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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Mar 18. 2024

이탈한 자가 자유롭다

책 <월든>(헨리데이비드소로우) 리뷰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저 / 은행나무 출판




 영겁의 세월을 똑같은 주기로 똑같은 궤도를 도는 행성의 생애를 아는가. 행성은 궤도 이외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중력의 절대성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궤도를 이탈한 행성은 우주공간을 영원히 부유하게 되거나, 타행성과 충돌하여 우주의 먼지로 흩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영겁의 시간 동안 같은 궤도만을 도는 행성의 생애가, 찰나의 순간이나마 자신만의 궤도를 그리는 유성의 삶보다 가치 있다 말할 수 있을까? 시인 김중식은 ‘이탈한 자’가 자유롭다 말한다. 중력과 궤도에 종속되길 거부한 대신 캄캄한 하늘에 자기만의 획을 긋는 별똥별. 그 유성과도 같은 삶을 산 한 사람을 소개한다. <월든>, <시민의 불복종>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다.

 

 소로는 산업혁명이 절정이던 19세기 초, 물질문명에 대한 낙관주의적 통념에 회의를 품었다. '금전만능주의와 무절제한 소비생활이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그는 그 시절에 21세기 자본주의의 폐해를 정확히 예측했다. 그는 자기가 동의한 적 없는 세속적 통념에 따라 사는 삶, 증명되지 않은 원칙을 답습하는 삶을 혐오했던 자유인이었다. 그의 오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정직한 방법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동시에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였다. 그는 삶에 대한 모험이자 실험으로,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보기로 한다. 그의 대표적 저서 <월든>은 소로가 자신의 고향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 집을 짓고 살았던 2년 2개월간의 경험을 쓴 에세이다.


 

 그는 통념을 버림으로써 자유를 얻고 타인의 삶을 욕망하는 대신 자기 고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산 사람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적인 삶’은 단지 삶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100명의 인간이 있다면 성공과 행복의 기준도 100가지가 있지 않을까?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체제와 통념이 정해둔 성공과 행복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아등바등 살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표준 시간표’대로 살지 못하면 삶에서 낙오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전전긍긍하며.

 

 우리는 ‘삶은 다 그런 것’이라 믿으며 정해진 궤도를 따라 관성대로 살고 있다. 행성처럼.


모든 인간이 같은 동심원을 그리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궤도를 이탈해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착각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잠깐 멈추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돌고 있는 궤도는 누가 그린 길일까. 다수가 가는 길이라 해서 유일한 길일까. 나를 궤도로부터 이탈하지 못하게 하는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연 나에게 절대적인 가치인가.



 자본주의 사회의 중력은 돈이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신제품을 쏟아낸다. 그들이 원하는 인간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소비하는 인간’이다. 소비를 장려하기 위한 광고는 인간들의 사고를 잠식한다. 언제부턴가 성공과 행복의 척도는 ‘마음껏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되었고 사회적 통념이 그린 삶의 궤도가 인생의 표준 시간표가 되었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기상이변으로 얼어붙은 지구의 생존자들은 열차 밖을 나가면 얼어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속박되어 살고 있는 오늘의 인간들 또한 다르지 않다. 열차 밖의 삶은 정말 죽음뿐일까? 궤도를 벗어난 행성의 운명은 ‘우주미아’나 ‘폭발’ 뿐인 걸까? 이 삶에 대안은 없을까?



집을 마련하고 나서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더 가난하게 되었는지 모르며,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p59
한 계급의 호화로운 생활은 다른 계급의 궁핍한 생활로 균형이 맞는다. p60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택이 무엇인지를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이웃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정도의 집은 나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평생 가난에 쪼들리며 살고 있다. p61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끝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인가? p61
여러분 중 다수가 얼마나 미천하고 비루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경험으로 날카로워진 내 눈에는 뚜렷하게 보인다.(중략) 빚은 태고적부터 있어온 수렁이다. 청동으로 화폐를 만든 로마인들은 돈을 ‘타인의 청동’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여러분들은 이 ‘타인의 청동’ 때문에 살고 죽고 묻힌다.




 

 한 번쯤은 무의미한 공전을 멈추고 소로의 말에 잠깐 귀를 기울여도 좋을 것 같다. 20대가 가기 전에 취업을 하고, 30대가 가기 전에 결혼과 출산을 하며, 40대가 가기 전에 집과 자동차를 소유하는 삶. 그 가치가 내 안에서 나온 것인지, 그것들을 이루기 위한 무의미한 노력으로 나의 욕망과 행복을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궤도를 이탈하는 삶이 정말로 궤도를 답습하는 삶 보다 불안하고 위험한 삶일까? 궤도를 답습하는 것이 나의 행복을 담보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는 ‘이탈’이 주는 ‘불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안정적인 삶’이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그 궤도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인간의 주목적은 무엇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진실로 필요한 수단과 방편이 무엇인가 하고 교리문답식으로 생각해 볼 때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현재의 통상적인 생활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어떤 생활 방식보다도 그것을 선호했기에 말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들은 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p23
왜 우리들은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 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내일의 아홉 바늘 수고를 막기 위해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다. 일, 일, 하지만 우리는 이렇다 할 중요한 일 하나 하고 있지 않다. 단지 무도병에 걸려 머리를 가만히 놔둘 수가 없을 뿐이다. p143
 
스스로를 믿지 않으면 다수의 행렬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소로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욕망을 깊게, 오래 들여다보라고, 자신이 동의한 적 없는 통념에 지배당하지 말라고 말한다.
당신 앞에 놓인 것들을 보고 당신의 운명을 읽으라.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발을 내디뎌라. p170
우리는 이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원의 중심에서 반경을 무수히 그을 수 있듯이, 방법은 무수히 많다. 모든 변화는 응시할 만한 하나의 기적이다.
나는,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중략) 우리에게는 현재 하는 일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이루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혹은 병이라도 걸리면 어쩌지 하고 걱정한다. 얼마나 빈틈없이 긴장하고 있는가! 온종일 긴장으로 전전긍긍하다가, 밤이 되면 마지못해 기도문을 외우고선 또 불안해한다. 이렇게 철저하고 완전하게 현재의 삶을 신봉하고 사라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도록 우리는 강요당하고 있다.

 



 우리는 정해진 궤도만을 돌도록 운명 지워진 행성이 아니다. 대안을 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궤도를 이탈한다고 해서 반드시 추락하지는 않는다.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나 있는 내 인생을 살고 싶다.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William Ernest Henley- Invictus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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