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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Apr 03. 2024

나 있는 내 인생

책 <자기 결정>과 영화 <버드맨>으로 본 자기 결정적 삶



-난 내 삶 속에 없었어. 난 왜 이렇지 난 왜 항상 사랑을 구걸해야 돼? 난 당신이 원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어. 난 존재하지 않아. 난 여기 없다고.

-영화 <버드맨>中

버드맨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 출연 마이클 키튼, 에드워드 노튼, 엠마 스톤, 나오미 왓츠 / 개봉 2014 

- 8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십수 년 전 블록버스터 영화 버드맨 시리즈의 주인공, 그러나 이제는 잊힌 배우 리건 톰슨. 그는 화려한 재기를 꿈꾸며 브로드웨이 정극 무대에 섰다. 극 중의 대사처럼 그의 삶에는 그가 없었다. 유언처럼 마지막 대사를 읊은 뒤 총구로 자신의 머리를 겨눈다. 그리고 그대로 탕! 



-타인은 전적으로 자기 결정적 삶에 위협적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독립성은 타인에 관한 것이 아닌, 스스로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되지요. 외부 세계의 압제에 맞서 내 삶을 스스로 지휘한다는 것을 넘어서, 이제 그것과 완전히 별개의 의미로 내 삶의 작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는 것이 주제가 됩니다. -피터 비에리 <자기 결정>中 

            

자기 결정 작가 페터 비에리/ 출판 은행나무 /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작가인 피터 비에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존엄성’을 꼽았다. 전작 <삶의 격>에서 존엄성을 지키며 사는 법에 대해 역설했던 그는 신작 <자기 결정>에서 존엄한 삶의 구체적 모습으로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꼽는다. 스스로 결정하는 삶(자기 결정적 삶)이란 ‘삶의 내적 연출권’을 지닌 삶, 즉 ‘내면세계의 지휘권’을 가진 삶이다.

 


영화 <버드맨>의 주인공 ‘리건 톰슨’의 모습을 통해 내면세계의 지휘권을 갖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이야기해 보자.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은 왕년의 무비 스타다. 그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버드맨시리즈에서 버드맨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버드맨 4의 출연을 고사한 뒤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고꾸라졌다. 세월이 흐른 뒤, 화려한 재기를 꿈꾸며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에 선 리건은 전재산은 물론, 남은 인생을 모조리 건 연극을 시작한다. 연극 프리뷰를 앞둔 리건은 재기에 대한 강박, 인정욕구, 열등감 등으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단정적으로 말해, 리건 톰슨은 자기 결정적 삶에 실패했다. 피터 비에리의 언어로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그는 ‘자기 인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피터 비에리는 자기 결정적 삶의 전제조건으로 자기 인식을 꼽는다. 자기 인식이란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생각과 느낌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다. 


 영화 <버드맨>에서 리건 톰슨의 목표는 ‘화려한 재기’다. 그는 대중의 사랑(대중성)과 평단의 인정(예술성)을 갈구한다. ‘이 삶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내가 지구상에서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때 리건 톰슨의 내면에서 이루어진 인식은 진정한 의미의 자기 인식이 아니다. 자기 인식이란 ‘자신의 욕망을 인식하는 것’ 뿐 아니라 ‘표면에 비친 욕망을 뚫고 들어가 그 속에 있는 욕망의 근원지를 찾는 것’도 포함된다. 리건의 자기 인식에는 후자가 부재했다. 그는 자신의 연극을 두고 ‘비로소 가치 있는 일을 할 기회’이며, ‘내 명성이 걸린 일’이라고 말한다. 이때, 그가 말하는 ‘가치’는 타인의 가치이며, ‘명성’ 또한 타인의 인정을 통해 얻어지는 산물이다. 배우이자 연출가로서 그가 연극에 쏟은 열정을 순수하지 못하다 말할 순 없다. 허나 자신의 감정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통제하지 못한 채 그것을 자신의 욕망과 동일시했기에 그 욕망은 삶의 동력이 되지 못하고 정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자기 결정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일은 타인의 시선을 맞닥뜨리고 그에 맞설 때만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가장 쉬운 방법은, 외부로부터의 모든 시선을 독립적인 정신적 정체성으로 되받아치는 것입니다.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에 불과하며 그들이 우리를 평가할 때 우리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오직 그들만의 문제인 수만 가지 요인에 의해 그 평가가 왜곡되고 부정적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힘이 나를 조종하는지 알아내지 않으면 사물을 바꿔볼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아요.
                                                                   
                                                                                                       피터 비에리 <자기 결정>中


 피터 비에리는 ‘우리의 삶이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우리의 자아상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 때, 그것을 자기 결정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리건 톰슨의 내적 강박과 열패감의 원인 역시도 이상적 자아와 실제 자아의 간극에 있다. 이 간극을 좁히려면 자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리건의 행보는 현실직시가 아닌 현실도피나 현실외면에 가깝다. 


리건은 또 다른 자아인 버드맨의 환영에 시달린다. 그 환영은 그가 가장 사랑받고 환영받던, 슈퍼히어로를 연기하던 시절의 자기 자신이다. 버드맨의 환영을 증오하면서도 떨쳐내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백혈병 걸린 칠면조’ 같은 자신의 현실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며, 과거의 기억만이 그의 초라한 현실을 숨겨 줄 도피처이기 때문이다.

 

-날 봐, 백혈병 걸린 칠면조 꼴이잖아, 이게 나야 모두가 잊어버린 퇴물배우 리건. 우리라고 하지 마 우리는 없어. 난 네가 아냐. 난 리건 톰슨이라고.(리건)
-아냐, 넌 버드맨이야. 왜냐면 내가 없으면 넌 그저 과거의 인기를 못 잊는 슬프고 이기적인 배우일 뿐이지.(버드맨) -영화 <버드맨> 中 


-기억은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 될 수 있고 뒷걸음질을 강요하기도 하며 미래를 바라보는 홀가분한 시선을 차단하기도 합니다. 기억이 휘두르는 전횡을 막는 방법은 오직 자기 인식뿐입니다. 
-원하는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내가 너무 달라 계속해서 마음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면 자아상뿐만 아니라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그 욕구들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피터 비에리 <자기 결정>中 


리건 톰슨은 ‘내 생각과 감정의 근원지’에 대한 통찰 없이 열망 자체를 좇았고,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두려워 ‘실제 내가 아닌 더 멋진 나’를 연기하려 했기에 자신의 삶에서 조차 소외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누가 그를 비웃을 수 있을까? 그는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이다.


 

리건 톰슨의 대기실 거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쪽지로 붙어있었다. 

-모든 건 타인의 판단이 아닌 그 자체로서 빛난다.(A thing is a thing not what is said of that thing)
  영화 <버드맨> 中

 매 순간 거울을 보며 저 문장을 얼마나 간절하게 되뇌었을까. 그가 진정 바랐던 모습은 ‘타인의 평가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빛날 수 있는 배우’ 아니었을까. 과거의 기억이 휘두르는 전횡을 물리치고 현재의 자신을 직시할 때,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무대 위에서 무아의 연기를 펼칠 수 있을 때, 리건 톰슨은 비로소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무엇일까? 그는 버드맨 슈트가 아닌 진정한 날개를 달고 하늘로 비상했을까? 아니면 끝끝내 분리된 자아를 화해시키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을까? 


날개 없는 버드맨은 버드맨이 아니지만, 리건 톰슨은 날개가 없어도 리건 톰슨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이상적 자아를 향해 날아갈 날개가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직시할 용기와 끊임없이 자신을 고쳐나갈 저력 아닐까.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는, 존엄성과 자유가 있는 삶 속에서 나는 다른 방식이 아닌 내가 보는 바로 그 방식으로 이해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자기 결정>中’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삶은 독단적인 삶이나 이기적인 삶과는 다르다. 스스로 선택하고 구축한 정체성 안에서, 스스로가 동의한 규범과 원칙에 따라 욕망을 직시하고 자신의 본성에 맞게 사는 삶이다.


 지금 나의 내면세계를 지휘하는 건 누구인가? <자기 결정>(피터 비에리/은행나무), <버드맨>(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를 함께 보며 ‘나 있는 내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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