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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Feb 06. 2024

나는 '너'로 인해 '나'이다​             

영화 <I'm here>에 대한 단상


한때는 죽음보다, 잊혀지는 것이 두려웠다.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는 것. 나의 소멸이 항상 그 자리에 있던 돌이나 나무 한그루가 사라진 것처럼 인식된다면, 혹은 나의 소멸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나는 정말 이 세상에 존재했다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외로움의 근원은 ‘내가 다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에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것이 나라면, 나의 Identity는 어디에 있으며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 모두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내가 유령이나 투명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나를 응시해 주는 다른 누군가로 인해서만 증명되니까.


             

<I'm here> 스파이크 존즈 감독/앤드류 가필드/시에나 길로리/2010



  영화 <I'm here>은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었던 한 로봇의 사랑이야기다. '존 말코비치되기'와 ‘HER’로 많은 찬사를 받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SF로맨스로, 30분가량의 짧은 단편임에도 그 울림은 깊고 묵직하다. 기계 문명 속 개인의 고독, 정체성을 찾기 위한 갈망과 노력, 소통에의 욕구, 그리고 자기희생적 사랑이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 속에 녹아있다.  




영화의 배경은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어느 미래다. 주인공 쉘든은 나무나 돌처럼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낡은 로봇이다. 그곳에서 그는 그저 ‘A Robot'일뿐이다.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어느 날 고독한 쉘든의 삶에 프란체스카라는 여성형 로봇이 불쑥 끼어든다. 숫기 없는 쉘든과 달리 프란체스카는 활발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성격이다. 서로의 차이점에 끌린 그들은 곧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프란체스카를 만난 후 쉘든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발걸음이 경쾌해지고 멋을 부리기 시작하며 일에도 활력이 생긴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란체스카는 불행한 사고로 팔과 다리를 잃게 되고 쉘든은 기꺼이 자신의 것을 잘라 그녀에게 준다. 팔다리를 잃은 로봇이 되었지만, 프란체스카의 결핍을 채워준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행복한 쉘든.


 그러나 프란체스카는 또다시 사고를 당하고, 이번에는 그녀의 몸 전체가 망가져 버리고 는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그러했듯 쉘든은 결국 자신의 몸 전부를 프란체스카에게 준다.


 



 

 


혹자는 프란체스카의 사랑은 이기적이며, 쉘든의 사랑은 어리석은 자기희생일 뿐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르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쉘든과 프란체스카는 반대 인듯하나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그들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필요에 따라 대체되는 로봇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을 알아차려줄 누군가를, 자신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그 누군가를 원했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을 다른 로봇과 차별화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그녀는 인간의 가발을 쓰고, 차를 운전하는 등(영화 속에서 운전은 로봇에게 허락되지 않다.) 인간 흉내를 낸다. 아무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을 때는 “I'm here”이라고 쓴 쪽지를 거리 곳곳에 붙인다.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한편, 쉘든이 자신의 의미를 찾는 방법은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쉘든은 프란체스카에게 충전 플러그를 꽂아주고, 고장 난 그녀를 치료해 주며, 몸을 잃은 그녀에게 자신의 몸을 .



프란체스카는 자신을 응시하는 쉘든으로 인해, 쉘든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프란체스카로 인해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쉘든에게 그녀는 ‘대체될 수 없는 무엇’이자 ‘자신을 대체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준 무엇’이다. 프란체스카는 흐르는 시간 위를 부유하듯 존재했던 쉘든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줬을 뿐 아니라 ‘자기 의지’를 깨워주었다. 쉘든의 변화는 그의 언어에서도 나타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Yes”, “You're right”처럼 수긍의 언어만을 쓰던 쉘든은 프란체스카를 만난 후 ‘I’를 주어로 쓰기 시작한다.


"I love.."

 “I think..”

 "I mean.."




프란체스카에게 자신의 다리를 잘라줄 때의 쉘든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있다.


 “I'm gonna do it!”


쉘든은 말한다.


“I had a dream. In my dream, you needed the leg.

Everyone in the world wants to give you the leg.  You picked my leg. It makes me so happy.

It was the best dream in my whole history."


"꿈을 꿨어. 너는 다리가 필요했고 세상의 모든 로봇들이 너에게 다리를 주고 싶어 했어. 너는 내 다리를 골랐고 나는 정말 행복했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꿈이었어.”


사랑하는 이의 결핍을 자신의 몸으로 채워줄 수 있다는 사실은 쉘든에게 있어 축복이다.  쉘든은 그녀에게 몸을 줄 수 있는 로봇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이어서 행복했다.

  

  



영화의 마지막은, 자신에게 몸을 모두 내어주고 머리만 남은 쉘든을 프란체스카가 애틋하게 껴안는 장면이다. 자칫 그로테스크해 보일 수 있는 장면임에도 두 로봇이 영원히 하나가 된 듯 따뜻한 느낌을 준다. 쉘든은 프란체스카의 일부가 되어 오래도록 그녀에게 기억될 것이다. 그는 비로소 누군가에게 대체될 수 없는 존재, 잊혀지지 않는 무엇이 된다.



 

영화 <I'm here>은, 슬프고 따뜻하고 아름답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들을 넉넉하게 감싸 안은 빛과 그 빛 위를 흐르는 듯한 OST (Aska Matsumiya - There Are Many Of Us)와 스크린을 적실듯한 아름다운 영상.



슬프지만 아름다운, 결코 새드앤딩이라 말할 수 없는 두 로봇의 이야기는 나의 지난 시간을 오래도록 돌아보게 했다.




'너'를 '너'이게 하는 사랑을 나는 한 적이 있었던가...

많은 시간을 쉘든이기보다 프란체스카로 살았다. 나를 내어주기보다 나를 드러냄으로써 내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쉘든이고 싶다. 나를 다 내어줌으로써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다. 잊혀지지 않는 뜨거운 이름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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