨씬 묵직하고 뜨끈뜨끈하고 지속가능한, 그래 이를 테면 ‘보람’,
보람 같은 것들이 보상으로 주어질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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